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7년 전 정도만 하더라도 나는 운전면허증조차 없었다. 운전면허증 같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따야지 그 시기를 놓치면 영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운전면허증 없이 살다가, 영화 연출부를 하기 위하여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였다. 영화 연출부를 하려면 1종 운전면허증은 반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는 좀 늦게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고
기능시험에서 7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
7번이나.
운전면허 기능 시험에서 7번 떨어진 사람도 이 세상에서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T자 코스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큰 트럭으로 그렇게 조그마한 공간에 비집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나로선 너무나 어려웠다. 후진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면 번번이 선을 밟았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음을 한번 듣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결국은 연거푸 선을 잇달아 밟고 떨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8번 만에 기능에 붙고 도로주행은 다행히 한 번에 붙었다. 그렇게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영화 현장일을 하며 2년 동안 12번 정도 차가 긁었다. 핑계를 대자면 내가 운전한 차는 큰 스타렉스였고, 심지어 후방카메라도 없었고 뒤에는 늘 짐이 가득 차있어서 뒤도 보이지도 않았다. T자 코스에서 번번이 떨어진 것처럼. 번번이 주차할 때마다 벽이나 기둥에 차를 긁어댔다.
다행히라면 차와 부딪힌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데 가만히 있는 벽에다만 박은게 더 멍청한 일이려나?
그리고 7년이 흘렀다. 이젠 사고도 안 난지 오래됐다. 처음 운전할 때처럼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일도 없어졌다. 이제 주차도 잘한다.
100km로 달리는 몇 톤짜리 철덩이에 타서.
남들이 하는 것처럼.
그저. 앉아서. 액셀을. 지그시 밟고.
이곳저곳을 누빈다.
운전은 익숙해졌지만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는 것은 내가 길치라는 것이다. 네비가 없다면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그렇게 자주 운전하면서도 집 주위를 제외하곤 길을 외우지도 못한다. 운전할 때면 네비에서 하는 말을 그저 따르면서 그저 멍하니 앞만 보며 운전한다. 멍하니. 멍 하 니.
멍.
하.
니.
아 그리고 나는 차만 탔다 하면 잠이 오는 편이다.
그래서 운전할 때는 카페인 섭취와 시끄러운 노래는 필수이다.
노래는 락 같은 걸 듣는다.
잔잔한 노래는 듣지 않는다.
심플하고 시끄럽고 잠이 확 깰만한 락을 듣는다.
쏜애플, 린킨파크, 오아시스, 게리 무어, 넬, 레드 제플린, 블러, 크라잉넛, 체리필터
차 안에서 시끄럽게 음악을 틀면 엔진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음악 소리만 들린다. 풍경들도 보이지 않는다. 오롯이 차선과 앞차와 네비만을 본다.
네비는 어디 방향을 지시하고는 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내가 가야 하는 방향만 신경 쓴다.
그렇기에 내가 차와 함께 순간이동 하여서
창녕에 잠시 들려도
전주에 잠시 들려도
마산에 잠시 들려도
오키나와에 잠시 들려도
파리에 잠시 들려도
나는 전혀 모를 것이다.
혹은
2020년 12월 7일이었다가
1992년 2월 27일이었다가
2016년 10월 3일이었다가
2222년 2월 30일이었다가
다시 2023년으로 돌아와도
나는 전혀 모를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울 일도 충분히 있었고
웃을 일도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액셀을 밟는다.
다른 차선에 끼어들 때도 이제 불안해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도 긴장하지 않는다.
좁은 골목을 다닐 때도 예민해지지 않는다.
그저
무료할 뿐.
따분할 뿐.
피곤할 뿐인 운전.
잠이라도 오지 않기 위해.
음악의 볼륨을 키운다.
음악은 반드시 크게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