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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Nov 01. 2023

멀리 보내는 중

성안동은 삼십 년 전에 야산이었다. 그 당시 마을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하던 날이면 산에서 생활하는 친구한테 데리러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었다.

며칠 전부터 쑥쑥 찌르는 통증에 오늘은 이전에 산등선이었던 성안동에 위치한 치과를 갔다. 의사는 통증이 있는 이빨이 많이 흔들려서 아무래도 빼야 한다고 진단을 내렸다. 치과에서 발치한다는 의미에는 통증과 돈과 시간이 맞물려 있다.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20초가 되었을까. 발치해 달라고 했다. 마취 주삿바늘이 입 속 얇은 피부를 두 번 정도 찔렀다. 꽤 통증이 느껴졌지만 수신호로 아프다고 할 뿐 소리는 내지 않았다. 잠시 후, 발치를 끝낸 잇몸에서 피가 많이 나온다면서 물로 한번 행구라고 했다. 그런 다음 연속으로 솜을 집어넣었고 마취가 풀리지 않은 입은 봉침을 맞은 듯 부은 것 같이 느껴졌다. 썩은 이를 발치하고 생긴 빈자리를 솜을 눌러 앙 물고 나왔다.  


드라마 <연인>에서 장현이 등에 화살을 맞았는데 다리를 절었다. 그는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로 두리뭉실하게 대답을 했다.


내 몸도 그런 것이야? 그런 건가.

몸이 연결되어 있다. 감기가 시작되면 몸살, 콧물, 기침, 어지럼증까지 동시에 발작하듯 찾아온다. 이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기관들이 동시에 앓는 것이다.


월요일에는 7월 이후 3개월 만에 의사 면담과 처방약을 받으러 병원엘 갔다. 모든 결과들이 호전되었다. 의사가 나더러 살 빠졌냐고 묻자 재빨리 대답했다. 식사조절과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말이다. 칭찬이 듣고 싶었나 보다. 의사는 칭찬 대신 단백질도 좀 드셔야 합니다라고 응수했다.

 

병원을 다녀온 날 저녁부터 이빨 통증이 느껴졌다. 내 몸 구석구석 투어 하듯 통증이 치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인> 장현의 말에 설득되는 중이다. 몸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성안동은 중구 지역을 울타리 치듯 산으로 둘러싸였던 지역이었다. 그랬던 이곳에 개발 붐이 광풍처럼 몰아치면서 우후죽순으로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올라갔다. 모든 공단이 터줏대감처럼 여기가 내 땅임네 하며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성안은 대부분의 관공서와 공단이 아파트 단지보다 높게 자리 잡고 있다.


산을 폭파하고 돌을 깨고 흙을 퍼 날라서 평지를 만든 구역이지만, 여전히 대중교통 버스는 비탈진 경사로를 빠듯하게 운전해서 올라간다. 경사로를 타고 갈지자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버스가 정상 마을로 올라다. 도시구획 정비를 어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재빠르게 했는지 이곳을 오를 때마다 한숨이 난다. 산을 깎아서 만든 동네를 이쁘게 단장할 마음을 품은 공무원이 한 명쯤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공무원보다 권력자가 개발에는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준 동네로 보인다. 시 자, 빠르게 가자고(G0)를 구호로 외친 건 아닌지.


버스는 마치 스키를 타듯 마을을 벗어나면서 시내 방향으로 부드럽게 내려간다. 버스가 좌로 우로 슥슥 옆구리를 돌릴 때마다 골짜기 아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감 수확을 끝낸 감나무마다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열매를 딴 나무에 무성한 잎들이 달려있다. 나무에는 한 알의 열매 보이지 않는다. 치과병원 문을 들어설 때와 나왔을 때의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썩은 이빨이라도 자릴 차지할 때는 허전한 기분이 덜했다. 그런데 발치를 하자 그 자리에 공터처럼 큰 구멍이 생겼다. 열매를 따낸 감나무처럼 말이다.  몸에도 단풍이 들고 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누군가와 작별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건  이빨과 멀어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부지런히 몸을 돌보지 않았던 나 자신의 게으름과 멀어지는 중이다.

이런 날엔 단골 찻집에 가서 급한 시간의 속도를 제어해야 차분해진다. 오후에 세무서 서류제출을 마치면 이후 시간을 비우기로 했다. 이틀 전에 세무서에서 요청한 데로 법인 정관 내용 수정과 항목들을 추가했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홈페이지 내용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특기인 게으름을 부리기로 했다. 내일  마무리하기로.



세무서 담당자에게 수정한 서류를 건네주고 돌아 나왔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구 시내로 가는 버스가 금방 들어왔다. 무심결에 결정을 했나 보다. 아까 지나친 생각대로 단골 찻집에 가기로 말이다. 그곳에서 밀크티를 마시기로.  버스가 구. 시대로 들어서고 잠시 후 하차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다. 젊은이의 거리 쪽으로 걸어가면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고기를 자주 먹진 않지만 오늘은 삼계탕으로 힘 보충을 해야겠다. 작년 여름 후배들과 찾아갔던 47년 삼계탕 전문집으로 향했다. 식당과 초밥집이 마주한 허름한 골목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랑 달라지지 않은 예전 그대로다. 추억을 먹으러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정겨움을 덤으로 얻은 식사 길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진 한 잔 분량의 인삼주 병과 잔은 치워달라고 했다.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기력이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계산을 마치고 울산 동헌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길을 꺾었다. 나는 찻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식사 후 열기를 식히려고 길가 돌의자에 앉았다. 오후 네시. 열흘 만에 왔다. 그때도 세무서 일을 보고 곧장 머릴 식히려고 이곳 찻집을 찾았었다. 자주 쉴 자리를 내어주는 이곳으로 와서 긴 숨을 몰아쉰다.


오늘은 500ml  병으로 밀크티를 주문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쉼을 가질만큼의 용량이다.  

오른쪽과 왼쪽 손에 가방 한 개씩을 들고 왔다. 두 권의 책과 노트를 챙겨 왔지만 결국엔 하나만 읽고 만다.

내일 오후에 독서모임이 있는 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9월부터 한 명의 작가 파헤치기를 하는 중이다.

그 첫 번째 작가는 c.s. 루이스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여럿이 함께 읽고 싶었다.

루이스의 글은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 여겨서 곱씹어 읽는 편이다. 그가 집필한 어떤 책들은 읽을 때마다 다른 영감을 받는다.


예를 들면, 독서모임 두 번째 책으로 읽었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그중에 한 권이다. 사실, 이 책은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위아래가 뒤집히는 걸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스크루테이프는 악마의 이름이다. 스크루테이프의 조카 웜우드에게 쓴 서른 한 통의 편지를 희화한 글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 악마의 입장에서 원수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원수를 잘못 이해하면 이야기가 꼬일 수 있다.

스크루테이프와 웜우드, 그리고 그의 졸개들의 작전이 성공한 이야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그렇게 단단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자주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만 다시 일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 송영에 대한 내용이다. 스크루테이프는 거의 마지막 편지에서 원수(하나님)가 이겼다!라고 인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마치 성도가 죄를 회개하는 자기 고백의 순서와 흡사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자백하면서 범죄 목록들을 나열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승리를 인정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서 루이스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송영으로 읽혔다. 이전에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접근법으로 리딩을 했던 것 같다.



구불구불 산을 내려오면서 나를 감싸던 감정과는 멀어졌지만 최소한의 거리 정도로 다시 나와 가까워졌다. 마음 속으로 한 번. 밖으로 한 번씩 허상처럼 지나친 장소와 냄새와 소리를 따라가야 할 때가 있다. 내 안에서 증기처럼 올라온 감정이 냉온대 전선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 날이 있다. 그 때는 잡아두기보다 빠져나가도록 출로를 만들어준다. 향방 없이 걷는 걸음과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기, 일정치 않은 멍한 시선, 입맛이 방향타를 지시하는 맛집가기 등. 대부분이 무계획과 무의식의 파도를 타고 멈칫 멈칫 멈춰서는 것 만으로도 아득했던 정신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나와의 밀당은 늘 이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글을 읽는 동안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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