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가평 현등사는 깊고 깊은 기억의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침묵의 세월이 무려 50여 년이 지났다. 철없던 10대 때, 현등사와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 친구 대여섯 명이 어울려 현등사에 놀러 갔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 봐도 왜 그곳에 갔는지? 거기서 왜 하룻밤을 묵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많은 사찰을 다녔지만, 이때 말고 절에서 묵어본 적이 없다. 사실 현등사에서의 추억은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다. 그 당시 함께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한창때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중에서도 C와 P는 유독 경쟁적이었고 고집도 셌다.
그날 현등사에서 두 친구는 사소한 것으로 심하게 다투었다. 그렇다 보니까 좋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해질 수밖에 없었다. 현등사를 내려오는 길에서도 분위기는 여전히 서먹하고 냉랭했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산을 내려가는 길이 정말 멀게 느껴졌다. 애꿎은 먼 길을 탓을 하며 속으로 투덜대던 그때의 기억만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오랜만에 핸드폰이 아닌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진을 찍으러 가고는 싶은데, 퍼뜩 떠오르는 데가 없어 인터넷을 뒤적이다 운악산 현등사와 출렁다리를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에 구미가 당겼다. 이때만 해도 기억이 바랠 대로 바래서 현등사를 안 가본 곳으로 착각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야 왠지 현등사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현등사?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기억의 창고를 들쑤셔 보니까, 한쪽 귀퉁이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현등사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현등사에서 다투었던 C와 P는 둘 다 곁에 없다. P는 학교를 졸업하고 2~3년 뒤부터 소식이 끊어졌고, 오랫동안 함께 했던 C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좋았든 안 좋았든 어릴 때의 소중한 추억이 배어 있는 현등사를 보는 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래도 하늘은 금방 비를 뿌릴 것처럼 잔뜩 골이 나 있었다. 가평으로 가는 동안 눈길은 자주 하늘로 향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낸 터라 비가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깨졌다. 가는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애간장을 태웠다.
반 백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게 아니다. 기억이 거의 다 지워진 현등사에서 옛 모습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산을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멀었는데 지금도 그럴까? 그만큼 많이 올라가야 하는 걸까? 세월에 짓눌려 살다 보니까 요즘은 산을 오르는 게 싫다. 오래전, 족저근막염이 생겨 고생한 뒤로는 산과 담을 쌓고 지냈다. 예전처럼 산에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운악산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많은지 주차장이 굉장히 널찍했다. 등산로에 접어들어 초입에 있는 안내소를 먼저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산을 오르는 것이라 내심 부담되었고 또 걱정되었다. “여기서 현등사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가는 길은 평탄한가요?” 오는 내내 궁금했던 걸 재빨리 물었다. “현등사까지는 5~60분 정도 올라가야 하고, 길은 포장되어 있는데 오르막입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소리에 그나마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오산이었다. 오르막길이라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평탄한 길이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생각과 달리 현등사 가는 길은 초지일관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의 경사는 생각보다 심했고, 평탄한 길은 잠깐이라도 나타나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운무에 휘감긴 운악산은 우중 산행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경치를 내어주고 있어 비 오는 게 나쁘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등산로를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곡이 이어진다. 장맛비로 한껏 불어난 계곡물이 시원하고 세차게 흘렀다. 계곡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졌고, 산행의 피곤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런지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운악산을 통째로 차지했다. 4~500m쯤 올라갔을까? 출렁다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지만, 애써 못 본채 지나쳤다. 출렁다리로 빠지면 산을 오르는 페이스를 잃어버려 다시 산을 오르기가 힘들 것 같았다.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산을 오르는 게 정말 힘들었다. 현등사에 묻어둔 어릴 때의 추억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출렁다리만 보고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현등사는 언제 나오는 거야?’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저만치 등산로 옆에 있는 불이문이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이름 없는 정자쯤으로 생각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참에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가보니 현등사 불이문이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불이문에 왔으니까 다 왔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산이고 정상 턱밑에는 마지막 고비인 깔딱고개가 있다. 그것처럼 불이문 뒤로는 가파른 108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숨을 돌리려고 불이문 기둥 주춧돌에 걸터앉았다. 추억의 그날도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땐 쇳덩이도 먹어 치울 만큼 젊디젊은 때였으니까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올라왔을 것이다. 그저 흘러간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잠시 쉬었더니 108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힘들게 산 정상에 서듯이 108계단을 지나자 삼 층 석탑과 함께 보광전이 눈에 들어왔다. 운악산 등산로가 그랬듯이 현등사로 가는 길도 여느 산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르막이었다. 이것이 앞으로 현등사를 또렷하게 기억할 단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보광전 뒤로 숨어 있듯이 자리 잡은 전각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현등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지워졌지만, 어설프게 남아 있는 희미한 기억 속에는 이렇게까지 전각이 많지 않았다. 일부의 전각을 빼고 난 다른 전각에서는 지나간 거친 세월의 무게와 흔적이 배어 있지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다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과 달리 전각까지 많으니까, 예전에 와봤던 사찰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말이 쉬워 50년이지,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뀐 길고 긴 세월이었다. 현등사도 그 오랜 세월의 변화를 비껴갈 재주는 없었을 것이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 승려 마라가미가 포교 차 신라에 왔을 때, 그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마라가미 승려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와 봉안한 아주 특별한 사찰이라 현등사에는 적멸보궁이 있다.
어느 구석에서라도 지난 추억을 되살릴만한 흔적이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추억 찾기라도 하듯이 경내를 둘러본 뒤에 적멸보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도 그랬고, 현등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적멸보궁이 있는지 몰랐다. 그렇기에 이 귀한 곳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은 정성스럽게 바위를 하나하나 파서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은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대부분의 적멸보궁은 법당 안에서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을 볼 수 있게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어찌 된 일인지 현등사 적멸보궁은 자물쇠로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건물 뒤로 돌아가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유리창을 거치지 않고 보아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적멸보궁은 현등사 뒤쪽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있어 전망이 좋다. 적멸보궁 앞에 키 큰 나무들이 탁 트인 경치를 가리고 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운악산 품에 안겨 있는 현등사의 뒷모습이 어스름하게 보여 그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었다.
현등사를 품은 운악산은 운무가 휘감고 있어 몽환적인 경치를 보여주었다. 비 오는 날,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산사에서 경치를 즐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현등사는 옛 추억에 이끌려 찾아온 여행자에게 이번만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지만,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마땅히 쉴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이 살짝 남긴 했지만, 추억 여행을 끝내고 산을 내려갔다.
산을 내려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비 때문에 현등사에서 누리지 못한 여유로운 시간을 카페에서라도 채우고 싶었다. 운악산이 비고 현등사가 비었듯이 카페도 비었다. 사람 없는 카페는 현등사만큼이나 조용했다. 간단한 요깃거리로 빵과 함께 시원한 냉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치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또 현등사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생각이었지만, 나 자신도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현등사에서의 멋진 추억이 있어 이젠 기억에서 희미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