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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이 Dec 31. 2023

여행의 묘미

 살다 보면 여행을 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목적이 휴식이든. 모험이든. 평소의 나는 무계획적인 면이 있지만은 여행에 대해서는 계획적인 편이다. 그렇다고 꼭 계획대로 하여야 한다!라는 주의보다는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다른 대책안 까지는 파악하고 가는 것을 좋아한다. 기껏 시간 내서 여행 갔는데 이왕이면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알차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쉬는 시간도 ‘계획'한다. 그리고 ‘휴양’보다는 ‘체험’을 더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이것저것 해보려는 편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이라고 부르고 싶은 여행은 25살 언저리에 친구와 함께 간 [오키나와] 여행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에서 영화과로 재학 중이었다. 여행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학교에서 영화 찍던 얘기를 먼저 하겠다.


 일단 학기가 시작되면 개강총회와 함께 촬영 주를 정한다. 보통 70명에서 80명의 학생이 한 학기에 연출을 하며, 촬영 주는 8주에서 10주로 쪼개기 때문에 한 주에 7명에서 10명의 학생이 영화를 찍게 된다. 촬영 주를 정하는 이유는 학교의 촬영 장비의 수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촬영 주를 배분하여 학생들에게 장비를 나누기 위함이다. 장비는 목요일 오후 6시에 빼어, 월요일 오후 6시에 장비를 넣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총 3일 영화를 찍으며, 좀 빡센 촬영장은 목요일 밤부터 시작하여 월요일 낮까지 촬영하곤 한다.(이런 촬영장은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 이렇게 자신의 촬영 주가 정해지면 촬영일에 맞춰 영화 준비를 해야 한다. 촬영 장소, 배우, 스탭, 소품을 구하러 다니며 방학부터 써온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나간다. 그리고 영화 준비는 아무리 기간이 넉넉하더라도 사람 일이 늘 그렇듯, 촬영일이 다가와서야 부랴부랴 준비해서 우당탕탕 촬영한다. 그리고 촬영을 다 하고 나면 편집과 후반작업(색보정, 음향 작업)을 하여 학기 말까지 완성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스탭이다. 스탭들은 대부분 학교 사람이게 따로 페이를 지불하지 않는다. 대신, 다들 품앗이로 되갚는다. 내 스탭이 8명이면 그 8명 스탭들의 영화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촬영 주가 8주에서 10주로 정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매주 내내, 나는 내 영화 스탭의 스탭이 되어 일하게 되고, 남는 시간에 짬을 내어 내 영화를 준비한다. 내 영화가 더 귀하다고 스탭을 하지 않으면 인성 논란이 생기며, 그 결과 내 영화를 찍을 스탭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스탭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정말 미친듯이 바쁘게 학기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바쁘니 학기 중에는 돈을 벌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방학 때, 또 죽어라 돈을 벌러 다녀야 한다. 제작비는 적게는 100만 원, 많게는 500만 원 정도는 들며 평균적으로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이다. 이는 우리 학교 기준이며, 우리 학교는 다른 영화과에 비해 자주 찍는 만큼 제작비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다른 영화과 학교들은 일 년에 한 작품 혹은 4년 동안 한 작품이다), 최저임금이 5,000원 언저리던 시절 저 돈을 벌려면 방학이 땡 하고 시작하자마자 바로 일을 해야만 한다. 만약, 제작비를 벌지 못하면, 용돈을 좀 땡겨쓰든, 대출을 받든, 아니면 배를 곯아 밥값을 아껴서라도 제작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과 학생들은 샤방샤방한 대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아주 먼, 꾀죄죄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곤 했었는데, 나 역시도 그 꾀죄죄하고 초췌한 모습의 학생 중 하나였다. 주로 입던 옷은 영화과의 과잠인 롱패딩 여름에는 바람막이만 입고 다녔으며, 어느 학기에 여느 학기처럼 나는 영화를 하나 찍었고,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리고 도망가듯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났다. 여러 선후배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찍은 영화를 ‘말아먹었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하여 사과의 말씀드린다.

 그 학기에 찍은 영화의 제목은 네이밍부터 아주 재미없는 냄새가 폴폴 나는 ‘왜 아버지는 아버지인가'였다. 어린 시절 무뚝뚝하고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성인이 되며 점차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영화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실제 내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나름 열심히 썼다. 열심히 쓴 시나리오가 나름 진정성이라던가 작품성이 느껴졌는지 학교 내에서 운영하는 제작 지원사업에 당선되어, 제작 지원까지 받았다. 오예

 제작 지원까지 받은 괜찮은 시나리오라면 괜찮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겠지만, 대답은 놉. ‘아버지는 왜 아버지인가'라는 거창한 제목에 걸맞게 나는 거창한 고민들을 나날이 했고, 결국 촬영 날까지 시나리오를 거창하게 고쳤으며, 그렇게 영화를 다 찍고 편집하던 나는 나의 영화를 거창하게 말아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관객 수로 성패의 여부를 판단하는 상업영화가 말아먹었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어도, 단편영화가 말아먹었다는 표현은 어색할 수 있다. 어차피 돈이 되는 영화도 아니고 어지간해서는 많은 관객들이 보는 영화도 아니니깐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관객이 한 명 있다. 그것은 바로 ‘나'다. 일단 ‘왜 아버지는 아버지인가'라는 제목부터 아주 거창하다. 거창한 제목에 맞춰 나도 아주 거창한 척하느라 영화는 ‘아는 체' 혹은 ‘흉내'의 범벅이었다. 그 ‘아는 체'와 ‘흉내'가 영화를 편집하면 할수록 짙어져서 나중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몇 개월 동안 고민하고, 여러 스텝들과 고생해서 만든 것이 그깟 ‘아는 체'였다니! 게다가, 제작비가 나로서는 매우 큰 300만 원이었기에, 이 영화가 300만 원짜리 자위에 불가하다는 것에 굉장히 실망했다. 으레 그 시절 찍던 영화는 서툴기 마련이지만, ‘아는 체'와 ‘흉내'라는 거짓은 참을 수 없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혼낼 때 ‘잘못은 할 수 있지만, 거짓말은 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잘못할 수도 있지만, 거짓말은 하면 안 되었다.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나에게 친구 녀석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였다. 영화 찍느라 남은 돈은 거의 없었지만,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어디든 떠나고 싶었고 여행지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곳을 골라 간 곳이 [오키나와]였다.


 처음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서 내린 첫 소감은 ‘덥다'였다. 한국의 여름도 굉장히 더운 편이라 생각했는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습하였다. 그리고 굉장히 시멘트색 건물이 많아서 아름다운 자연에 비하여 건물들이 다소 삭막하게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렌터카 업체에서 나온 버스를 타고 렌터카 업체로 향하였다. 서투른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서류를 작성하고 차를 렌트하였다. 자그마한 차이지만 역시 일제라 그런지, 키가 180이 넘는 거구 두 명을 싣고도 잘 나갔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하나! 싶었지만 차를 몰고 교차로에 닿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한국과 달리 차도 방향이 반대라서 우회전을 크게 돌아야 하는데, 신호등에는 우회전 표시가 따로 없었고 언제 우회전할지 몰라 도로에서 잠시 멈춰있었다. 급히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일본의 어지간한 교차로는 대부분 비보호 우회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우린 우회전을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뒤에 차 한 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몇 초만 멈춰있어도 클랙슨을 빵 하고 울렸을 텐데, 잠자코 우리를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차를 타고 간 곳은 회전 초밥집이었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먹었던 초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역시 초밥 종주국의 맛이었다. 초밥을 먹고 바로 앞에 선셋비치라고 불리는 해변으로 향하였다. 그 해변의 이름에 걸맞게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노을은 바다와 구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수영도 할 줄 몰랐던 나는 그저 그 해변에 몸을 담그고 노을만 바라보았다. 노을은 그저 붉은색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곳의 노을의 색은 빨주노초파남보 그 이상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색들은 시시각각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몇 분이나 그 노을을 바라보았을까? 기껏해야 30분에서 1시간 사이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때 바라본 노을은 내가 평생 동안 본 영화보다 훨씬 재밌었고 아름다웠다. 카메라 따위로 그 노을의 아름다움을 절대 담지 못하리라. 난 도대체 카메라로 뭘 찍으려 한 걸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표현하겠다고 카메라로 찍었지? 어차피 이 노을을 담지도 못할 텐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노인이든 아이든. 거지든 부자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쬐는. 매일 반복되는 이 노을에 비하면 정말 가치가 없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은 것 두 가지  

     영화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말자. 어차피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설명해 봤자 이 노을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니 큰 의미를 두지 말자. 영화는 영화다.    


     노을은 공짜다. 이 노을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라면 열심히 살아봤자다. 그러니 대충 살자.   

 그래서 그 이후로 내 인생의 모토는 ‘대충 살자'가 되었고 그 의미로 내 팔에 오키나와의 노을을 담은 문신도 그렸다.

 

 그 뒤로 대충 살았냐라고 물어보면, 생각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의 요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잠시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정신 차리는데 대개 30분 정도 흐른다. 그리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차를 타고 작업실로 출근하여,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 4시 정도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잔업을 하다가 저녁 9시 정도에 퇴근한다. 집에 와서 씻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12시 정도에 꾸벅꾸벅 졸다가 잔다. 이 패턴을 매일 반복한다. 일에 한창 바쁘면 운동할 시간도 없고 집에 와서도 쉴 시간도 없이 일과 잠만이 반복될 때도 있다. 

 열심히 살아서 번 돈으로 종종 여행을 다니곤 했다. 여행을 다니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숙박비도 들고, 맛집을 찾아 먹게 되면 좀 무리하게 먹기도 하고, 또 간 김에 기념품도 사고,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꽤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한다. 이 정도 소비력이면 굳이 여행을 안 가도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명확히 여행이 주는 묘미가 몇 가지 있다. 여행을 가면 ‘낯섦’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낯선 음식. 낯선 말. 낯선 거리. 하물며 국내여행도 그런데, 해외여행은 더 낯설다. 낯선 음식 낯선 말. 낯선 거리. 그리고 따라오는 생각들. 일상에서도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아침부터 떠올려보자. 아침에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숲과 하늘이 보인다. 숲과 하늘이 보이는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처음에 이사 올 때는 숲이 울창했고, 물까치 무리가 날아오르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숨겨져 있던 등산로가 보인다. 하얀 눈이 산을 뒤덮었다. 물까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겨울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씻고 작업실로 향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새들이 많지 않지만, 여름에는 꽤나 많은 새들이 작업실 주위에서 살고 있다. 황조롱이 같은 애들도 봤고 이 구역에도 물까치 무리가 살고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보이지는 않는다. 겨울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사람의 옷들이 달라진다. 그리고 유행마다 옷들도 조금씩 바뀐다. 여기서도 노을은 진다. 하지만 자주 보러 가진 않는다.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여행을 하다 보면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시에 일상생활에도 신기한 것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여행은 그런 의미로 스트레칭과 비슷하지 않을까? 내 팔이 어깨 위로 쭉 뻗을 수 있는 것은 알지만, 어깨 위로 손을 쭉 뻗는 행위를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내 앉아서 키보드만 뚝딱 두드리며 일만 하다 보면 어깨가 결리게 된다. 그래서 종종 팔을 어깨 위로 쭉 뻗어보거나 목을 한번 회전해 보거나, 허리를 비틀어 움직여보기도 하며 스트레칭을 해보는 것이다.  


 올해는 참 바빴다. 바쁜 와중에 여러 일들이 생겼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아내와 정선에 여행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눈이 펑펑 내려서, 드라이브가 꽤나 재미있었다. 우리가 머무른 숙소는 산속에 위치하고 하고 있었는데, 숙소 바로 옆에 산 정상까지 가는 곤돌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바로 곤돌라로 향하였다. 곤돌라 안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정상으로 향하였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었다. 흐물흐물하고 거대한 구름들 덕에 더 멀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덕에 신비한 느낌을 더 하였다. 산 정상에는 돌아다닐 곳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바닥에 꽝꽝 언 얼음들이 잔뜩 있어서 아주 조심하면서 걸어야 했다. 게다가 아래보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찬바람에 나뭇가지가 얼어서, 아이스크림 같은 얼음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햇빛에 얼음이 반짝반짝 빛났다. 흐믈흐믈한 구름들이 산허리를 재빠르게 건너갔다. 정말 절경이었다. 

 그래, 또 너무 열심히 살아버렸군. 올해 눈싸움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 눈사람이라도 만들어 보았나. 요새 유행하는 눈 오리를 만들 시도라도 해보았는가. 올해 남은 겨울은 좀 대충 살면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오리도 만들어보아야겠다고 내려가는 곤돌라에서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이 즐겁게 사시길 바라며, 앞으로 계획하시는 여행은 더 즐겁길 바라며,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스트레칭 한번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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