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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Feb 23. 2022

피곤할 때는 같은 양을 먹어도 배가 더 아프다

 어렸을 적에는 간혹 배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먹었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거나 아주 가끔 있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때. 왜 그랬느냐하면 자주 먹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는 먹을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나는 식물성 크림으로 만든 옛날식 생일 케이크를 그리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느끼해서 구토감이 치밀 때까지 계속 먹었다. 엄마, 아빠가 보기에 내가 맛있어하고 잘 먹는다고 생각해야 다음에도 사줄 것 같아서 별로 맛이 없었지만 꾹 참고 입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 훈련을 해서인지 나는 식사량이 많은 성인으로 자랐다. 같은 체형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먹는 양은 월등히 많았다. 친구들은 통통한 내 몸을 보며 “상희는 먹는 거에 비하면 살이 안 찐 거야”라는 얘기도 했다. 성인이 되서는 내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참으로 행복한 한 때였다. 


 30대 중반 이후로 과식을 하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낭신 때문에 콩팥, 간에 물혹이 커져서 뱃속을 차지하는 점유율이 늘어나 위가 음식을 소화할 만한 자세를 잡기가 어려워진 것 같았다. 과식을 하거나, 연이은 끼니를 푸짐하게 먹으면 배가 아팠다. 그래서 요즘에는 소식을 하려고 애쓴다. 애쓰긴 하지만 쉽진 않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다. 어느 정도 양을 먹으면 아프더라, 어느 정도 느낌이 왔을 때 멈추면 괜찮더라 같은. 그런데 이 감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이 피곤하면 평소에는 괜찮았던 양이 통증을 일으킨다. 


 어느 날 점심, 평소 먹는 양보다 약간 과식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플 정도는 아니니까, 저녁에 덜 먹으면 괜찮은 양이야’하고 마음 놓고 있는데 한, 두 시간 쯤 있다가 윗배가 묵직하니 아파온다. ‘아니, 내가 이 정도도 못 먹는단 말이야’하고 한스러워 하면서 내 소화 능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면, 위는 잘못이 없다. 그저 그날 몸 전체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라는 결론이 난다. 

 몸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조금 많이 먹어도 괜찮다. 더부룩하긴 해도 배가 아프진 않은 운 좋은 날도 더러 있다. 그런데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 평소보다 덜 먹어도 속이 더부룩한데 평소처럼 먹거나 많이 먹으면 십중십 배가 아프다. 하루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끼니를 걸러봤다. 그랬더니 아, 변비 때문에 치질이……. 컨디션이 안 좋아도 꼭 끼니는 챙겨 먹어야 한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간 식단으로. 조금이라도 꼭. 고구마 조그만 조각이라도, 양배추 한 웅큼이라도.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어떤 날이냐, 월경 기간 전후, 배란 기간 전후, 기름진 야식을 먹은 다음 날, 체력에 비해 과도한 일을 한 날과 그 다음 날. 이번 달 달력에 컨디션이 괜찮았던 날과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꼈던 날을 기록해봤는데 20일 동안 9일은 컨디션이 괜찮았고, 11일은 컨디션이 나빴다. 보니까 2-3일 정도 나빴다가 2일 정도 괜찮은 사이클이 반복됐다. 


  그래,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 소식 따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아픈 바람에 건강하게 소식할 수 있게 된 거 아니냐. 어차피 소식해야 하니 살 많이 찔까봐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으냐. 좋게 생각하자,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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