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하고 깔끔한 레모네이드 맥주 라들러 (Radler)
맥주의 나라 독일은 의외로 맥주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다.
딸기향 맥주, 로즈 맥주, 커피 맥주 등등 다양한 향과 맛의 수제 맥주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독일은 오직 맥아, 물, 홉 이 세 가지만 허용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온 대표적인 전통 방식의 맥주가 바로 라거.
앰버 라거, 던켈 라거 등등 레시피에 따라 다양한 맥주들이 있지만 그래도 뿌리는 같다. 맥주의 축제 옥토버페스트에서도 옥토버페스트비어라는 라거 스타일의 한 종류 맥주만 서빙하지만 독일의 전통 맥주 하우스(브루어리)마다 선보이는 다양한 무게감의 라거들을 맛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취해서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새도 없겠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술은 술.
한 여름 뜨겁게 내리쬐는 유럽 햇살 아래에서 몸을 점점 더 데워주는 맥주만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무언가 상큼하고 시원한 마실 것 뭐 없을까...?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독일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때는 오래전 뮌헨 근교의 한 자전거 대회.
그날따라 구름 한 점 바람 한 숨 없이 햇빛 쨍쨍한 날씨에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겠다. 대회 측에서 선수들에게 물과 맥주를 제공해줬지만 땀을 물처럼 맥주처럼 흘리는 선수들에게 맥주는 금방 동이 났고, 어쩔 수 없이 남아있던 레몬맛 소다와 맥주를 반반씩 섞어서 제공하였다.
물론 선수들은 이 음료에 아주 행복해했고 그 이후로 뮌헨에서는 맥주와 레몬맛 소다/레모네이드를 반반씩 섞은 음료를 '사이클리스트 (Cyclist)', 독일어로 Radler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 역시 유럽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비슷비슷한 라거에 (그것도 얼마나 큰 잔에 나오는지...!!) 질려갈 무렵,
P가 시켜준 라들러 한 모금에 온 몸에서 별이 뿅뿅하고 치솟는 기분이었다.
너무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상큼하지도 않고, 맥주의 텁텁함도 없고 시원한 레몬맛 보리차(?)를 마시는 듯한 이 가벼움!! 아니 이런 게 있었으면 처음부터 알려줬어야지!!
그 맥주에 보수적인 뮌헨의 맥주 하우스들이 맥주 탭에 꼭 라들러 메뉴를 하나씩 끼워 넣을 정도로, 라들러는 이제 필수 불가결의 음료수가 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소울메이트를 만난 듯 처음의 그 만남 이후 냉장고에는 내 몫의 라들러는 항상 꼭 챙겨두고, 더운 여름날이나 유난히 짜증스러웠던 날에는 시원하게 얼린 맥주잔에 차갑게 칠링한 라들러를 따라서 꿀꺽꿀꺽 두 번에 꺾어 마시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사실 라들러는 독일 이외에 Shandy라는 이름의 칵테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대중적인 음료이다. 레몬과 맥주를 섞는 이 맛의 천재들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었나 보다.
Shandy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더 달 수도 있고 섞는 레모네이드에 따라 탄산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칵테일의 한 종류이니 바나 펍에서 Shandy를 주문하면 보통은 라거 종류의 맥주와 레몬맛 스프라이트(Sprite)를 섞어주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라들러가 더 좋다.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듯한 어감도 좋고, 그렇게 맥주에 보수적인 뮌헨이 예외로 두고 사랑하는 여름 음료라는 부분도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라들러 브랜드는 스티글(Stiegl)과 파울러너 (Paulaner)의 라들러이다.
라들러의 정석대로 인공적인 레몬향이나 너무 단 맛없이 레모네이드와 맥주가 딱 깔끔하게 반반 맛이 나서 좋다.
상큼한 레몬맛에 맥주 본연을 잃지 않고 적당한 알딸딸함까지 선사하는 이 귀여운 녀석을 온 국민의 공식 퇴근맥주로 임명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