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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r 24. 2024

헝클어진 전등사의 기억을 다시 정리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여행 욕심이 많다. 그동안의 여행시간이 쌓이고 쌓여 울릉군을 제외한 우리나라 군 단위를 전부 다 가보았다. 여행지를 정할 때는 가본 곳이나 보았던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과 보지 못한 곳을 가려고 한다. 그렇다고 취향에 맞지 않은 곳까지 볼 생각은 없어 여행지를 선택하는 게 때론 쉽지 않다. 이렇게 안 가본 곳만 가려고 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가본 곳 중에서 좋았던 곳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곳은 언제 가도 좋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까 여행의 폭은 넓을지 몰라도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강화 전등사를 다녀와서 그것을 절실히 느꼈다. 전등사는 꽤 오래전에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다. 대부분 여행 모임이나 지인들과 함께 갔었다. 전등사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로 여러 구경거리와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내 기억 속의 전등사는 조금 특별하게 남아있다. 전등사도 좋지만, 전등사 입구에 있는 다원에서 보았던 목판 하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목판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그 문구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돌아오고 나서도 그 문구가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문구를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따스했고, 또 내 마음과 주변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했다. 


오랜만에 전등사에 가면서 전등사보다 그 목판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했다. 세상이 다 아는 길치라 어디를 가든 내비게이션부터 찾는다. 내비게이션에서 전등사를 검색했는데 전등사도 나오지만, 남문 주차장과 동문 주차장도 나왔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예전에도 전등사로 가는 문과 주차장이 두 군데나 있었나? 혹시 몰라 일단 안전하게 전등사를 선택하고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도착한 곳은 남문 주차장이었다. 그런데 주차장 주변에서는 도무지 추억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낯설기만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다 들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매표소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이 예전부터 전등사를 드나들던 길입니까?” “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지극히 짧게 대답했다. 짧은 그 한마디에 궁금증이 풀릴 리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묻기도 어색해 그냥 전등사로 발길을 옮겼다. 


전등사로 가는 길은 널찍했다. 그런데 이 길도 기억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즈넉한 옛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공백으로 전등사에 대한 기억이 죄다 헝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육중한 성문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허 참! 이건 또 뭐지?’ 머릿속의 낡은 필름을 다시 되돌려 보지만, 이곳을 담은 필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지워진 건지 아니면 처음 보는 성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앞을 가로막은 성은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삼랑성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남한에는 단군과 관련된 유적이 두 군데 있는데 모두 이곳 강화도에 있다.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과 “삼랑성”이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지만, 생각지도 않게 삼랑성을 보게 된 건 시장에서 덤을 받은 것처럼 좋았다. 


삼랑성을 지나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전등사를 찾은 이들을 맞이했다. 눈에 익은 은행나무를 보자 그제야 낯선 느낌이 수그러들고 헝클어진 기억도 정리되는 듯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500년을 뛰어넘는 세월의 몸뚱이를 가려주던 나뭇잎은 죄다 떨어졌다. 은행나무는 감추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받치고 있는 두툼한 허리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피해 달아나려는 듯이 뻗어나간 가지들이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너머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죽림다원이 보이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다원 건물은 뒷전이고 예전에 목판이 서 있던 입구부터 살폈다. 정말 아쉽게도 그 목판은 보이지 않았다. 목판이 있던 자리를 어린 왕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원도 몰라보게 변했다. 널찍하고 깔끔하게 변했지만, 예전에 서정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 문구의 목판은 지금 있어도 좋을 텐데 왜 치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대조루가 눈에 들어왔다. 사찰의 불이문 역할을 하는 대조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당당하면서도 날렵한 모습이다. 다원에서 목판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대조루가 보듬어 주었다. 대조루 웅장함은 나름 독특한 구석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는 웅장함이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은 멋을 느끼게 해준다. 


전등사를 찾지 못한 세월의 공백이 많은 변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또 그만큼 희미해진 기억 때문에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전등사 경내를 보면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전각이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래도 전등사의 중심인 대웅보전은 여전했다. 보지 못한 시간만큼의 흐름과 흔적이 쌓여 더욱더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웠다, 대웅보전의 빛바랜 단청이 지난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한층 더 고풍스럽고 매력적이었다.


전등사 대웅보전에 오면 잊지 않고 찾게 되는 게 나부상(裸婦像)이다.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나부상의 전설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대웅보전을 짓던 도편수와 주모의 전설을 보면 나부상은 벌거벗은 여인이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다. 나찰이나 야차라는 주장도 있고, 원숭이라고도 하고 또 못된 원나라 공주라는 이야기도 있다. 전설을 모른 채 처음 나부상을 보았을 때는 원숭이처럼 보였다. 


나부상을 보면 체념한 듯한 표정이기도 하고, 그냥 무덤덤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설 속의 벌거벗은 여인이라면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그런 전설을 품고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그저 좋을 뿐이다. 나부상이 있어 전등사를 찾는 재미가 더해지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여행도 좋지만, 때론 혼자 하는 여행도 좋다. 혼자라 마음 가는 대로 둘러볼 수 있어 예전에 미처 보지 못한 걸 발견할 수도 있다. 전등사에서 만난 “정족산사고”가 그랬다. 정족산사고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는 물론, 저 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강화의 경치를 한눈에 굽어보기 좋은 곳이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정족산사고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이건 또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마치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처럼 반가웠다. 그러는 한편 머릿속은 또 한 번 헝클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오늘은 전등사에서 계속 기억의 혼란을 겪는다. 예전에도 정족산사고가 있었나? 다시 한번 기억의 창고를 털어보지만, 풀풀 먼지만 날렸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궁궐 춘추관과 함께 충주, 성주, 진주에 분산해서 보관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유일하게 남은 전주의 실록은 묘향산 사고로 거쳐 강화 마리산 사고를 옮겨졌다, 그리고 현종 때, 정족산사고를 지어 다시 옮겼다. 전등사에 “장사각”과 “선원보각”현판만 보관되어 있었던 걸 1998년에 정족산사고를 복원했다.


복원 연도를 보면 예전에 왔을 때도 있었는데, 그땐 보지 못한 것이다. 이래서 때론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하다. 정족산사고에서 전등사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전등사에 대한 기억이 뒤죽박죽되어 살짝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좋은 시간이었다. 공부할 때도 복습이 중요하듯이 여행에서도 복습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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