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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May 08. 2024

오늘은 다시 처음이라

생활 에세이

지나간, 그리고 오는 수많은 날들의  처음인 오늘.


혼자만의 고독은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늘 빠르게 돌아가던 시계바늘이 너무 느리게 천천히 가고 있다면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대신 조용히 있을 수는 있다. 조용히 함께 있으면 고독도 괜찮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생경해졌나보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철자법을 확인해야 하나? '고'. '독'  '고독' 앞서 지난 4월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던가. 아니라면,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기분들이 고독의 복수형이었던건가.



3박4일의 여정


 금요일(3일) 월요일(6일)지, 3박4일간의 서울 나들이.

 작년 7월 라오스 여행차 서울을 지나는 길에 갔었던 후배 집 방문이었다. 본가가 있는 울산에서는 속 편하게 마음 까놓고 얘기할 사람을 두지 못한 관계로 서울 나들이를 택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생활하는, 높이 더 높이 용적율을 올라가는 고층 건물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어디론가 열심히 움직이는 개미떼를 닮은 무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나의 탈출이자 갑갑함을 쏟아낼 자유 공간으로 낙점되었다.


광나루한강공원을 옆에 끼고 달리던 버스가 천호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넘어가 동서울터미널로 들어서서 버스가 멈췄다. 오전 1시10분에 울산을 출발한 버스는 오후5시50분이 되어서야 터미널 하차장으로 진입해 사람들을 부렸다. 여행길에 읽겠다고 가방 안에 챙겼던  이탈로 칼바노의 <나무 위의 남작>과 최태성 선생의 <별*별 한국사 기출문제집> 한 권에 백팩의 무게가 바위덩이를 짊어매는 육중한 짐짝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책을 읽는듯 했다가 목이 창쪽으로 90도 가까이 꺾여 반대편 목줄기가 한껏 당겨져 진짜 부러질 것 같은 텐션에 잠이 깨었다가 다시 졸기를 반복했다. *희한하다. 왜 내 목은 오른쪽으로만 꺾이는걸까?

 지난 주에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서인지, <나무 위의 남작>의 주인공 코지모가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랑 닮았다.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렇다고해서 공중의 삶이 지상과 단절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코지모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누나가 만든 달팽이 요리를 먹지않겠다고 거부하면서 나무 위로 올라가 평생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죽음 이후 그의 시신은 땅 아래로 운구될테니까 마지막까지 나무 위에서 살았다고 할 수는 없을거라고 추측하면서 책을 읽노라면 결말에서 그를 '나무 위에 올라가서 평생을 살았던 남작'으로 기억하도록 결론을 써놨다.


나는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코지모가 선택한 다소 황당한 생활을 읽는 동안 실소하며 이해해보려고 애를 썼다. (완독은 며칠 뒤에)

휙휙 고속버스 뒤로 빠지는 오월의 산야. 한껏 물을 빨아들이는 오월의 나무 꼭대기들마다 연초록이 박혀있었다. 논에 물을 댄 부지런한 농부의 흔적이 아른거리는 들판. . . 들판,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 . 서빙고역에서 매서운 겨울 바람을 피하며 전철을 기다리던 친구들, 서울의 숲에서 맨발로 뛰어가며 '아빠~ 저 좀 보세요'라며 소리치던 네살배기 어린 조카의 모습, 제작년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왔던 고등학교 단짝친구의 목소리, 그 친구의 동생이 애길 업고 교회 문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찰나, 사무실에 가지 않는 날에 여유를 안겨줬던 비원과 경복궁 내원 뜰과 한옥들, 지나쳐가는 바깥 풍경에 많은 기억들이 뽀글뽀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방울방울 사라져갔다. 내 안 어느 모서리마다에 어놨던 기억들이 시간의 한계를 벗고 무질서하게 부침을 이어갔다. 그 때의 내 삶 안에 들어와서 함께 살았던 온갖 것들이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이런 시간을 보내려고 버스를 탔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한 상


미나리나물무침, 두릅나물무침, 방울토마토, 사과, 불고기, 된장쌈에 상추, 마늘쫑볶음 등 식탁 가득 한 (*여기 '한 상'은 두 가지 의미를 둘 수 있다. 첫째, '하나'라는 뜻과 둘째, '많다'라는 의미를 지닌 제주도 방언 '하영') 차려놓은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어머니는 저녁을 하영(많이,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후배는 내가 오면 엄마랑 셋이서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작년부터 식사조절을 시작한 내게는 집밥만한 게 없다. 나는 식탁 위에 음식들을 하나씩 클리어하며 부숴내는데 후배의 어머니는 연신 작은 눈에 눈웃음으로 아이라인 그리듯 하셨다.


어머니와 둘이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후배가 돌아왔다. 평소보다 한 두 시간 일찍 일을 마쳤단다. 어린이날 행사로 센터에서 하루종일 풍선을 불고, 선물 꾸러미를 나누고 준비하느라 중간중간 문자 확인을 못했다지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반가운지. 동센터에서 퇴근하면 늦은 저녁인데도 다시 보고서를 써야하는 후배가 아닌가.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에서 어느 날 혜자(한지민)와 준하(남주혁) 대포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얘길 나누는 장면이었다.  혀꼬부라진 투로 혜자가 했던 말,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해!" 혜자의 그 말은 "나는 내가 잘 됐으면 좋겠어!"라는 의미였지. 더 깊은 속뜻은 '자신이 후져도 후지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생활하는 직장인 후배가 평상시 퇴근 시간보다 일찍 귀가해서 나와 만나는 순간에 나는 좀 애틋했다.

"우리 내일 어디갈까요?"

"파비앙이라고, 프랑스인인데, 이름 들어봤나? 그 사람 집이 인왕산 근처인가 보더라고. 자기가 자주 산책하는 장소를 소개했었는데. 내일 우리 서촌쪽으로 한번 가보는게 어떨까?"

"좋아요!  저야 서울 살아도 언니보다 더 가본데가 적으니까. 그렇게 해요~"


"내가 한달간 요리학원 다녔다고 얘기했잖아. 먹고 싶은 거 하나 정도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주문만 하셔~. 그리고 쌀이나 찹쌀 가루 있으면 떡도 만들어 먹지 뭐"


"네, 그렇게 해요. 내일 우리 만들어 먹어요."





너의 시간을 누가 뺏어갔니?


"강변에서 지하철 타고 바깥을 보면 서울이 왠지 구도심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슬럼화되는 구역들이 새 건물들 사이사이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풍경이 답답하게도 보이고. 그렇더라고~.  동서울터미널은 작년에 봤던대로 상가들을 들이던지 공사를 미루니까 미관상 안좋던데. 언제까지 그렇게 놔둘건지..."

2호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승하차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시했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도 수수한 차림의 사람도 열심히 각자의 방향을 향해 가는 모습. 누구한테 뺏길세라 시간을 쪼개가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익명의 시민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었다. 아니면, 작은 소리라도 '힘내시라' 응원해주고 싶긴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도심 안에 들어와서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심산으로 후배 집으로 놀러온 나. 나는 서촌 산책만 하고와도 충분히 쉼을 누리고 울산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후배한테 앞전에 얘기했던 공황장애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 자정이 넘었고 새벽 두시 정도까지 하던 말을 멈추고 잠을 청했던 시각이 세 시. '내일. 우리. 서촌에 가야하는데...'

돌침대 대용으로 거실 카우치에 뜨뜻한 온돌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머릴 둔 거실 모서리 쪽으로 고기 냄새가 몰렸나보다. 우리 집에서도 아침마다 맡았던 냄새였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로 보아 고기단백질 냄새인게 맞는 것 같다. 거실 베란다 문을 열기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했다. 아침 아홉 시다. 나는 잠결에 어머니가 내가 차 놓은 이불을 어깨까지

 덮으시는걸 느꼈다. *약간 서늘한 기운이어야 잠을 자는 습관 때문에 나에게 이불은 장식용이기도 하다. 자다가 몸이 차갑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끄집어 덮는 게 익숙하다.


이렇게라도 곳곳을 돌아다녀야 쉬게되지. 내 시간이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연휴에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09번 마을버스를 탈 수 있다. 버스 종점이 수성동계곡인데 초행길이라 우리는 버스를 타고도 엉뚱한데 하차해서 서너 정거장을 걸었다. *걷기를 잘한 것 같았다. 골목마다 여기가 서울 한복판인가 싶은 정도로 고택과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는 낯설지만 드라마 세트장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인왕산까지 오르기엔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지 싶어서 수성동계곡 근처를 걷다가 잠시 쉬었을 뿐, 우리는 다시 09번 마을버스를 타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딱히 옷가지들을 사야겠다는 목적 없이 서촌에서 남대문, 남대문에서 명동, 그리고 종로3가를 걷고 걷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들의 쉼이면 되는 거였다. 남대문 앞을 지나는데 노숙자의 방화로 소실됐던 남대문 화제 장면이 기억에 생생했다. 그 때 나는 엠비 욕을 얼마나 해댔는지... 욕을 아무리 바가지로 해봐야 수명만 길더라는 슬픈 현실. 어쨌든, 남대문에서 여름 옷들을 샀고, 명동 화교소학교 방향으로 걸었다. 아침을 먹은 뒤 첫 끼로 오후 4시가 다 되어서 우린 중국대사관 근처 식당에서 요기로 물냉면을 먹었다. 중국풍의 물건들, 향들, 거리를 지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들리는 켄토니즈(광동어)와 북경 발음에 취해서 길지 않은 골목길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명동성당에 대한 추억이 있다.


물냉면을 먹고나서 곧장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어가지 못하는 이끌림이 그곳에 있다. 명동성당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민토(민들레 영토)' 자리. 대한민국은 외국 문화가 들어오면 빠른 속도로 한국화시키는데, 커피 문화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은 어떤지 모르지만 울산은 카페가 광장 규모로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울산 외곽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산뷰, 논뷰, 저수지뷰' 해가며 온갖 뷰 따라 대형 카페가 들어서 있다.

*대학시절 소담하고 저마다의 특색을 갖춘 커피숍에서의 추억은 뭐니뭐니해도 단체 미팅이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친구랑 가끔 찾아갔던 '미라보 다리' 카페에서 마셨던 단골 메뉴 '비엔나커피'. 그 시절 나는 맛으로 커피를 마시기보다 분위기에 취해서 젊음에 취해서 커피숍을 갔었던 것 같다.


**명동성당 앞에 지금은 인도음식점이 있는 자리가 예전 '민들레영토'였다. 그 영토가 사라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커피 시장이 확장되었다는 것. 유행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모습은 명동성당 입구에 북카페가 들어선 걸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밋밋한 풍경을 단장해서 시선을 끌면 사람이 늘고 명소가 되고 돈이 오니까 계속해서 바꾸고 또 바꾸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한 동안 과외를 받았다. 과외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분 집 바로 옆에 울산성당이 있었는데, 학교-성당-과외선생님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친구랑 성당 내부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성당 옆 문 앞에는 성수인지 분수인지 물받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서남북 순서는 몰랐지만 성호를 긋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수녀들이 뭔가를 읽고 성가를 불렀던 것 같다. 엄숙하면서 거룩한 분위기였을거다. 내가 개신교 신자가 되고나서도 성당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진 않았다. 게다가 명동성당은 명동과 이어져 있고, 민들레영토 바로 앞이었으니까.


토요일 하루.

내게 온 하루는 언제나 처음인걸 다시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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