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 후기
부모님의 연세가 환갑 즈음 정도 됐을, 한국의 서른 살 즈음 젊은이들에게 화제가 되는 이슈가 하나 있다. 그것은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갈만한가?’이다. 몇몇 후일담을 들어보면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을 갔더니 부모님이 하도 불평불만을 해서 좋자고 간 여행을 말아먹은 사례도 있고, 패키지로 여행을 갔더니 여행 내내 기억나는 것은 버스 안에서 자던 기억뿐이라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베트남으로 부모님과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리 만족스러운 여행은 되지 못하였다. Emoi와 별반 차이 없는 한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식당. 불량식품 먹듯 진행되는 관광지 투어. 그리고 어김없이 가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만 파는 기념품 샵.
그때 패키지여행에 질려버려서 부모님과 가는 환갑여행은 자유여행으로 가기로 맘을 먹었다. 여행지는 홋카이도로 선택하였다. 왜 겨울(지금은 12월이다)에 추운 곳에 가는가? 따뜻한 동남아로 가는 게 더 좋지 않으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건데, 부모님을 모시고 동남아 여행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동남아 분들께 죄송하지만 부모님 모시고 동남아 여행 가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긴 하다. 가는 곳마다 흥정하기도 싫었고 호시탐탐 소매치기 당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싫었다. 만약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면 당연히 동남아로 여행 갔을 것이니 동남아에 사시는 분들은 너무 마음 쓰지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홋카이도가 눈은 많이 내리지만 생각보다 그리 춥지도 않고, 일단 일본이 워낙 관광하기에 좋고 편한 나라여서 부모님과 자유여행 하기에 수월할 거라 여겼다.
친구들에게 홋카이도로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고 말했더니 몇 명의 친구는 극구 만류하였다.
‘부모님과 싸우면 어떡해!’ ‘눈길에서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면 어떡해!’ ‘일본 갔다가 야쿠자를 만나서 칼에 찔리면 어떡해! 부모님 두고 도망도 못 가잖아!’ ‘홋카이도에 곰이 많대! 곰은 사람을 찢어!’
사람들은 나보다 더 달아올라 부모님과 자유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수 가지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나? 내가 좀 둔한 걸까? 좀 둔한 편이긴 했다. 선사시대 때 태어났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용맹한 전사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겁도 없이 혼자 창 들고 쫓아 가다가 숨어있던 사자에게 들켜 빨리 죽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둔한 성격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질이었다. 유치원 생 때, 바닥에 넘어져서 무릎이 심하게 까져도 울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도 맞아도 억울해하지 않았고, 내 딴에 솔직하게 말한다는 게 상처를 주는 줄도 몰랐고, 20살에 상경하고선 부모님이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먼저 연락하는 법도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번 환갑 기념으로 환갑 여행 온 것만으로도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새삼 부모님의 환갑을 이렇게 챙길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아버지 어머니 손 잡고 여행을 다녔는데, 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려고 하니 생각보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나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야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든 그리 섬세히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부모님과 여행을 가면 길을 잃어도 안 되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먹으면 안 된다. 준비를 하는 와중에 좀 후회를 하기도 했다. 혹여나 홋카이도에서 어머니가 여행에 대해 괜히 투덜대거나, 아버지가 피곤해하며 길가에 드러눕는 다던가. 일본인 양아치가 갑자기 나에게 손찌검하거나. 혹은 눈밭에서 부모님과 화목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느닷없이 있는데 곰이 나타난다거나.
그렇게 걱정을 껴안고 준비를 하니 어느새 여행의 날이 다가왔다. 전날까지 여행 준비를 하느라 눈 밑에 피곤함이 가득 차 있었다. 공항에서 마주한 어머니는 내 몰골을 보고선 ‘잠 못 잤나?’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푹 잤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륙하기도 전에 잠에 빠졌다. 꿈에선 우린 하얀 눈밭에 있었다. 새하얀 벌판에 있는 나무 한 그루. 나는 설경을 배경으로 부모님을 찍어주고 있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어머니가 계속 ‘한 컷만 더!’ ‘한 컷만 더!’ 외쳤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화목한 모습을 한 컷 한 컷 찍었다. 그러다 문득 ‘곰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겁이 났다. 하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곰을 만나기 전까지 곰 걱정을 하지 말자] 짧은 삶에서 얻은 몇 줄 안 되는 교훈 중 하나였다.
“같이 찍어 드릴까요?”
느닷없이 어깨너머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뒤돌아보니 검은 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키는 내 머리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손바닥은 자동차 타이어만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이제 어른이니까. “어머 친절하셔라!” 어머니는 손바닥을 짝짝 치시며 좋아라 하셨다. 어머니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이 녀석은 곰이에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곰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부모님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되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기 힘들었다. 곰이 사진을 찍자마자 달려오면 어떡할까. 내가 부모님을 지킬 수 있을까. 이게 우리의 마지막 사진이려나.
김치~
중력의 쏠림을 느껴 잠에서 깼다. 어느새 비행기가 홋카이도에 도착하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비슷하게 생긴 일본인들. 한국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경치. 하지만 조금 다른 풍경.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들. 내리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괜히 자유여행을 왔을까?
걱정과 달리 꽤나 순조롭게 여행을 다녔다. 홋카이도 공항에 내려 체크아웃을 하고 렌터카를 받으러 갔다. 왜건에 짐을 싣고 길을 달렸다. 좌우가 반대였지만 달릴만했다. 예약한 스시집의 맛은 아주 훌륭했고 찾아 놓은 관광 명소도 부모님이 조아라 하셨다. 아들 좋으라고 좋은 척하시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숙소도 꽤 괜찮았다. 로비부터 아주 화려하였고, 종업원 중에 한국말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체크인도 수월하게 했다. 부모님 방과 내 방은 따로였는데, 부모님 방에서 바라보는 밖 풍경이 아주 멋들어져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대욕탕으로 가서 몸을 녹이기로 하였다.
아버지와는 같이 욕탕에 가는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이다. 군대에서 부모님과 면회 외박 나와서 목욕탕을 간 것이 10년 전이다. 10년 동안 나는 조금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조금 노인이 되었다. 대욕탕에는 생각보다 으리으리하였다. 층고도 굉장히 높았고, 욕탕도 어지간한 수영장 크기였다. 아버지와 함께 그리 큰 욕탕에 앉으니 괜스레 더 어색하였다. 손으로 물만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있나? 그렇게 대화에 물꼬가 트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괜찮습니다 흐흐흐”
좀 힘들지만, 요새 사람들 다 힘든 것에 비하면 살만하다. 하는 일이 잘될 것 같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돈도 많이 벌어서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여행도 오지 않았냐. 다음에는 좋은 집으로 이사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집은 됐으니 그냥 고향에 자주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다.
대욕탕을 다녀오고 나니 찬 바람이 맞고 싶어졌다. 부모님 방에 가서 혼자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곰을 조심하라고 했다. 괜한 걱정이라 생각했다.
홀로 호텔을 나와서 컴컴한 산 쪽 산책로로 걸어갔다. 산책로에는 가로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아서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밤하늘이 잘 보였다. 수수히 차갑게 박힌 별. 쑥스럽게 구름에 숨은 초승달.
걷다 보니 길에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눈으로 잠겼다. 뽀드득뽀드득.
나는 무엇을 위해 발 아프도록 뛰어다녔을까.
뽀드득뽀드득.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뽀드득뽀드득.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들.
뽀드득뽀드득.
별을 바라보느라 목 뒤가 뻐근하였다.
뽀드득 뽀드득.
점점 눈이 깊어져서 걷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행여나 벼락이 갑작스레 나오더라도.
마치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일 것 같았다. 아니 그러길 바랐고 거의 그런 것 같았다.
뽀드득 뽀드득
내가 발을 멈춘 것은 어둠 속에서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바라보았지만 너무나 어두웠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그 목소리는 굵고 낮았다.
“はい?(네?)”
라고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그의 목소리에 비해 한없이 약아빠진 소리였다.
“너… 가진 거… 다 내놔”
그는 서투른 한국어로 말하였다. 나는 현금은 하나도 들고 있지 않았다. 카드는 들고 있었지만, 저 녀석이 카드 단말기까지 들고 다닐 것 같진 않았다.
“저… 아무것도 없는데요?”
잠깐 부스럭 부스럭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 내 머리를 가격했다.
엄청 아프지는 않았다. (진짜다) 그렇지만 나를 때린 그 무언가가 인간의 손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의 손은 타이어 크기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차츰 어둠에 눈이 익자 그 녀석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녀석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나는 그 녀석이 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로 가진 것이 없습니다…”
교실에서 축구하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초등학생처럼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면 너 입고 있는 거 내놔”
나는 냉큼 내가 입고 있는 패딩을 곰에게 벗어 주었다.
“더 내놔”
나는 냉큼 내가 입고 있던 니트도 주었다. 그리고 냉큼 내가 입고 있던 목도리도 주었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던 내의도 주었다. 그렇게 아낌없이 주던 와중에 드디어 의구심이 들었다.
‘저 녀석 정말 곰이 맞을까? 곰이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 혹여나 곰이 말을 배웠다 치자. 하지만 홋카이도에 사는 곰이 한국말까지 배울까? 아무리 케이팝이 유행한다고 해도, 곰조차 케이팝을 좋아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 저 녀석은 곰이 아냐’
‘너는 곰이 아냐’
‘너는 곰이 아니란 말이다!’
다시 무언가가 나를 가격했다. 이번엔 복부에 맞았다. 아주 방심하다가 맞은 덕택에 세상에서 제일 아팠다. 너무 아파서 입에서 신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 곰 맞아”
곰은 내 생각이라도 읽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래 곰이 맞았어. 나의 짧은 삶에서 몇 안 되는 교훈 중 하나인 [곰을 만나기 전까지 곰 걱정을 하지 말자]가 있었다. 자 이제 걱정할 차례이다. 하지만 무엇을 먼저 걱정해야 할까. 언젠가 곰을 만날 줄 알았으면서 왜 미리 걱정하지 않았을까.
“괘씸하다.… 너 바지 벗어”
바지를 벗으라니… 하지만 바지를 벗어도 내복을 입고 있어도 추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복도 벗어”
내복도 벗으라니… 하지만 내복을 벗어도 너무 어두워서 숙소까지 뛰어가면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을 거다.
“이제 가”
곰은 드디어 만족한 것인지 나를 보내주었다. 곰이 팬티까지 바라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감사해하며 꾸벅 인사까지 하였다.
그러곤 냉큼 호텔로 뛰어갔다.
정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렸다.(어차피 밤이어서 발은 안 보였겠지만)
내가 팬티 바람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추워서 뛰는 것도 아니다.
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냥. 달리고 싶어서
눈물도 조금 나왔다.
슬퍼서 나온 것도 아니다.
초라해서 운 것도 아니다.
아파서 운 것도 아니다.
찬바람에 눈이 시어서 눈물이 난 것이다.
어서 숙소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 싶었다.
다시 온천에 몸을 담그던 때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흐흐흐”
달리다 보니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며 아드레날린이 차 올랐다.
왜 진작에 뛰지 않았을까.
뛰면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데.
그래서 한밤중에 내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