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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Apr 03. 2024

문득 시 한 편에 심쿵하여...

글감을 준 일상의 이야기

그저께인가? 

수업 중 가르쳐야 할 시인의 작품에 대해 공부를 하다 

문득 시를 소리 내어 혼자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시가 나를 빨아들였다.

원래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인데,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한두 번 이런 분위기 느낀 게 아닐 텐데


그날 문득

'캬~~~~~' 소리가 절로 났다


그 순간의 날 매료시켰다

이게 시지. 이게 시야.


날 빨아들인 시의 맛.

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맛이 더 잘 난다.


아래 필사를 해 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김수영 _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 한 편 필사하며 보내는 비 오는 날 아침

학교가 조용하다

학생들은 다 수학여행, 현장 체험 학습을 갔다.

난 고요한 학교를 지키며...  오늘 밤 9시 학부모 특강 끝나기를 기다리며... 

이런 여유를 가져본다


시 읽고 필사하고 글 쓰는 

아침이다

호사스런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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