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보고 시험 점수가 나왔을 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국립대를 가기 위해서는 가고 싶은 학과를 포기해야 했고, 희망하는 학과를 가기 위해서는 국립대를 포기해야 했다.
집안 형편상 부모님은 사립대로 진학을 반대하셨다. 나는 결국, 가고 싶던 사회복지학과를 포기하고 국립대로 입학을 선택했다.
원하지 않았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던 학과로 입학한 나는 전공 수업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회복지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최소 전공 수업만 듣고 나머지는 사회복지학 수업을 신청하여 들었다.
그리고 학교 내 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나의 꿈을 키워나갔다. 학점관리를 잘하여 2학년 때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동아리 활동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었다. 살면서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는 모임을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다. 전공 학과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아 선배들 얼굴도 몰랐지만, 매주 열리는 동아리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2학년에 되어서는 동아리 집부 활동까지 가담하면서 후배들을 챙기고, 선배들을 모시며 단체 활동에 열을 올렸다.
사회복지 쪽 진로가 목표인지 사람들과 노는 게 좋은 것인지 헷갈려하던 무렵, 현타가 오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 중에는 주말에 봉사활동이 이루어졌는데 학교 근처 동아리에 연계된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시설 안에서 봉사활동은 그분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 후 정리정돈 및 설거지를 하거나, 복지시설 주변 밭일 등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몸이 불편한 분들과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 등 특별히 육체적으로 많이 고되지는 않았다.
토요일 아침에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면 오전에 봉사활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오는 것이 평소 일정이었는데, 그날은 토요일에 시설에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날 일요일 오전까지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나가는 일정이 이루어졌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하루를 자고 하루 종일 그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 속에서는 아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시설 장애인 분들의 얼굴은 밝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분들의 행복이 나에게는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분들의 몸은 비록 복지시설 안에 있지만 현재 놓인 현실에서 행복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 사회복지시설 안에서는 경쟁이 없었다. 공부 걱정도, 취업 걱정 따위는 없었다.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보내는 게 그들의 일과였다. 나처럼 삶이 고달파 보이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니, 우리 사회의 일반 통념으로 보았을 때 몸도 건강하고, 대학도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는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이 무언지도 모르던 더 어릴 적에도 행복하지 않았고, 행복을 찾아 노력하고 있는 현재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해 앞으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 다분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행복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지 시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불쌍하지 않았다. 봉사활동을 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 시기 나는 봉사동아리에 몸 담그며, 봉사활동도 하는 생각 있는 멋진 대학생이라는 착각 속에 지냈던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은 비교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비교를 통해 행복을 찾는다. 저 사람보다 내가 형편이 나으니까. 저 사람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그나마 작으니까 하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 안에 그들의 불행을 내 행복을 찾는 밑거름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그렇게 사회복지학에 대한 짝사랑을 접었다.
함께하는 행복이 있다는 걸 모르던 철없던 시기였다. 오직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옆에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걸, 행복은 전염되는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