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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Apr 28. 2024

중압감 덜기와 한능셤 더하기

마침 이때


인동나무 터널을 지날 때

인동나무 꽃 줄기 아래로 아줌마 둘이 들어왔다

나는 지나가는데 저분들은 한참 동안을 도란도란 무슨 말 잔치를 벌이시는지...

인동나무 꽃을 보았다

인동나무 가지에 사람들이 걸터 앉았다




4월도 이틀 남았다.

운전면허 적성검사, 사업장 휴업연장신고, 한식조리사 필기셤, 각종 독서모임 준비, 가족들과 저녁밥 먹기, 고용센터 영상교육과 구직활동. 여기까지가 4월 동안 발품 팔고 시간 절약하면서 활동해야 하는 과제 아닌 과제였고, 과제로 남아있는 일정들이다. 일정표에서 여러 번 날짜를 변경하고 옮기고 있는 일을 제외하면 9할 정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한달간 요리학원을 출석하며 한식과 떡을 배운 일차적 보람을 얻은 건 뭐니뭐니해도 필기 시험 통과였다. 60점 이상만 받으면 된다!고 중얼중얼 자기암시를 하며, 학원에서 요리 과정을 수강한 지인과 함께 시험 나흘 전에는 학원 인근 스터디카페에서 수험생의 열공모드에 들어갔었다. 조리학과 학생들에게는 전공이라 몇 개 정도 틀리느냐를 가감했을지 모르지만

기셤 합격만이 간절한 나와 같은 사람에겐 이해하면 된다는 말은 언강생심. 어릴 적 할머니가 지어주신 조밥먹는 것과 닮았던 것 같다.

(*제주도는 벼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토질의 특징상 많은 물이 없어도 재배가능한 곡류로 '조'가 으뜸이었던 옛날이 있었다. 방학 때 한번씩 조부모님을 만나러 가서 대가족들이 정지(부엌)에 둘러앉아 먹었던 주식이 조밥이었다. 육지에서 자식들, 손주들 왔다고 귀한 쌀밥을 부뚝막 가마솥에서 지어냈지만 열 다섯 명 이상이 밥을 먹기 위해서는 조를 섞을수 밖에 없었던거다. 백미와 초록빛의 조가 섞여 나왔던 날도, 찰진 백퍼센트 조밥이 밥공기에 담겨져 밥상에 올라왔던 날도 모든 날이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으로 그득했음을... 그 사랑밥 한 그릇이 내 입에서는 백미 같지 않아 거칠고 끈적였던 기억이난다. ) 하지만 한 번에 필기셤 합격이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평균보다 조금 더 점수가 나와서 앞으로 실기셤을 내다봐도 되는 희망이 찾아왔다. 한식 과정이 마무리 되고 남은 나흘 동안 떡 만들기를 배웠다. 떡을 만들면서 알아챘다. 송편이든 시루떡이든 지짐떡이든 집에서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을. 그랬던 시절은 이젠 아득한 옛 추억이 되었고, 시장 떡집에서 용기에 포장된 각종 떡을 장바구니에 골라담고 돈 계산을 마치면 손쉽게 떡을 얻게 되는 지금이다.

 

송편(좌).  쇠머리떡(우)
무지개떡(좌), 경단(우)

4월 중순, 수강 기간에도 구직 외 활동으로 인터넷 영상교육을 듣고 제출한 데 대해 고용센터 담당자로부터 '서류가 미비하니 서류를 보충해서 다시 제출하십시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 문자 내용이 뭐라고 조리하는 과정 동안 심장이 떨리고 강사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강의실 느낌과 호흡을 겨우 가다듬고 내가 해야 할 작업이 무언지를 다시 체크했다. 센터에서 제출하라고 하는 학원수강증과 출석표를 첨부하라는 고용센터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하나씩 절차를 밟아 스캔한 서류를 첨부해서 발했다. 발송하고 즉시로 담당자와 통화에서 서류를 받았으니 일처리를 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빠르게 뛰던 심박수가 천천히 회복되는걸 느꼈다. '정말 이게 뭐라고?' '뭐지? 왜 이렇지?' '내가 이 정도로 소심해진거야?'  하지만 그냥 갑자기 어쩌다가 내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겠는가. '갑자기'라는 부사로는 내가 왜 심장이 두근거리는지를 호흡이 불규칙적이 되는지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납득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이 갑자기'라고 말하면 알 것 같다.


'그동안!'이라는 단어 안에 압축된 시간들을 풀면서 8년여 기간 동안 근무했던 곳을 퇴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들여다봤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동일한 사안을 두고 해석차가 벌어지면 원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서로의 의견과 이해가 다소 좁혀졌다고 느껴지지만 다시 한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야기 한다. 그렇게해서 각자의 의견이 거의 붙었다고 확신이 들면 합의하고 결론을 내리지만 어쩔수 없이 사람과의 관계는 상처가 난다. 의견차를 좁히려고 공들이고 수고한 시간도 노력도 다 보상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인간간에 생긴 상처는 금방 지워져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기도 하지만 흔적이 없는데도 꽤 오래가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남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인간 관계를 지혜롭게 풀고 잘 마무리하려고 단호하게 내렸던 결론도 고치고 입장을 바꿔보기도 하는 것이다.

 전히 남탓?! 그럴수 있다. 사무실 측에서는 여전히 나를 탓하는 감정의 쓴맛이 가시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러하다. 나도 지난 1월은 써서 뱉고 싶었다.


퇴사하고 사무실 책장과 책 꾸러미들을 빼서 새로운 장소로 옮겨놓고 일주일에 한 두번 서가로 가화분에 물을 주고 온다. 1월부터 매월 월세와 상가 관리비를 지출하면서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서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겨울이 오고 달라지는 변수들에 따라 그곳이 그대로 남아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불확실한 서가의 운명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압박감이 적잖이 있다. 외관상 나름 열심히 독서모임도 하고 관심있는 분야를 배우고 봉사하면서도 지난 일들과 현재 벌어지는 일,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고 있는 미래가 뒤섞여서 엎어졌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상황이다. 래서 온갖 류의 부담들 가운데 한 가지였던 봉사를 잠시 접게 되었다. 차분한 주일 아침이 얼마만인가. 느긋하고 가볍다. 몸도 마음도 가벼우니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도 덩달아 관대해진다. 왠만한 일은 모두 다 오케이다.



한능셤 원서 접수!

엊그제 였다. 드디어 제70회 한국사능력시험 원서접수를 했다. 요리학원 수강생 가운데 "한국사 시험은 왜 보는데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이요~ 한번 쳐보고 싶었어요." 했다. 발단은 이렇다. 함께 유치부 봉사하는 선생님이 내년에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데 한국사 시험을 봤고 70점 이상을 받아서 2등급이라고 했다. 거두절미하고 나도 한번 도전하고 싶었던 한국사를 이번 기회에 시작해보기로 마음 먹은거다. 그분이 보던 책도 받았고, 별샘 최태성 샘의 무료강의 영상도 있겠다 시험을 위한 환경은 갖춰졌으니까.

그런데 공부 범위가 만리장성이다. 만만치않다. 시작한지 일주일인데 겨우 책의 절반 분량을 공부했다. 공부는 시험 전날까지 열심히 들여다보며 암기하고 필기하는 것이지만, 원서 접수 과정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내가 있는 울산 지역 원서접수일은 4월25일~4월26일이었다. (이후 4월30일까지 접수 가능) 24일 요리학원 종강 이후 한달 만에 아파트 뒤편 수변공원 산책길을 느리게 걷고 와서 인터넷 접수를 하려니 지역 내 모든 시험 장소가 '마감'이라고 뜨는게 아닌가. 헐~~ 그렇다면 내일은 꼭. 기필코. 접수해야겠군. 다음날 4월26일 오후 한시에 사이트에 접수했더니 내 앞으로 1,600 명 이상 내 뒤로는 800명 정도가 동시 접속을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사는구나!' 감탄과 충격이 밀려왔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군!' 이라며 삶에 대한 의지에 불을 지피는데 세 번 정도 튕겼다가 들어가고 하다가 겨우 '임시장소'에 선택하고 접수를 마쳤다. 2만7천원이라는 비싼 원서비를 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원서접수 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이 들었지만, 어찌 되었건 한국사 시험을 위해 앞으로 D-26일을 열심히 달려볼까 한다.

 

'갑조네 시페루스' 작년 여름 부산 나들이 길에서 노포동터미널 맞은편 화원에서 여섯 가닥 정도에 2천원 주고 구입했던 식물이 이렇게 무성하게 물에서 잘 자라고 있다.


며칠 전 금요일 독서모임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나누었다. 현음사에서 출간된 책의 목차는 상중하 세 권으로 나누어져있다. 상권에서는 등장인물 '선생님'을 알아가며 친분을 맺는 과정을 비밀에 접근하는 주인공 '나'의 핵심 질문과 관심을 보여주다가, 하권에서  일인칭 '나'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선생님이라 불렀던 인물의 유서 내용을 통해 선생님에 대해 작가가 선생님의 사연을 들춰내고 있다. 산생님은 부끄러움으로 평생 살았고 부끄럽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여졌다.

내가 받은 메시지는 '마음은 드러내자' 였다. 한달 동안 컨디션 난조와 속 감정의 부침을 반복하는 가운데 소설 <마음>에서 발견한 나를 위한 권면이기도 한 것 같다.   속시원하게 해소되었는지 검증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지금으로서는 날 위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렇게 해보겠다'는 자기 고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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