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혈된 시선으로도 보고 싶다면 눈을 감는다
눈앞으로 너울처럼 일렁이며 헛것이 지나간다
무성영화 필름을 돌리듯 지직대는 잡음과 더빙한 목소리들
내 눈 속에는 무수한 기억들이 잠겨있다
열이 올라 머릿속을 비운다
내 모습은 뿌연 증기로 가리어져
하얀 칠판에 제멋대로 몇 글자 써본다
감기
한파가 몰려와서 열이 난다
집집마다 일찍부터 아프다는 소식이 이것이었구나
겨울이라서 아픈 건 아니라고 전해주고 싶다
겨울은 차가운 말투로 찾아와 앓게 한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좀 더 지내보자
다음 계절에 우리는 서로 아프다고
몸이 기억하는 감기 증세로 봄맞이를 해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