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 중에 춘천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는 분이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터라 보지는 못했어도 정말 친근한 이웃사촌같이 생각되는 분이다. 얼마 전, 그분의 블로그에서 춘천에 있는 강원도립화목원을 보았다. 춘천은 빛나는 젊은 시절의 한때를 보냈던 곳이라 남다르게 생각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먼저 하늘로 떠난 친구가 있어 수시로 춘천을 드나들었는데, 그 뒤로는 통 갈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춘천이 자리 잡고 있다.
공지천에 있는 수상 포차가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고,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에티오피아 커피숍도 늘 궁금하다. 가끔 뉘엿뉘엿 저녁해가 지는 시간에 커피숍에 앉아서 공지천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
이런 차에 강원도립화목원을 알고 나니까 춘천에 가고 싶은 마음을 더는 누를 수가 없었다. 또 이렇게 가보고 싶을 때를 놓치면 언제 춘천에 갈 수 있을까 싶어 집을 나섰다. 강원도립화목원이 춘천에 갈 수 있는 멋진 구실과 핑계를 만들어 준 셈이다. 가보고 싶은 곳을 발견하면 그때마다 여행 메모장에 적는다. 당장은 못 가더라도 언젠간 가보고 싶어서다.
강원도립화목원을 여행 메모장에 적을 때, 고개가 살짝 갸우뚱했었다. 수목원은 많이 들었고 또 여러 곳을 가봤지만, 화목원은 낯설었다. 이름대로 화목원은 꽃과 수목이 어우러진 곳이다. 5월은 봄 중에서도 절정의 시간이다. 화사한 꽃들과 연둣빛 잎사귀들이 피어나는 5월이라 강원도립화목원은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곳이다. 즉흥적으로 집을 나선 덕분에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는 날이 월요일이라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사람에 치일 정도로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부터 친구들과 함께한 중년분들이 많이 보였다. 거기다가 봄날의 멋진 추억을 만들려는 젊은 연인들도 꽤 보였다.
드넓은 강원도립화목원은 화려한 원색의 예쁜 꽃들과 싱그러운 초록 잎들이 가득한 나무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졌다. 강원도립화목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면, 화목원 밖의 세상은 먼 기억 속의 다른 세상으로 여겨졌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일을 잠시 잊을 수 있고,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메마른 마음도 어느새 촉촉해진다.
그뿐 아니라, 신록이 가득한 숲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힐링 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강원도립화목원은 사계 식물원을 비롯해 암석원, 숲속 쉼터, 임산물 판매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봄날의 생명 기운이 가득한 꽃과 나무를 보면서 모처럼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강원도립화목원 안에 있는 산림박물관도 함께 둘러보면 여행의 시간이 조금 더 알차고 풍성해진다.
여행 패턴이 예전과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 군데라도 더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제는 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 이상으로 어떻게 하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더 마음을 쓴다. 강원도립화목원에는 숲속 쉼터는 물론 숲속 그늘에 쉴 곳이 많아 마음 닿는 곳에 앉아 차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숲속 쉼터 옆길에 핀 봄꽃들이 아주 작정하고 봄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요 며칠, 사람들의 마음을 독차지했던 봄꽃들이 이제 제 역할을 끝냈다. 그렇다고 해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가 못내 아쉬웠는지. 마지막 열정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비를 쏟아냈다. 긴 하루를 보낸 해가 저녁을 맞으면서 온몸을 불살라 멋진 노을을 만들어 내듯이 꽃들도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했다. 가볍게 부는 봄바람에 사방으로 흩날리는 꽃잎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젊은 연인들이 놓칠 리 없다. 흩날리는 꽃비 속에서 인생 사진을 담으려는 연인들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강원도립화목원을 들러보고 임산물 판매장에서 커피를 마셨다. 야외 탁자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데, 판매장 앞에 내어놓은 작은 화분의 꽃들이 보일 듯 말 듯 한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덩치 큰 화분의 꽃들이 보내는 유혹이라면 그냥 모른 척했을 텐데. 앙증맞은 화분의 작은 꽃들이 보내는 유혹의 눈길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자석에 끌리듯이 다가가 꽃들을 구경했고, 붉은색의 작은 꽃을 피운 화분과 보라색 꽃을 피운 화분 두 개를 샀다. 오랫동안 보려면 화분 갈이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흙도 샀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화분도 새로 사서 화분 갈이까지 했다.
화분을 살 때, 이름을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이름을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예쁘게 자라서 오래 지켜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실에는 크기가 있는 화분 일곱 개가 있다. 걔들 앞에 새 화분을 놓았다. 덩치 큰 녀석들이 행여 텃세나 부리지 않을까 싶어 자주 살펴본다. 그때마다 강원도립화목원의 신록 경치가 머릿속에서 잠깐씩 머물다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