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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y 13. 2023

빈집을 기웃거리며

양쌤의 another story 45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기형도


나는 시인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사랑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별을 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감정의 무게를 고스란히 껴안지 않아 가벼워진 일까

표면에 둥둥 떠 있기만 하는 나의 단어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수습되지 않는다.


시인은

사랑이 머물렀던 시공간이 멈춰선 후

온 힘을 다해 복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만 가지 사랑의 흔적이 휘발되기 전

마침내 결단한다.


문을 잠근다.

돌아선다.


어느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봉인했다.


내가 그의 빈집을 기웃거릴 수 있는 이유,

바스라지지 않는 의 언어를 만날 있는 이유다.


오월의 씀바귀꽃 퍼지는 아카시아 향과

커다란 나무의 초록 그림자가

오래오래 그의 시를 지켜주길.


기형도문학관 뒤 산책길



기형도문학관 뒤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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