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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Aug 12. 2024

로켓프레시가 안된다고요?

충청남도 서산

# 국내 한달살기의 시작, 서산


1년간의 세계여행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처음 국내 한달살기를 시작한 곳은 바로 충청남도 서산이에요. 세계여행 마지막 여행지였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지자체 한달살기 공고를 발견한 것이 저희를 서산으로 이끌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는 서산, 서산이 할머니댁인 친구의 입을 통해서만 몇 번 들어본 것이 전부였던 서산이지만, 카카오맵을 통해 확인해 보니 첫 한달살기 장소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 고속버스를 타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아직 서울과 마음껏 멀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거든요. 또, 서산 시내 중심에 호수 공원이 있어 마음껏 런닝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숙박비에 부대비도 일부 지원해 준다고 하니 일단 지원해보자 싶었습니다. 그리고 덜컥 선발되었어요.




# 로켓프레시가 되지 않는 서산에서의 낯선 첫 주


미지(?)의 도시에 대한 설렘을 안고 도착한 서산 버스 터미널. 초반부터 서울 밖 살이의 어려움을 체감했습니다. 서산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시내버스를 타려 했는데 카카오맵에는 버스 정보가 뜨지 않았고, 터미널에 붙어있던 버스 시간표는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어요. 결국 터미널 슈퍼 사장님의 말씀에 따라 택시를 탔습니다. 카카오맵 하나면 모르는 길도 척척 갈 수 있던 서울 교통의 편리함이 새삼 그립더라고요.


그래도 잘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숙소에 짐을 풀고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참 휑 하더군요. 언제나 북적거리던 서울의 거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적막함이 낯설었어요. 


5분 거리의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기뻤는데요. 아쉽게도 원하는 김치가 없어 쿠팡으로 시켜야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침대에 누워 김치와 함께 이것저것 식재료들을 장바구니에 열심히 담았죠. 그리고 숙소 주소를 입력했는데... 로켓프레시가 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메시지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에서 급하게 서산으로 내려오다 보니 옷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더라고요. 기본 흰색 반팔티 하나 사야겠다 싶었는데 백화점도 옷가게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서산의 로데오 거리 쪽으로 나가니 종종 옷가게가 보였지만 백화점에서 여러 매장을 슥슥 돌아다니며 옷을 구매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저에게는 단 하나의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옷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외에도 차가 없는 저희는 전화해서 버스 시간표를 물어봐야 한다는 서산 시내버스에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워 결국 택시를 타거나 차를 빌려야 했어요. 서울 밖에서는 차 없이 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죠. 운전 포비아가 있는 저는 마음이 심란해졌습니다.




# 서산의 장점을 발견하다


서산살이의 초반, 모든 것을 서울과 비교하다 보니 여기선 절대 못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한달살기를 하는 이유가 있겠죠. 2주 차부터 서산의 매력을 하나 둘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서산 시내 중심의 호수 공원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에요. 해 질 녘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호수공원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해요. 호수를 중심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가족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런닝하는 사람들. 특히 주말이면 버스킹 하는 분들도 있어 정말 낭만적인 밤의 모습이 연출돼요. 이런 날들이 익숙하다는 듯 여유롭게 걷는 주민분들을 보며 왠지 모를 질투가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저와 남편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서산의 장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주민분들이 참 친절하는 것이에요. 사람들의 친절을 지역에 따라 나누는 것이 무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저희는 정말 그렇게 느꼈어요. 어떤 가게를 방문하던 사장님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스몰토크로 이어졌어요.


저희는 내성적인 부부인지라 낯선 이와 대화하는 일이 흔치 않아요. 그런데 서산에서는 신기하게도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눴어요. 건물을 청소해 주시는 어머님부터 마트 아주머니, 책방 사장님, 도서관 관장님, 전 서산 시장님까지. 부담스러운 질문 없이 소소하게 대화를 걸어주시는 것이 감사했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서산이라는 곳에 저희 부부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집값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저희가 머물던 숙소는 호수공원 바로 앞 오피스텔이었는데 제가 서울에서 독립하던 시절 머물렀던 오피스텔 크기의 1.5배였습니다. 매매가는 오히려 절반도 되지 않았고요. 근처 아파트도 괜찮은 시세로 형성되어 있었어요. 서울의 집값은 도무지 월급을 모아서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질 않는데 서산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내 집마련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더라고요. 주거안정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 서울 밖의 삶, 가능할 지도요


서산 살이의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에 남편과 손을 잡고 호수공원을 여러 번 돌았습니다. 서울 밖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 이렇게 오래 지냈던 적은 처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서산에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떠날 생각에 마음이 시큰하더라고요.


호수공원에는 주민들의 시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이산희 님의 시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어요. 저희는 자의로 서산으로 왔지만 그럼에도 한달살이 초반에는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앞으로 어디서 살아야 하나 막막함도 있었고요. 이산희 님의 시는 이방인의 마음으로 서산에 도착했지만 어느새 포근하고 따스함을 느꼈던 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어요.


낯설었던 서산 - 이산희

나 여기로 오던 날은 매우 어둡고 캄캄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동차 뒷좌석
감았던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집 안에서 나오기를 꺼렸던 나
아버지가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움츠러든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나무들이 빼곡하고
잘 정돈된 공원에 푸르른 햇살이
연두의 나뭇잎과 속삭이고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엔
하얀 새가 기다란 목을 높이 쳐들고 너 어디서 왔니
하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호수 주변을 걸었다
경계의 눈빛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평화롭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마음 안에 들어와 묻는 것 같았다

포근하고 따스해?

나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지금 나무처럼 푸른 꿈을 꾼다


시를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로켓프레시쯤은 안 돼도 괜찮을지도 몰라.'


서울 밖의 삶, 그 가능성을 엿보는 서산 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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