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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Feb 03. 2024

어디까지 왔니?

식사 대신 글

새덕후님 가창오리 영상 캡처


* 요사이 내게 쉼을 제공하는 영상들 가운데 가창오리 40만 마리가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캡처했다.

 '그곳에 가고 싶다.' '정말 가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어서 잠시 여행을 미뤘다.


저분은 모르는 사람이다. 다만 앞서서 걷던 분인듯
하얀눈과 푸른 하늘색이 저리도 멋지게 어울리다니


울산 언양 가지산 중턱 운문산을 향해

# 읽던 걸 멈추게 하는 독서

작년 십일월에 구입한 무지노트에 어떻게 시간 활용을 했는지, 독서평과 일기와 아이디어까지 노트 한 권에 하루 일상들을 다 기록하기 시작한지 두 달이 넘었다. 가급적 그림을 그리는 건 생략하고 있고, 두 개 만년필에 검은색과 코발트블루 잉크를 각각 넣고 일과 쓰기와 독후 감상 쓰기를 구분하고 있다. 그날그날 날짜로만 구분하다가, 혹시라도 나중에 독서와 관련해서 기록한 정보가 필요할까 봐 목차를 만들었다. 새해 1월부터는 다이어리 달력을 그려 넣고, 아래쪽에는 1부터 13까지 수를 나열해서 매월 읽는 책 제목, 저자, 읽음 체크 줄을 더했다. 그렇게 1월 한 달 동안 열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읽었다고 쓰지만 읽혔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린다. 대부분의 책은 여러 편집자들과 작가들의 독후평을 듣거나 짧은 내용을 읽고 나서 무난하게 읽히는 책들을 고르고 구입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거의 읽지 않는 장르가 SF소설이라는 사실도 발견한다. 이미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온 미래 가상 소설을 아직은 재밌게 볼 기분이거나 관심이 생기지 않은 상태다.



다독을 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인지 출발했던 마음이 떠오르지 않지만, 책을 읽을수록 연결독서를 하고 싶은 욕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과식하는 걸 잠시 멈추게 했던 책이 명우 작가의 <교양 고전 독서>였다.

이 책은 1월 27일 토요일부터 읽기를 시작했고, 토요일 기온은 영하 1도씨에서 최고 영상 8도씨 날씨였다. 1월 들어서서 열두 번째 책이다. 내가 이끌렸던 글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라는 작가의 청유형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이 나를 테이블 앞으로 불러들여 함께 고민하며 생각을 나눠보자고 초대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곱씹으며 갈 수 있는 길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내 무지의 커튼을 천천히 스스로 열도록 자원하는 마 생기도록 하는 문장들이 그의 문장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문장과 문단에서 나는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곳이 도심인지 시골인지, 도시라고 하면 서울경기 지역인지 지방에 어느 도시인지, 섬인지 반도의 어느 외진 곳인가를 가공하고 만들어냈다.


작가가 가려고 하는 지점은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 '교양'이다.  <교양 고전 독서>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실상은 '교양 독서', '교양'으로 독자를 이끄는 게 그의 의도다.


아래는 프롤로그 5쪽 내용의 일부이다.

'교육과 교양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교육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끝이 나는 과정이지만, 교양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전문가가 되었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저는 21년간 교육받은 사람이고 20년 이상 교육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저 또한 "교양머리 없을" 가능성을 배제할 자신이 없습니다.'

(프롤로그 5쪽에서 인용)

 

그가 쓴 글을 조금 더 인용해 본다.

'잘 짜인 교육의 커리큘럼은 기성의 지식을 피교육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지요.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생산적입니다. 그런데 커리큘럼을 피교육자가 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수동적이에요. 그래서 교육은 때로 생산성만 얻고 피교육자를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으로 격상시키는 데 실패하기도 하지요.  반면 교양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교양이 배양되는 곳은 사유하는 곳이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곳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생각을 낱말잇기로 하자면 교양-사유-답 찾아가기-글쓰기로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1장에 책으로 올린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플라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제시하는 게 정말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12장에 선정된 책은 게오르크 짐멜의 <돈의 철학>으로 현재 인류가 좇아가는 금전만능주의 상황까지 연결하며 교양이라는 핵심어를 통전적으로 명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이 글의 소제목으로 '읽기를 멈추게 하는 독서'라고 했던 이유를 밝히자면, 노명우 작가의 프롤로그 글에서 내가 잠시 멈추는 것도 괜찮겠다고 공감해서였다.

책이 많아도 지나치게 너무 많은 현실에서 독자로서 작가는 앞으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건강수명을 대략 30년 남았다고 말한다. 고작 30년 남은 독서 수명을 유랑하는 독서인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애플리케이션이 10,115일 남았음을 인식하고는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독서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책을 자신의 것으로 육화 하기 충분한 성찰 기간을 따져서 1년에 가장 적합한 독서량의 목표를 열두 권으로 잡았다고 말한다.

<교양 고전 독서> 이 책은 전체 12장으로 되어 있으니, 책이 자신의 것으로 육화 하기 충분한 기간을 거친 열두 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급조된 사람 넷이서 가지산(저 산)으로 가는 도로 위

# 읽히는 책은 읽고 보자

새해에 나의 개인적인 독서 계획은 읽었던 책 다시 읽기를 포함했다. 이미 1월 한 달간 읽은 책들 가운데 몇 권도 다시 읽을 책 목록에 올렸다. 노명우 작가가 표현한 '육화 되는 기간'을 체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다.

'그런다고 교양이 생기겠나?'

'책만 많이 읽는다고 교양이 생기겠어?'

그의 생각대로라면 다독으로 생길 교양의 총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 사유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모를까.



사흘 전쯤, 상반기 독서모임을 인도해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 이미 수개월을 자문자답하며 숙성시킨 질문이라서 덤덤하게 '네'라고 답했다.

결국 독서의 첫 유익은 내가 누릴 것이고, 그다음이 주변인일 것이기에 담백하게 '예스'라는 대답을 주머니 속에 담아두고 지내왔다.

주제를 정해달라고 요청해서 이 책을 카피한 '성도의 교양 독서'로 정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다는 답이 왔다.


만일, 이 책에서 나눔 독서를 하게 된다면, 10장 - 책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로 정하고 싶다.

 '지배적인 미디어가 변하면 동일한 현상을 평가하는 기준이 바뀐다(인용 295쪽 하반절)'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은 기독교인이 읽고 생각할 내용이다.

기독교 신앙에 넓은 스펙트럼에서 덜 이단적이고 두리뭉실하게 인정할만한 노선이라면 아마도 복음주의일 것이다. 나는 그 복음주의 노선을 받아들이고 믿고 있는 신앙인이다. 그런데, 작가가 반지성주의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리처드 호프스태터 Richard Hofstadter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읽어보라고 추천했는데, 그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기독교의 변화에서 찾았고, 반지성주의 확산을 이해하려면 교파주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소 움찔하고 놀랐던 내용은 '교파주의와 함께 복음주의라는 흐름이 미국의 기독교 내부의 지성적 분위기를 쇠퇴시킨 또 다른 배경입니다. (298쪽 인용)'라는 문장이다.


마치 사적인 정보를 도청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는 '기독교에 대해 경험해 보지 않고 저렇게 말하는 거라'고 무시하고 듣지 않았다고 딴청부리기로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무시한다고 세상이나 교회가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좀 더 진지하게 10장 내용을 읽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의 절대 진리의 원전은 성경이다. 성경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성경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많지 않다. 성도일지라도 무엇을 먹을 것인지, 마실 것인지, 입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다만 그것을 궁극적 목적이나 최상위의 가치로 두고서 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성도라고 믿는다. 그 차별성에 대해서 성경 외에 '교양'이라는 것을 능동적으로 채워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부분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엮는 것으로 들리겠지만, 올해 상반기 책 읽기의 주제는 '성도의 교양 독서'로 정했다.




* 가창오리 캡처를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직찍(직접 찍은 사진). 2주 전, 1월22일  월요일 밤에 급조된 네 사람이 1월23일 화요일 아침 7시에 울산에서 출발하여 설산으로 바뀐 언양 가지산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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