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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리 Aug 30. 2020

백전백패 말싸움의 언어

아니그게아니라리즘 버리기

우리 부부의 주 언어는 영어이다.

하지만 내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급이 아니기 때문에 싸울 때는 내가 최소 3배는 더 불리하다.

나의 생각을 100% 모국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싸움은 감정적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에 사소한 논쟁도 큰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이다.

그래서 남편도 나의 이 언어적 불리함을 인정하고, 우리가 공용 언어로 그의 모국어를 취하는 대신 싸울 때에는 내가 늘 마지막에 이기도록 져주는(?) 그런 어드밴티지를 주고 있다.

번번이 말싸움에서 지는 사실이 자존심 상해서 늘 남편에게는 언어 핑계를 대지만, 사실 나는 말싸움을 원체 잘 못하기 때문에 한국어로 싸운다 한들 나는 똑같이 늘 졌을 것이다.  


나는 말싸움에 아주 젬병이다.

한국인들이 문장에 '아니'를 안 쓰면 대화를 못한다더니 나 역시 앵무새처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내 말은'만 반복하다가 분노와 억울함에 눈물이 차오르고 만다.

특히나 남편은 내가 울어도 '오구오구 울지 마요'가 아니라 '다 큰 어른이 왜 울지? 다 울었으면 다시 천천히 말해봐' 하는 AI 같은 논리 우선주의라 나는 더 쉽게 화르르 불타오른다.


내 논리와 이성을 누르고 그렁그렁 유치한 감정과 분노가 차오르면 그때부터는 오직 얘 하나 이겨먹겠다고 높은 옥타브의 비논리로 응수하게 되고 그래도 이기지 못하면 얄미움에 꿀밤이라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1호선의 파이터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비논리를 이겨먹을 논쟁가는 없으니 이때 즈음이면 마음이 더 넓은 자가 수그리는 수밖에.

이렇게 되면 이겨도 지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싸움이 되어 이겨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오히려 지팡이를 먼저 휘두르는 1호선 파이터 할아버지들을 이해하는 내가 싫어져 자괴감이 든다.  

그러기에 남편과 싸울 때는 늘 최대한 감정을 뒤로하고 이성을 우선하려 노력한다.


의식적으로 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논쟁의 요지에 집중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아니 그게 아니라'를 그만 쓰는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 이상, '아니~~'로 상대방 말을 부인부터 하고 말하기 시작하는 버릇을 고치면, 상대방의 의견에 근거한 나의 의견을 조금 더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어 좀 더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 쉬워진다.   

 

영어에도 비슷한 용어가 있다.

바로 'Whataboutism' (aka whataboutery).

논쟁할 때 상대방 말의 무조건적인 반박을 위해 'What about @@?', 'How about %%' 하면서 논쟁과 상관없는 주제를 가져와 본질을 흐리는 논리 오류이다.

이러면 둘 다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할 수 없고 오로지 상대방의 반박의 반박을 위한 대화밖에 안돼 결국은 지지부진 영양가 없는 싸움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Cover and Content Image credit: Freepik

물론 말버릇 고치는 것이 어렵듯 싸움 버릇 고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특히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로 싸우면 사람이 더 쉽게 유치해진다.

그래서 이론은 알고 있음에도 말보다 눈물이, 때로는 주먹이 앞서서 나는 최대한 교양 있게 싸우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우리 모두는 성격이 다 제각각이니 전혀 안 싸울 수는 없지만 (특히나 24/7 같이 사는 부부는)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싸움의 과정은 성격과는 무관하게 누구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어른스럽고 우아하게! 깔끔하게 싸워서 이겨먹기 위해! (?)

나는 오늘도 몰래 메모장에 '싸울 때 써먹을 논리적 영어 표현'을 차곡차곡 적으며 나의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칼을 간다.


추신: 이 글은 대단한 싸움의 팁처럼 보이지만 실은 번번이 지는 싸움의 하수가 앙심을 품고 쓴 글이기에 싸움의 고수가 보면 하찮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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