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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Sep 15. 2024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소소한 하나

*비를 뿌려줄까 말까 징하게 고민하던 하늘이 결국은 포문을 열었다. 카페문을 열고 나왔던 시각이 오후 6시 즈음. 아파트 안으로 들어설 때 분무기로 물 뿌리듯 하늘이 비를 뿌리는걸 어설프게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먹은 식탁에 멍하니 앉아 동생네가 몇 시쯤에 올지 시계를 확인했을 때가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짙은 밤하늘에 비 내리는 상황을 볼 수 없었던 언저리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것 같다. 지열이 식을 동안 몇 시 더 지나야 공기가 시원해질까? 닫아놓은 베란다 문을 살짝 열고 떨어지는 빗물을 받듯 손바닥을 위로 쫙 펼쳐 보지만 훅한 열기가볍게 잡힌다. 당장 에어컨을 끄기엔 미달된 기온이야. 미달이라고. 비가 조금 더 내려주면 문을 열어줄 수 있지.


교회에서 돌아와 점심 메뉴로 안 먹던 라면을 두 개 끓여서 부모님과 셋이서 나눠 먹었다. 라면 안 좋아한다며 노랠 부르던 사람이 나였던 건지, 내 안에 다른 인격이었던 건지 라면을 거부하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지고 나는 끝까지 국물 속 건더기와 풀린 계란 쪼가리들을 모아 모아 긁어먹었다. 밥 반공기도 덤으로 보태서 말이다. 라면을 안 좋아하지만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지 않은 것이고 건강을 위해 안 먹는 거겠지.


식후 식잠!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8월에 코로나 양성 이후 보름 정도 기침을 달고 지내다가 그다음에 찾아온 것이 중이염, 다음다음에 온 것이 안구건조증. 현재는 귓구멍에 솜뭉치를 쑤셔 넣은 것처럼 외부에서 들어와야 할 소리들이 웅웅거리듯 진동을 몰고 온다. 의사는 차츰 회복될 거라고 명절을 대비해서 삼일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 약을 추석을 이틀 앞두고 다 복용했다는  현실에서 기댈 건 의사가 차츰 나아질 거라고 말했던 '차츰'에 방점을 고 믿음을 갖기로 했다.


식 잠을 마치고 눈을 뜨면서 좋아했던 유튜브 영상을 에피소드 순서별로 터치터치. 오후 3시 반이 지났는데 점심때 나랑 라면을 나눠드셨던 부모님이 외출하셨다. 늘 그렇듯 조용히 어딜 가신다는 귀띔도 없이 나가셨다. 아마도 바닷가 컨테이너 냉장고에 넣어뒀다는 명절 찬거리들을 챙기러 가셨나 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녁 식사 때까지 두세 시간이 남았으니 머리도 식힐 겸 아파트 동문 앞 포르투갈 카페로 가보자. 한 달 가까이 커피를 끊었으니까 포르투갈 전통커피 마자그 마시면서 복잡한 두뇌를 리셋시켰으면 좋겠다.


카페 주인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한 달 여 동안 발길이 뜸했어도 환대를 받으니 괜히 보답 인사를 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늘 마시던 마자그란 한 잔과 평소에는 안 먹던 쿠키를 추가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기 전에 쿠키는 거의 다 먹었고 뒤이어 나온 음료에 빨대를 꽂고 기분 좋게 빨아들였다. *나중 매장을 나올 때 주인이 음료 맛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까지 몰랐던 사실 하나는 커피를 투샷을 넣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밤도 '긴 밤 지새우며~'일 확률이 아주 높을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동네 한 바퀴로는 끝맺음되지 못한 말잔치를 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위에 내용이 아니다. 이제부터 잠시 동안이나마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쓸 그 길이와 넓이가 묘하지만 참 적당한 지점이라는 마음이 든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 아홉 시 반쯤에 동생네 가족들이 집에 도착했다. 이번 추석은 온 가족이 큰 결정을 앞두고 있어서 의견이 충돌할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다.



ㅡ 다음에 이어 쓰겠습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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