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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r 03. 2024

1만 킬로미터

‘에이 뭐야?’

‘진짜?’

‘이럴 수가?’

‘진짜 슈퍼맨이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이지성 작가의 『1만 킬로미터』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 컸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저 짧은 다섯 글로 대신하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났을 때, 충격받은 마음을 잠시 진정시켜야 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 결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순수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탈북민과 우리나라에 정착한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들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은 요즘도 자주 본다.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하나다. 그들이 이 땅에 잘 정착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특히 탈북민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힘들고 어두운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걸고 이 땅을 밟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행복하게 살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모 방송에서 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탈북민들이 나와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 그곳을 떠나려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아주 오래전의 첫 방송부터 보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방송 포맷이 좌담 형태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예전 같은 분위기와 흥미를 느끼지 못해 요즘은 보지 않는다. 


그 방송을 통해 북한의 사정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탈북민들이 풀어내는 힘들고 어려웠던 탈북 과정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렸다. 목숨을 건 그들의 탈북 사연과 과정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이 겪은 온갖 난관과 고초는 상상을 초월했다. 


2003년 금강산 육로관광이 막 시작되었을 때, 금강산을 다녀왔다. 금강산 구경도 구경이었지만,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게 정말 궁금했었다. 북한 땅에 들어갈 때, 버스에 올라 인원 점검하던 북한 군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군인이 처음 본 북한 사람이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키와 체구는 거짓말 안 보태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였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주 잠깐씩 그들의 사는 모습을 차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낡은 집들과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 금강산에서 안내원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입은 옷이나 신발은 딱 우리나라의 60년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우리와 사는 모습은 크게 달랐지만, 생김새는 물론 같은 말을 쓰는 그들과 우리는 분명 같은 민족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이 휴관이었다. 빈손으로 오기가 아쉬워 무인으로 운영되는 스마트도서관에 들어갔다. 대출화면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다가 『1만 킬로미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가? “라는 부제가 붙었다. 요약된 책 내용과 제목과 부제를 엮어보니 어떤 책인지 알 것 같아 주저 없이 책을 빌렸다. 


이 책은 북한의 쉰들러 슈퍼맨 목사와 후원자인 이지성 작가의 5년간 탈북 로드 이야기다.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 목사보다 이지성 작가에 더 관심이 갔다. 탈북 이야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작가가 어떻게 이 책을 쓴 거지? 거기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거 사기 아냐?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결국 이런저런 궁금증과 의문을 이기지 못해 잠시 책장을 덮고 이지성 작가를 검색했다. 책에 보면 이지성 작가가 슈퍼맨 목사의 실체를 알려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아보는 내용이 있다. 그때 이지성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지성 작가는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유명한 여자 프로당구 선수의 남편이다. 


『1만 킬로미터』가 화제가 되면서 북한의 인권상황을 알리기 위해 초청 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다는 기사 내용이 수두룩했다. 이 정도면 사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오랜 세월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는 중간에 작가를 검색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책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감정은 수시로 변했고, 책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황당했고 또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꽤 오랜 세월을 살았고, 방송을 통해 나름 탈북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자부하는 내가 이런데, 탈북민에 대해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여전히 생사를 넘나드는 처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탈북민들이 목숨 걸고 탈출해 중국에 들어가도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대목을 읽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탈북민을 구출하려고 많은 인권 선교단체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감사했고 또 고마웠다. 그런 한편에는 사이비 단체들이 탈북민을 이용해 그야말로 돈벌이하고 있다는 내용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책을 읽다 보면 감정이 자제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지성 작가도 책이 정치적으로 오해되고 왜곡될까, 싶어 절제하면서 쓴 내용들이 있다. 나 역시도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게 싫어 자세한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지만, 인권을 부르짖던 정권과 정치인들의 이중적 태도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슈퍼맨 목사는 실제 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 의문스러웠다. 또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개인이 탈북민을 40명도 400명도 아닌 무려 4천 명을 구출했다. 북한으로 비밀리에 선교사를 보냈고, 물론 그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갔지만 그들이 북한에서 순교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설처럼 느껴졌다. 북한 내부에도 반체제 인사들이 있고 그들과도 연계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4천 명의 탈북민을 구출했으면 나라에서 상을 주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면 북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1996년, 대법원에서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판결했다. 그렇다면 위험에 처한 탈북민을 구한 건 대한민국 국민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상은커녕 슈퍼맨 목사는 탈북민 구출 비용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한다. 후원자로 활동하는 이지성 작가도 개인재산을 털어가며 슈퍼맨 목사를 돕고 있다. 탈북민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말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이 나서서 비용적인 부담은 물론 생명에 위협까지 느끼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얽히고설킨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은 많아지고,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났을 때, 뒤통수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슈퍼맨 목사는 탈북민을 구출하려고 계획을 짜고 또 실행에 옮기고 있을 것이다. 이지성 작가 역시 슈퍼맨 목사와 함께 어렵고 힘든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건 바로 우리들의 관심이다. 『1만 킬로미터』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낯 뜨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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