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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r 19. 2023

은수 이야기(7)

J가 들려주는 동화

 토요일에 아빠가 왔다.


 “우리 은수 살도 찌고 키도 많이 컸네. 할머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주시는구나.”

 “응, 수요일에 체험학습 갔는데 할머니가 김밥이랑 유부초밥 싸 줬어. 진짜 맛있었어.”

 “그래? 감사합니다. 은수 잘 챙겨 주셔서.”


 아빠는 할머니를 보지도 않고 말을 했다. 그러더니 나만 빼놓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무슨 이야기를 했다. 한참 뒤 아빠가 나를 불러서 들어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은수야, 있잖아. 아빠가 은수한테 진짜 미안한 말 하려고. 아빠랑 엄마… 이제 같이 안 살기로 했어.

  이혼… 했어.”

 “이혼? 엄마랑 아빠 이혼했다고?”

 “엄마도 힘들고 아빠도 너무 힘들어서 그러기로 했어.”

 “이혼하면 안 힘들어? 같이 살면 힘들고? 왜?”

 

 우리 셋이 다 같이 사는 게 내 소원인데, 엄마 아빠는 내 마음 따위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게 틀림없다.

 

 “나도 엄청 힘들었어.”

 “그래, 아빠가 다 알지.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있으라고 한 거야.”

 “나는... 힘들어도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 게 좋단 말이야. 이혼하려고 나 여기 보냈어?”

 “그건 아니야.”

 “엄마 아빠는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지?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그게…”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꾹 참았다.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숨이 찼다.


 “엄마는 이제 어디서 살아? 아빠는? 이제 엄마 아빠 못 봐?

 “아니야, 왜 못 봐. 은수 보러 자주 올게. 엄마도 그럴 거야.”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나 할아버지 집에다 버린 거지. 내가 귀찮은 거지?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고 아빠도 잘 안 오잖아. 뭐가 맨날 그렇게 바빠? 그렇게 보기 싫으면 나 왜 낳았어?”


 목구멍이 찌릿찌릿했다. 울음을 참으려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엄마 아빠가 은수 왜 보기 싫겠어. 아니야. 엄마 아빠는 은수 사랑해. 정말이야. 너 밉고 싫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사랑하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 싫은 거야! 나도 엄마 아빠 싫어! 엄마 아빠 없어도 돼.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 거야.”


 할머니한테 안겨서 펑펑 울었다. 아빠가 나를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세게 밀어버렸다. 엄마 아빠는 내가 전혀 소중하지 않다. 나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했던 내가 바보 같다. 나도 이제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 않을 거다.


 어린이집 활동사진 파일들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다 넣어버렸다. 나도 엄마 아빠 보기 싫다. 엄마 아빠는 내 생각 안 하는데 나만 엄마 아빠 생각하는 거 싫다.

 나는 할머니가 제일 좋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를 사랑해 주고 예뻐해 준다. 할머니랑 있으면 힘든 일도 걱정할 일도 없다. 할머니한텐 내가 1번이다. 나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




 가을 운동회가 끝나고 나니 좀 심심하다. 며칠 동안 운동장에서 운동회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번 운동회 때는 할아버지가 쉬는 날이어서 할머니도 일을 쉬고 같이 구경 왔다. 할머니는 운동회에 처음 와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빠 어릴 때 한번 가 보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내가 청팀 이어달리기 선수로 나가서 백팀을 따라잡았다고 할아버지가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새우랑 고기가 들은 커다란 피자를 사줬는데 또 먹고 싶다.


 “할머니, 나 왔어. 할머니 나 피자 먹고 싶은데 저녁에 피자 사주면 안 돼요?”


 할머니가 대답이 없다. 할머니는 오전에만 일하고 내가 올 때는 꼭 집에 있는데 이상하다. 안방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다. 할머니 혼자 시장에 갔나 생각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은수야, 은수 왔어?”


 아래층 할머니가 급하게 들어오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은수야, 어떡하니.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할아버지 사진을 보거나 할머니와 아빠를 쳐다보다가 하루가 지나갔다. 할머니와 아빠가 겪고 있는 슬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졌다. 목소리도 크고 힘도 세던 할머니는 갑자기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 같았다. 아빠는 내가 엄마랑 헤어질 때만큼 많이 울었다.

 나도 아주 슬펐다. 그날 새벽에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잠결에 얼핏 보았는데 그게 마지막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할아버지한테 좀 잘할걸. 할아버지한테는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이제는 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이제 사진으로만 집에 있다. 할아버지는 늘 새벽에 나가서 내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지금은 학교에 갈 때마다 내가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간다. 학교에 갔다 오면 또 할아버지 얼굴을 본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이 친해진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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