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극장가에 중국 무협영화를 별로 없다. 7~80년대에는 극장가는 물론이고 TV에서도 중국 무협영화가 자주 나왔다. 그런 만큼 인기도 많았다. 추석이나 설날 명절 연휴에 특별 편성되는 TV 프로그램에는 중국 무협영화가 빠지지 않았다. 그 영화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TV 프로그램 편성표가 나온 신문 면은 따로 챙겨놓고 보았다.
또 그 시절을 보낸 남자들이면 한 번쯤 무협지에 푹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화방에서 빌린 무협지를 밤새워 가면서 읽었다. 그땐 왜 그렇게 무협지와 무협영화에 빠졌는지 모른다. 위험한 상황에 빠져서 우연히 절세 무공을 터득한 주인공이 통쾌하게 복수하는 단순한 스토리지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무협지와 무협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중의 하나가 소림사다. 소림사나 소림사 승려를 주제로 한 영화도 정말 많았다. 그래서인지 실제 보지는 못했어도 소림사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창 무협지와 무협영화에 빠져 있을 때는 소림사가 정말 궁금했고, 그곳에서 무술을 수련하는 스님들이 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소림사 같은 사찰이 우리나라에도 있는지 궁금했었다. 적어도 그런 궁금증을 품고 있을 때까지는 우리나라에 소림사 같은 사찰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나고 보면 무협지나 무협영화에 빠진 건 한때였다. 그 시기가 지나 가정을 꾸리고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무협지와 무협영화도 그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요즘도 어쩌다가 무협영화를 보면 재밌긴 한데, 예전만큼의 재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언제인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TV에서 골굴사 스님들이 선무도 공연하는 걸 우연히 보았다. ‘와우! 우리나라에도 소림사 같은 절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반가웠고 또 신기했다. 그땐 당장에라도 골굴사에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과 생활에 쫓기고 치이다 보니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골굴사가 생각난다고 서울에서 경주를 휭하니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골굴사는 잊힌 듯이 기억 속에 잠들어 있었다.
기회는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 기상악화로 울릉도 가는 배편이 취소되면서 포항에서 졸지에 갈 길을 잃어버렸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포항까지 왔는데 그대로 서울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울릉도에 가기로 한 부산 친구 부부와 함께 경주에 갔다. 경주에 가자는 친구 부인의 제안을 듣는 순간,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골굴사가 대번에 깨어났다.
경주에서 어디를 갈까? 이곳저곳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 머릿속은 골굴사에 꽂혀 있었다. 울릉도에 가지 못한 분풀이로 무슨 일이 있어도 골굴사는 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전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찰을 가보았다. 여행하면서 사찰을 찾을 때는 커다란 설렘이나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사찰에서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그렇지만 골굴사를 찾아가는 마음은 여느 사찰을 찾을 때와 달랐다. 이름깨나 알려진 여행지를 찾아갈 때처럼 설렘과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젊은 날,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소림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흥분되었다. 일주문에 도착했을 때, 선무도 동작을 표현한 조각상들이 좌우에 늘어서 있어 기대감은 그야말로 최고치에 다다랐다.
골굴사는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 스님 일행이 창건한 석굴사원이다. 함월산 골굴사는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의 산실로 유서 깊은 도량이다. 보물 581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그 주변에는 굴 법당이 있다. 여느 사찰과 달리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골굴사는 오랜 세월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랬던 골굴사는 기림사 주지를 역임한 설적운 스님이 1990년부터 중창 불사해서 오늘의 골굴사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주문을 지나 경사길을 오르면 우락부락한 얼굴만큼이나 온몸의 근육을 드러낸 금강 역사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삿되고 악한 기운은 금강 역사상의 강렬한 모습에 질려 함부로 골굴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 같다. 골굴사는 선무도를 수련하는 한국의 소림사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금강 역사상이 말해주고 있다.
마애여래좌상과 선무도 공연장이 있는 대적광전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길옆으로는 함월산 품에 안긴 전각들의 단청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가을 단풍과 어우러졌다. 그 때문에 함월산의 가을은 여느 산의 가을보다 더 차분하고 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 아름다움 속에 산사의 고즈넉함이 보태져 선무도 생각으로 잔뜩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덕분에 여행자도 가을 속의 일부가 되었다.
오르막길 끄트머리 정면에 대적광전이 있고, 오른편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회색빛 응회암 암벽에 만들어져 있다. 마애여래좌상을 보는 순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거대한 바위에 조각되어 있는 미국 러시모어산이 떠올랐다. 그만큼 마애여래좌상은 인상적이었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풍화작용으로 커진 구멍들이 있어 그곳에 석실이나 불상을 안치해 놓았다.
선무도 공연장이 있는 대적광전에 들렀지만, 선무도 공연은 보지 못했다. 이전에는 공연이 있는 날이었는데, 공연 날이 바뀌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에서 본 마애여래좌상의 얼굴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대부분 불상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골굴사의 마애여래좌상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어 친근하게 다가왔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골굴사는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서서히 밀려오는 가을의 물결이 손에 잡힐 듯했다. 골굴사를 둘러보는 동안, 마음은 솔직히 콩밭에 있었다. 석굴사원도 좋고 마애여래좌상도 좋지만, 머릿속은 온통 선무도 생각으로 가득했다. 선무도는 어떤 동작일지, 얼마나 강할지, 또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많은 게 궁금했다.
공연을 보았으면 느낌으로라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더 궁금했다. 자료라도 얻어 볼까 싶어 종무소에 들러 보았지만, 딱히 보이는 자료가 없었다. 결국 선무도에 관한 궁금증은 여행에서 돌아와 골굴사 홈페이지에서 풀었다. 선무도는 불교의 아나파나사띠경에서 가르치는 “정혜쌍수”의 수행법이라고 하는 데 불교 전문용어여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선무도는 단순한 무술의 차원을 넘어 깨달음을 구하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선무도 수련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말이 알기 쉽게 다가왔다. 골굴사에는 선무도 대학은 물론 선무도 지도자 과정과 승단 심사, 유단자 연수 등을 운영하는 선무도 대금강문이라는 조직도 있다.
골굴사에서도 템플스테이가 이루어진다. 특이하게도 골굴사에서 보았던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그들이 불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것인지 아니면 선무도를 알고 싶어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무도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을 생각하면 두 가지를 다 이루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찰을 여행할 때마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그때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골굴사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는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그만큼 선무도에 관한 관심이 많았고, 또 알고 싶은 게 많았다.
10월도 막바지에 들어선 때라 가을은 성큼성큼 밀려왔다. 하루가 다르게 산이 붉게 타올랐다. 고운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들은 긴 동면을 위해 한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하려 한다.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지만 계절의 변화가 주는 산사의 가을 경치는 긴말이 필요치 않다. 아름답다는 그 말 한마디면 족하다. 덕분에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