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세계 최고의 건물 중 하나이며,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엔 종묘가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일본의 최고 건축학자 ‘시라이 세이이치’가 종묘를 두고 한 찬사의 말이다. 여행이 좋아 우리 땅이 비좁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여러 고장을 가봤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그 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종로구에 있는 종묘다. 다만 다녀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할 뿐이다.
예전에 종묘를 보았을 때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찬사를 보낸 것만큼 커다란 감동이나 울림은 받지 못했다. 경건한 분위기와 함께 정전의 지붕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던 게 나름 인상적이었다. 그땐 종묘에 대해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조선의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는 정도밖에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그때는 그저 눈과 마음을 혹하게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종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외국의 저명한 건축가들이 종묘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보면서 그들이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이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종묘를 이 땅에서 사는 내가 잘 모른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참에 종묘를 제대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는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종묘는 제사 공간인 정전과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향대청, 재궁, 전사청이 있다. 종묘는 건축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요즘은 다들 봄과 가을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 말처럼 6월에 들어선 날씨는 벌써 여름을 방불케 했다. 종묘에 가던 날은 오전부터 더웠지만, 하늘은 마치 가을처럼 푸르고 맑아 두 가지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종묘에 가는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고, 기분은 한껏 들떴다. 종묘를 드나드는 외 대문 앞은 평일의 오전이라 그런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쏟아지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는 외 대문은 그 따가움에 위축될 만도 한데 의연했다. 외 대문에는 내국인만큼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보여 괜히 기분이 우쭐해졌다. 뜻밖에 혼자 종묘를 찾은 외국인들이 더러 보여 그들에게서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 자신도 혼자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라 그들에게서 동질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종묘에 와본 지가 오래여서 예전 모습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기억나는 건 그나마 정전밖에 없고, 나머지는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 덕분에 종묘의 경치가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게 새로웠다. 그런 만큼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좋았고, 설렘과 기대감은 높아만 갔다.
종묘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넓은 연못이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전통의 연못이었다. 잔잔한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부러 종묘 앞쪽에 연못을 배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엄숙하고 경건한 공간으로 들어가니까 연못을 보면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라는 배려가 엿보였다. 이슬람 사원에는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과 얼굴을 깨끗이 닦는 시설인 사디르반이 있다. 연못은 그것과 흡사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디르반은 신체 부위를 닦지만, 종묘의 연못은 마음과 정신을 닦는 데 쓰였다.
혼자 여행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종묘 입구에서부터 보았던 외국인 여자 여행자가 우연처럼 동선이 겹쳐 여러 번 눈에 띄었다. 향대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다시 또 마주쳤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통했을까?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향대청으로 들어갔다.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 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과 축문, 폐백을 보관하는 곳이다. 지금은 내부를 전시관으로 만들어 종묘와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정전을 가도 신주 모신 공간은 늘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다. 향대청에는 신주가 모셔진 공간의 모습과 그와 관련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리 들려 사전지식을 얻는 게 정전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종묘에 들어오면서부터 나갈 때까지 느낀 거지만, 종묘에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 얼핏 보면 내국인과 외국인이 반반 정도다. 외국인들은 향대청에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고마움과 함께 뿌듯함이 느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우리는 종묘를 얼마나 알고 있나 싶어 살짝 창피하기도 했다.
종묘는 잘 가꾼 나무와 숲이 있어 경치도 좋았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가득해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공짜라고 꿀떡꿀떡 먹어 치운 세월 덕분에 소란하고 번잡한 곳은 이제 딱 질색이다. 그래서인지 조용하고 차분한 종묘의 분위기가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잘 가꾼 숲과 옛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조선의 궁궐을 둘러볼 때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색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느껴졌다. 그건 종묘만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기억 속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정전을 보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정전을 보러 가는 마음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나름 비장해졌다. 비전문가이지만, 종묘의 정전이 얼마나 멋있고 아름답기에 유명 건축가들이 그렇게 찬사를 보냈는지 내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다.
“에이~~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아빠를 따라 정전에 온 아이는 잔뜩 실망해서 뿌루퉁해졌다. 연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도 정전을 보자마자 잔뜩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의 여자는 얼마나 실망이 컸든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돌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나 역시도 실망이 컸을 뿐만 아니라, 내심 화가 났다. 정전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거대한 가림막이 정전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다. 이 모양이니 정전을 찾은 이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왜? 하필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미리 확인하지 못한 건 나의 불찰이지만, 그래도 잔뜩 기대하고 왔기에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전 옆에 있는 영녕전은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영녕전은 세종 때 새로 지은 별묘이다. “왕실 조상과 자손이 함께 평안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그나마 영녕전으로 달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영녕전은 정전에 비해 규모가 적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은 정전과 흡사하다.
정전과 가장 큰 차이는 지붕에 있다. 정전의 지붕은 가운데 지붕이 양옆으로 길게 뻗어져 나가 있고 그 끝에 짧은 지붕이 낮게 이어져 있다. 반면에 영녕전 지붕은 가운데 부분이 짧고 거기에 붙어 있는 양옆의 지붕이 낮고 길게 이어졌다. 두 지붕의 차이가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같은 듯 다르게 보여주었다.
건물에서 지붕이 차지하는 면적이 크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무엇인가 찾아보고 느껴보겠다고 떡하니 영녕전을 마주하고 섰다. 비록 정전은 아니지만, 외국의 건축가들이 그렇게 찬사를 보낸 이유를 느껴보겠다고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전도 그렇지만, 영녕전도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무척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장엄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압도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맞배지붕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모습이라 묵직하면서도 날렵하게 보였다. 지붕 선과 처마 선이 직선인데도 경직되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간결함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졌다.
이렇게 찬찬히 뜯어보아도 전문가의 눈과 마음처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생각지 못했던 나름의 특별한 느낌이 진하게 머릿속에 새겨졌다, 더위도 식히고, 지친 다리도 쉬어갈 겸 그늘이 가득한 숲속 벤치를 앉았다. 그늘이 주는 시원함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여유로움을 즐겼다. 종묘의 차분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지하철을 타면 언제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종묘가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웠다. 지방을 여행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종묘는 거꾸로 지방에서 서울로 여행 온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러워할 만한 곳이다. 정전 보수공사는 내년에 끝난다. 그때가 되면 무조건 다시 종묘에 갈 거다.
종묘 정전과 함께 꼭 보고 싶은 게 종묘 제례다. 인류무형문화재 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제례는 꼭 한번은 봐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떤 일을 깜빡 잊을 때면 그때마다 자조적으로 “내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하셨다. 이젠 나도 세월을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지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도 가끔 깜빡깜빡한다. 종묘에 다시 가겠다는 나의 다짐이 절대로 깜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