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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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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Sep 15. 2020

내가 읽으면 재미가 없어

평생 읽어주세요

7살 9월이 되니, 뭔가 마음이 바빠졌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될 거니, 읽기 독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혼자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싫어요."


생각보다 아이는 더 단호했다.


한글은 이미 오래전에 뗐다. 맞춤법이 좀 틀리기는 하지만 쓰기도 가능하고, 웬만한 책은 술술 잘 읽는다. 그렇지만 혼자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어달라는 <책의 바다>에 빠져본 적은 없지만, 자라면서 늘 책을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자연스레 혼자 책을 꺼내 들고 읽는 모습을 늘 상상해왔다. 그래서 이런 단호한 거절은 은근 충격이었다. (정말 아이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왜?"


그래서 결국 물었다.


"내가 읽으면 재미가 없어."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엄마가 평생 읽어주세요."


아이는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요새 배운 애교를 발산한다.


"그래, 알았어."


별 수 있나.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줘야지.


혼자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력은 아직 없어서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엄마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열심히 읽어주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한 줄짜리 책을 읽어주다가, 한 페이지에 네 줄쯤 있는 책을 처음 읽어주던 날. 참 목이 아팠다. 이 정도 길이의 책도 읽어주기 힘들구나, 싶었었다. 그 시기 회사 언니네 가서 본 6,7세용 책들의 글밥은 어마 무시했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그 어마 무시한 글밥의 책을 술술 읽는 '책읽맘' 이 되었다. 한 페이지에 10줄도 거뜬하다!


"엄마, 탄산수 갖고 올까요?"


책 읽을까? 하고 물으니 신나서 책을 잔뜩 꺼내오던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의 목까지 신경 써주는 효자구나. 그런 효심으로 읽기 독립도 해볼까?


2,3년만 더 읽어주면, 그땐 혼자 읽기도 하겠지. 그 날을 정말 손꼽아 기다린다. 

함께 도서관에 가서 각자의 책을 읽게 되는 날. 상상하면 참 행복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하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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