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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Aug 29. 2024

남다른 인생길

 학교 현장 에세이

복도에서 졸업한 제자를 만났다.

대입 원서를 쓰는 친구를 따라 학교를 왔단다.

이 아이를 주로 봤을 때는 2021학년도, 아직 코로나 시기여서 학교 수업이 원격에서, 대면, 대면에서 원격. 왔다갔다 할 때이다. 그러다 2학기부터 원격 없이 대면 수업으로 갔었던 것 같은데.

그 시기,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다.


윤찬이.

마스크를 벗었어도 이 학생 얼굴을 오늘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이 아이만의 음색이 있어서 딱 그 목소리 들으면 "아, 얘!" 이렇게 떠올릴 수 있다. 요즘,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행이 이 학생 이름은 바로 입에서 나왔다.


친구 따라 왔지만, 날 찾아 교무실로 올려 오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복도에서 길게 대화를 나누다 그 얘기를 듣고는 대화 장소를 복도에서 교무실로 옮겼다.


책도 많이 있고, 굉장히 순하고, 그러면서도 강한 면이 있는 학생. 부드러운 자기만의 색채가 분명히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학생이었다. 애교도 많아서 선생님들께 와서 자기가 아끼는 귀여운 스티커를 선생님들 물건 여기저기 붙여 주던 학생. 하다 못해 교무실의 칠판 대형 화이트보드에까지.


지금 내 노트북에도 윤찬이가 3년 전에 붙여 주었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윤찬이는 고2 되고는 얼마 뒤, 자퇴를 했었다. 수행평가 이런 것 신경 쓰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학생이다. 혼자서도 곧잘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고, 친구들과도 사이가 굉장히 좋았던 학생이다. 선생님들과도 관계가 엄청 좋았던 학생.


그런 윤찬이가 고2 되고 한두 달만에 바로 자퇴를 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은 좀 충격을 받았었다. 그 윤찬이가 오늘 학교를 온 것이다.


근황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은 대학생. 과는 철학과.

캬..... 정말 잘 어울린다. 윤찬이와 정말 딱 잘 맞는다. 윤찬이는 사고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에 대해 자기주도학습이 아주 잘 되던 학생인데, 그 윤찬이가 철학과를 갔구나.


국어 부전공을 할 예정이고, 나중엔 로스쿨을 갈 생각이라고 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가는 것. 윤찬이 같은 인재가 로스쿨을 가면, 잘 맞을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하고 생각이 깊은 인문학적 법조인이 될 것 같다.


윤찬이.

이렇게 와서 자기 얘기를 해 주고 가는구나. 그때 우리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거의 다 재수를 한단다. 정규 교육과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재수를 하고 있고, 윤찬이는 고교 자퇴를 했었으나 지금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이고... 오히려 애들보다 빠르네 싶다.   


대화 중에 물었다.

"윤찬아, 자퇴한 것, 잘한 선택 같아?"

"네, 선생님. 정말 잘한 것 맞아요. 후회없이 제가 하고 싶은 공부하며 지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 그렇구나. 이런 아름다운 자퇴 마무리 얘기를 들어서 좋다. 이 아이 인생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자퇴 건에 대한 현재 자기 인식은 '잘한 선택' 이것이구나. 자퇴에 대한 자기 인식이 궁금했다. 몇 년 지났으니까 스스로 평가를 할 수 있지 싶다.


오늘도 교사들 업무 메신저엔 자퇴하는 고1 학생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이제 막 2학기 시작을 했는데, 벌써 자퇴를 하는 고1 학생이 있네. 점점 학년이 내려가고 있는 것 같고, 점점 수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퇴생이.


그래도 난 오늘 윤찬이를 통해, 자퇴생의 밝은 2-3년 동안의 생활을 알게 되어 좋았다. 윤찬이와 둘이 철학 과목, 철학사, 관심 있는 철학 분야에 대한 얘기를 나누니 친구 같았다. 그래. 선생님과 학생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처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나도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이 학생도 철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둘이 철학 책 얘기도 하고 서로 보여주기도 하니 신기하고 좋았다.


윤찬이는 이제 갔다. 내 옆 테이블에 놓여 있는 우리 학교 '플래너'를 보며 향수에 젖어 하는 것 같길래, 손에 하나 들려서 보냈다. 같이 원서 쓰러 온 친구 것까지 두 개 줘서 보냈다. 사실, 윤찬이는 자퇴를 하여 수능 원서 접수도 모교에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본인이 따로 정시원서접수를 했을 것이고... 올해 정시를 보긴 볼 거라고 한다. 상위권 대학 붙으면 거기 철학과 가고, 떨어지면 지금 다니는 대학을 다닐 거란다. 그래, 그래. 그래도, 잘 지내는구나. 좋다.   


윤찬이의 귀여운 흔적, 스티커를 보며...  

자퇴를 선택하는,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이 글에 쓴 '윤찬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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