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은 아니고 설득된 것
나는 반팔 스웨터 밑단에 고무밴드를 넣으려고 핀을 찾아 서랍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쨍한 꽃분홍색 스웨터는 한 달 전 동네 옷가게에서 구입했다. 호객군을 자처한 가게 주인의 친구가 색깔이 너무 이쁘다고 나한테 입어보라고 권했던 옷이다. 나는 목을 가리는 옷을 선호하지 않는데도 쨍한 색깔에 맘이 흔들려서 구입했다.
곧 9월이고 그 옷을 꺼내 입어도 될 적기를 어림하면서 옷 밑단에 고무밴드를 넣을 요량으로 서랍에서 옷을 꺼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데로 뭉쳐지거나 펼쳐지는 옷을 살펴봤다. 옷 옆 솔기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실을 조금 뜯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박음질 주위로 서너 땀을 실따개로 끊고 구멍 속으로 고무밴드를 집어넣었다. 너무 바짝 당겨서 허리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아야 하고, 너무 느슨해서 밴드를 넣은 티가 안 나면 안 된다. 손을 본 옷 밑단은 적당한 탄력으로 허리춤에 걸쳐져서 바느질로 구멍을 도로 메꿨다.
일본을 향해 동진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이곳에는 새벽에 한차례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나절 앞뒤로 열어놓아 베란다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기운차게 지나갔다. '그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더워지지 않을까?!'
#어떤 물건은 못 버리는 게 아니다
나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작은 방에 책 꾸러미들을 오늘은 치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3주째 방 입구에 방치해 뒀는데 그 책들은 교회에 기증할 목적으로 정리해 둔 것들이다. 그때는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가 멈추고 에어컨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서 새 물건으로 교체하라는 사인을 받았던 때였다. 입추가 지나면 고장 난 에어컨을 장식용으로라도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던 상상은 폭염으로 금세 꺼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모든 행동을 멈추는 게 최고의 미덕이었던 폭염주의보가 거의 매일 문자로 날아왔다. 나의 성격상 정리할 일이 한 가지 생기면 주변 물건들도 겸사겸사 정리하게 되어서 책장을 뒤집어엎었다.
예전에 집집마다 책꽂이에 붙박이처럼 꽂혀있던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백과사전 등등의 평균 출판연도가 족히 삼십 년은 되는 책들이 뒷방 베란다 쪽 바람막이용으로 탑처럼 쌓여 있었다. 그 옆 책장 맨 꼭대기엔 중국어 초. 중. 고급 교과서부터 중국고전, 회화책들이 천장과 맞닿아 있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중국어 관련 책들의 허접한 인쇄본을 볼 때마다 90년도 말 중국어를 공부하던 상해 시절이 떠오른다. 그 향취는 닦아도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책을 치우면 기억도 아련할텐데 치우지 못한 채 내 공간 어딘가에 두고 함께 가고 있다. 다시 중국어를 하면 기본은 하겠지만 어학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솔직히 기운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런데도 중국어 교본은 내 방 어딘가에 놔두고 싶어서 책장 정리를 하면서도 다시 그 책들은 맨 꼭대기에 차곡차곡 올려뒀다.
#엄마, 호박잎 쌈 먹게 좀 쩌봐~
"엄마, 호박이파리 다듬었는지 확인해 봐." "나는 옷 밑단에 고무밴드 넣을 거라 엄마가 좀 다듬어줘."
나는 고무밴드 넣을 핑계를 둘러대면서 엄마의 일거리를 만들었다. "호박잎이 좀 늙었네. 억세다." 엄마는 여리고 부드러운 이파리들만 골라가며 줄기를 다듬었다.
"엄마, 그러면 반은 국 끓이고, 반은 찔까?"
나는 속으로 국이나 쌈으로 메뉴별로 호박잎을 다 먹고 싶어서 은근히 엄마에게 물었다.
"아이, 됐다. 그냥 다 쩌~."
"알았어. 다 찌지 뭐..."
내일은 구. 중앙시장에 들러서 빡빡 된장을 좀 사 와야겠다. 지난번 교회 권사님이 재래시장 골목에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고 점심 한 끼 먹으러 가자했던 곳에서 입맛 돌아올만한 빡빡 된장을 맛봤다. 그 후로는 내가 직접 강된장을 끓이지 않고 노포의 주인 손맛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강풍이 부는 오늘 아침에 장바구니에 나눔 할 책을 싣고서 교회로 갔다. 가는 길에 양산이 바람에 뒤집힐 것 같아서 햇볕을 받으면서 걸었더니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책을 다 부려놓고 오는 길에 싱싱한 캠벨 포도 한 상자를 샀다. 요즘엔 재래시장에서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대신 은행 계좌로 직거래가 관행이 되어가는지라 포도를 담는 동안 폰뱅킹으로 포도값을 송금했다. 카트 안에는 어깨에 둘러맸던 파우치 가방 하나, 조금 더 읽고 싶은 책 한 권, 포도 한 박스를 담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나는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포도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과일가게 주인이 "오늘 가져온 물건입니다." 했듯이 포도는 과연 싱싱하고 가지에 빈틈없이 알알이 달려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포도 두 송이를 씻어서 부모님 드시라고 드렸더니 거봉보다 크기는 못한데도 그 맛이 참 달고 싱싱하다며 좋아하셨다.
#고민. 없어서 안 하나. 잠깐 멈춘 거지
멈추기로 마음먹으면 멈춰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감사한다.
7월 말부터 한 달간 인생 수업을 받았다면 딱 이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엄마가 해오신 일을 타의로 그만 둘 상황이 되었다. 은퇴라고 이름 붙이면 '은퇴'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해녀 일을 좀 더 하고 싶다셨다. 아버지는 팔순이 넘은 아내가 자맥질을 하고 잠수하러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지금쯤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오면 안 되는데.'를 속으로 되뇌면서 바다 위에 부유하는 엄마의 실루엣을 초조하게 기다려왔다. 그 기다림은 다른 말로 하자면 '불안이자 두려움'이었을 거다. 아버지는 무서움을 참아가며 엄마를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그 바닷가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다.
"엄마, 솔직히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계속 일할 생각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 나이에 대부분 병원에 있거나 다 아프거나 그렇잖아. 왜 계속 일을 할라 그러는데?"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누가 나 혼자 좋자고 일하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
"엄마, 이젠 자식들한테 용돈 받으면서 그냥 쉬어도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 자극할만한 얘긴 하지 말고. 정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라. 내가 들어줄 테니까."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랬던 시간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감당할 생각은 단순할수록 좋겠다. 7월 말부터 8월 현재까지 한 달의 짧은 기간 동안 내가 내려놓게 된 것은 '복잡한 생각'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다 처리하고 해결할 수가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첫 발을 떼면 그다음 걸음을 어디로 향할지가 보이는 걸 경험하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부모님 앞에서 두 분은 은퇴하셨다고 선언했다. 은퇴를 했어도 한참 전에 했어야 할 연세지만 어떤 힘으로든 이런 날이 온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은퇴 다음 무엇을 할지 궁금한 마음이 불안으로 치환될 수도 있지만 당분간 시간 죽이기를 하면서 보내셔야 될 것 같다. 다행히 두 분은 8월 초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거의 매일 동해안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가신다. 핑계야 갖다 붙이면 되는 일. '에어컨 전기료 아끼는 차원에서. 바닷바람맞으러, 사람들 구경하러...' 모든 외출에 어떤 핑계를 대든 두 분이 쉼을 갖기를 바라며 가끔 김밥도 싸고, 시원한 얼음물을 텀블러에 담고, 고구마를 삶고, 옛날 소시지를 계란물에 굽기도 한다.
나이를 먹기에 지난 것들이 모두 푸르다고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긍정의 눈과 잘 될 거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의 미래에 대해 선언하고 있다. 부정적으로 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두 분의 남은 여생을 슬프게 엮을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의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무게와 불확실이 있지만 잘 될 거다. 잘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야 할 때는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다행히 다른 염려는 멈추었고, 나는 내 능력치만큼의 문제만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