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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씨 Aug 19. 2020

사랑하세요.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스포 있는 [더 랍스터] 리뷰


 남자는 의자에 앉아 어딘지 모를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외도와 이혼을 말하는 부인의 말에도 귀가 기울어지지 않는다. 남자가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개 한 마리와 함께 낯선 호텔로 출발한다.



 멀지 않은 미래,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인해 사람들의 연애를 강제하는 세상이 온다. 일정 나이가 지나서도 혼자인 사람들은, 한 호텔에서 45일간 숙박하며 자신의 짝을 찾아야 한다. 45일간 짝을 찾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동물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작은 위안이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어떤 동물이 될지 정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아내와 이혼한 후 호텔에 숙박당한다. 숙박보단 감금에 가깝다. 오직 사랑만이 목적인 이곳의 규칙은 그 아름다운 목적에 어울리지 않게 폭력적이고 강제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옷을 받고, 같은 곳에서 같은 식사를 한다. 첫날에는 혼자라는 게 얼마나 불편한 지 알아보라며 한 손을 결박한 채 생활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가까운 미래인지 먼 과거인지 헷갈리게 하는 몰상식한 연애 특강이 펼쳐지기도 한다. 성욕의 증진을 위해 매일 아침 유사 성행위를 당하지만 자위를 하다 들키면 토스트기에 손이 지져진다. 커플이 되는데 성공하면, 4주간의 안정 기간을 거친 후 도시로 돌려보내진다. 거짓으로 사랑을 꾸민 경우, 45일의 숙박 기간이 얼마나 남아있던 바로 동물이 되어야 한다. 숙박 기간을 늘리는 방법이 단 한 가지 있긴 하다. 호텔 밖 숲에 숨어 사는 솔로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마취총 혹은 폭력을 통해. 


 동물로 변하는 것을 원하는 인간은 없다. 커플이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이 동물이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데이비드 역시 같은 이유로 짝을 찾아 나선다. 호텔의 모두가 그렇게 필사적이다. 열렬히 구애하거나, 열렬히 사냥하거나.


 본인의 시선에는 사냥하는 사람들보다, 구애하는 사람들이 더 필사적으로 보였다. 관심이 가는 이성이 코피가 자주 난다는 사실을 알고선 서슴없이 코를 내려찍는 남자가 있고, 자신이 과거 남편에게 들었던 온갖 섹슈얼한 칭찬들로 이제는 사라진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여자도 있다. 그 모습이 섹스 어필보단 속옷 전문점의 폐업 세일에 가까운 느낌이 들어 애처롭다. 45일의 끝은 점점 다가온다. 데이비드도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둘씩 포기할 것을 정해야 한다.




 비정한 여자가 있다. 숏컷에 마른 체형을 한 여자는 언제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여자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은 사냥을 위해 숲을 휘젓고 다닐 때뿐이다. 한 명의 솔로를 잡아오면 하루의 숙박 기간을 주는 호텔의 사냥 규칙. 그녀의 남은 숙박 기간은 158일이다. 따뜻한 것이라면 치를 떠는 듯 보이는 그녀와 커플이 되어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데이비드는 감정들을 숨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날, 몇 시간 후면 동물이 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한 여자가 투신한다. 고통 없이 가려던 계획은 조금 틀어져, 투신한 여자는 몸이 굳은 채 울부짖는다. 생명이 눈앞에서 꺼져가지만, 비정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소리쳐 도와줄 사람을 찾지도 않는다. 소음을 듣기 싫을 뿐이다. 데이비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여자보다 동물이 될 자신의 미래가 더 두렵다. 되도 않는 말을 지어가며, 나는 당신과 같다고 말한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나뿐이라는 거짓을 팔아본다.




"그녀가 죽기 전에 고통을 좀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내 방에서는 듣고 싶지 않군요. 누워서 조용히 평화로움을 즐기고 싶거든요. 골프를 쳐서 아주 피곤한데, 천천히 시끄럽게 죽어가는 여자를 봐야 하다니."

"비명소리 때문에 안 들려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영화 '더 랍스터' 中]




 여자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는지 데이비드를 시험한다. 마티니에 든 올리브를 먹고 기도가 막힌 척, 숨이 쉬어지지 않는 척. 자신이 쓰러지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던 데이비드에게 그녀는 벌떡 일어나 말한다.



'우리 잘 어울릴 것 같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여자의 도덕성과 윤리의식. 데이비드는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며 사이코패스를 사랑하는 연기까지 해야 한다. 눈치를 채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여자는 데이비드에게 당신의 개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에겐 슬퍼할 공간이 없다.


당신이 어젯밤에 해준다던 재밌는 이야기가 듣고 싶으니 빨리 씻고 나와. 
짝을 찾지 못해 개가 된 당신의 형이 배가 터진 채 죽어있는 화장실에서.


 데이비드에게 남은 것은 형의 복수와 이 미친 호텔에서 도망치는 일뿐이다.




 영화 속 호텔과 완전히 반대되는 장소가 있다. 솔로들이 사는 숲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법을 피해 숨어 사는 이들에겐 사랑하지 않는 것이 법칙이다. 수작질 금지, 오붓한 대화 금지, 같이 춤추기 금지. 아주 당연히, 성적 행위 금지. 일련의 사건 이후 호텔을 탈출한 데이비드에게 닥친 건 또 다른 절벽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곳, 사랑해서는 안 되는 곳. 데이비드는 사랑해야만 하는 곳에서 찾지 못한 사랑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 찾고 만다. 데이비드와 똑같이 근시를 앓는 연인. 사랑할 수 없는 숲에서 그들은 둘만의 언어를 만들어 사랑을 나눈다. 하나의 몸짓이 하나의 문장을 말한다. 열 발짝 떨어져 추는 춤에는 말 못 할 사랑이 담겨있다.



암호로 말하는 사랑은 어쩌면 들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행운이 누군가의 불행이 되듯이, 귀중한 기회가 이들의 위기가 된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잠입한 도시에서, 숲 속의 솔로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척' 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해온 커플에겐 숨 쉬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금지된 숲에서 몰래 나누던 사랑은 강요되는 도시에 도착하자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 상황에 있다면 누구라도 눈치챌 만큼. 



 눈이 멀어버린 연인. 데이비드는 다시 도망쳐야 한다. 우리 도시로 가요. 거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으니까. 처음 들어간 레스토랑. 음식을 시키기도 전에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주문한다. 버터용 나이프 말고, 스테이크 칼을.




"너무 걱정 마. 처음엔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다른 감각은 더 예민해져."


"알아. 금방 끝내고 올게."


[영화 '더 랍스터' 中]



남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오른손엔 칼을 든 채. 왼손으로 닫히는 눈을 크게 벌려가며. 칼끝은 거울에서 천장을 지나 남자의 눈으로 향한다. 남자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여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기척은 물을 따라주러 온 종업원이다. 남자가 생각보다 늦는다. 여자는 계속 남자를 기다린다. 비명도 웃음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내 왓차플레이 위시리스트를 보면, 보고 싶다고 표시해놓은 영화가 좀 많다. 유튜브, 영화 리뷰 사이트, 지인 추천. 모두 모아놓으니 거진 100개가 되었다. 콘텐츠를 소비할 땐 실망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어렵다고 평가받은 영화를 보긴 하지만, 그렇게 각잡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은 적다. 계속 미뤄뒀던 '더 랍스터'를 보고 난 지금은 미뤄왔던 시간이 조금 아깝다.



  

 '더 랍스터'는 감독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그 낯선 상황, 설정, 대사 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생각이 든다. 기발하다, 기괴하다, 기분 나쁘다, 슬프다, 애처롭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영화는 끝나있다. 


 좋은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 시작된다는 말을 예전에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읽은 적이 있다. '더 랍스터'는 그 말에 의거하면 정말 좋은 영화다. 사랑에 관한 독특한 상상이 만든 세계를 겪고 나오면, 영화가 끝난 검은 화면을 앞에 두고 우리는 사랑이란 뭔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이 영화는 매우, 매우 이분법적이다. 흑백논리라고 말해도 좋다. 뭐 하나 중간지점이 없다. 호텔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자, 고통받으라!', 숲에서는 '사랑하는 자, 고통받으라!'. 영화 초반을 보면, 데이비드는 이혼 직후 바로 호텔로 끌려간다. 11년 1개월 동안 부부였던 사람을 부부가 아니게 된 지 하루 만에 커플 메이킹 호텔에 넣는다는 건, 상식적인 상황이 아니다.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인 남편에게 장례식장에 가서 새 부인을 찾아보라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비상식적. 그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자 분위기를 만드는 밑바탕이다.


 비상식적인 행동은 계속 이어진다. 호텔에 투숙하게 되면, 남성 투숙객의 경우 매일 아침 여성 메이드가 찾아와 속옷 위로 성기를 비비는 행동을 한다. 저번보다 빠른 시간 내에 발기하셨다며, 이 기세를 몰아 커플이 되라고 말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여성 투숙객에게도 이와 비슷한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미간이 찌푸러지며, 이게 뭔가 싶다. 불편한 감정. 이해되지 않는 행동. 인간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찾으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에 집중하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영화에 빨려 들어간다.


 위에는 쓰지 않았지만, 정말 골 때린 상황이 하나 나온다. 호텔에 들어온 여자 두 명이 있다. 친구 사이인 두 명은 같은 처지에 처했지만 다른 태도를 보인다. 여자 A는 짝을 찾는데 급하다. 여자 B는 그렇지 않다. 원치 않는 사랑을 할 바엔 동물이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비드가 여자 B에게 머릿결을 칭찬하며 접근하지만 B는 칭찬만 감사히 듣고 홀연히 사라진다. 결국 여자 A는 커플이 되고 B는 45일의 숙박 기간이 끝나 동물이 된다.


 여자 B가 동물이 되기 전 마지막 날, 호텔 지배인은 B를 부른다. 동물이 되면 할 수 없는 것을 마지막 날에 하는 걸 추천한다며, 뭘 할지 물어본다. 여자 A가 B에게 읽어줄 편지가 있다며 그 자리에 참석하는데, 편지 내용과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특히 표정이 정말, 참을 수없이 얄밉다.




".... 상황이 이렇게 돼서 정말 마음이 아파. 며칠만 더 있으면 너도 좋은 짝을 찾을 텐데. 넌 착하고 머리숱도 많고 무엇보다 가슴이 크니까. 네 머리카락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넌 내 최고의 친구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는 꼭 하고 다닐게. 평생 보고 싶을 거야. 도시로 돌아가 새 친구를 사귀게 되더라도 너만큼 진실한 친구는 만나지 못할 거야...."


[영화 '더 랍스터' 中]



 넌 내 최고의 친구라면서 그 친구가 짝을 찾지 못해 동물이 되는데 찾아와 실실 웃으며 읽는 편지의 내용이 저렇다.  



 비상식의 끝을 달리던 호텔을 탈출한 데이비드는 숲으로 향한다. 숲은 그래도 영화의 기본 설정 내에서 상식이 통하는 공간이다. 강제로 사귀라는 곳에서 탈출했으니 여기서는 사귀지 말라는 논리는 이해할 수 있다. 위에 쓰지 않은 또 한 가지 내용이 있는데, 데이비드가 비정한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호텔의 메이드가 그를 돕는다. 나중에 밝혀지는 사정에 의하면 그 메이드는 숲 속 솔로들의 리더와 내통하는 사이였다. 호텔에서의 생활에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외치는 호텔의 체제 속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인간이 청개구리 같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고, 어떠한 상황이나 제제도 막지 못할 것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데이비드의 비밀스러운 연애가 들키자, 리더는 데이비드의 연인을 장님으로 만든다. 결국 데이비드는 리더의 뒤통수를 치고 (비유적인 게 아니라 진짜 돌로 뒤통수를 찍는다.) 도시로 달아난다. 데이비드가 '도시에 도착하면 나도 내 눈을 멀게 하겠다'는 약속을 연인에게 했기에 연인은 데이비드를 따라 도시로 도망친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둘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는다. 데이비드는 스테이크용 칼을 움켜쥐더니 곧 돌아오겠다며 화장실로 향한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지 아닌지, 여자에게 돌아가는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난다. 열린 결말에서 4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1. 눈을 찌르고 여자에게 돌아간다.


2. 눈을 찌르지 않고 돌아간다.


3. 눈을 찌르고 돌아가지 않는다. (둘 중 누구도 이득이 없으므로 제외.)


4. 눈을 찌르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


 

 1번이 결말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영화가 끝난 검은 스크린 앞에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라면 내 눈이 멀어도 좋다니. 결코 평범한 선택이 아니다. 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갑자기 맹인이 된 내가 상대방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내가 싫어지지는 않을까, 나는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 대해 끝까지 애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그런 나에게 상대가 말한다. 나도, 나도 내 눈을 포기할 수 있어. 믿기도 힘들지만 이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육체의 오감 중에 하나를, 당신과의 사랑을 계속할 수 있다면 포기하겠어! 우선 나는 절대 이런 선택은 못 내린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해주는 상대가 있다면 평생을 바칠 수는 있을 것 같다.


2번이 결말이라고 믿는다면, 영원할듯한 사랑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질 것이다. 


눈을 찌르지 않고 돌아간다면 둘 중 하나다. 


[나, 찌르려고 했는데 못하겠어.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눈이 멀쩡한 채) 나, 찌르고 왔어. 너와의 약속을 지켰어. 우리 오래오래 사랑하자.]


 전자는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굳건한 마음으로 말했었어도, 각막 바로 앞에 들이닥친 칼날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다. 아직 설득의 여지가 가냘프게 남아있긴 하다. 후자는, 4번보다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눈은 잃기 싫지만 너와의 약속을 깨는 사람이고 싶진 않고 너와의 사랑도 이어가고 싶으며 널 버리고 도망가는 죄책감은 지기 싫다. 무엇 하나 잃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모든 걸 잃는다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


4번이 결말이라고 믿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기보다도 이후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질 것 같다. 도시는 솔로들을 편히 두지 않는다. 혼자 도망친 데이비드는 어떻게 도시에 숨어들어 살 것이며, 혼자 남겨진 여자에겐 어떤 고난이 닥칠지. 감정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채 화면을 닫았을 것이다.




 영화 '더 랍스터'가 사랑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꽤나 독특하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통제되는 환경을 가정하여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움직일지 꽤나 현실성 있게 묘사했고 영화로 옮겨 담았다. 본인은 영화 '더 랍스터'가 말하려는 것이 사랑과 이성은 공존할 수 없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동물로 변하는 호텔. 이성적으로 우리는 최대한 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사랑을 찾는 게 옳다. 허나 그러지 못한다. 사랑하면 죽는 숲. 이성적으로 우리는 눈과 귀를, 모자라면 코와 입도 막아서 그 어떤 사람과도 마주하지 않으며 가능성을 0에 수렴하게 하는 게 옳다. 허나 그러지 못한다.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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