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가지지 마
코로나 때문에 직접 가서 제출하던 몇 년 치 자료를 올해는 본사에서 보내준 차가 돌면서 수거해가기로 했다. 1시에 오기로 한 차가 앞 순서가 일찍 끝났다고 20분 후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와서 부랴부랴 건물 앞으로 내놓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가 끝나고 20분이 지나도 도착을 하지 않았다. 추운 데서 떨면서 기다리다가 우리 앞 순서인 지사에 있는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차 거기서 출발했어?"
내 질문에 동기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언니 오늘 수거하는 날이죠. 어떡해. 나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집이에요."
"무슨 일 있어?"
"둘째가 아파서.. 어떻게 하죠. 죄송하다고 전화해야겠어요."
"그래, 괜찮아. 애기 잘 보고."
아이가 아파서 일정조차 잊고 집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다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잠시 후, 동기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 지금 우리 쪽에서 차 출발했다고 해요. 곧 그쪽 갈 거예요."
"응, 고마워."
"정말 잊고 있었어요."
"괜찮아. 이해해주실 거야. 아이는 어디가 아파?"
"제가 복직하고, 어린이집 일찍 보내고 늦게 찾고 하면서 힘들었나 봐요. 그냥 감기예요. 열이 좀 나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동기의 목소리에서 내가 보낸 그 시절의 아픔이 느껴졌다.
아이가 아파요, 가 아니라 내가 일찍 보내고 늦게 찾아서 아픈 거예요, 라는 말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S야, 네가 복직해서 아픈 거 아냐. 어린이집 일찍 가고 늦게 와서 아픈 거 아냐. 그냥 지금 환절기라 아이들 감기 잘 걸리는 시즌이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네 탓 아냐."
"언니..."
"정말 네 잘못 아니니까 죄책감 갖지 말고. 하루 쉬는 거니 둘째랑 딱 붙어서 시간 많이 보내주고 그래."
"그럴게요."
"그래, 낼 메신저에서 보자."
네 탓이 아냐.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시절의 내가 참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내가 복직을 하자마자, 아이는 3돌이 지날 때까지 걸리지 않았던 구내염과 수족구를 연속해서 앓았다.
복직하고 두어 달 동안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었을 정도로, 아이는 계속 아팠다.
주변에서 엄마가 복직한 걸 아나 보다, 하고 날 위로할 정도로...
그전까지 자잘한 병치레도 별로 없던 아이는 자꾸만 아팠다.
그래서 나는 친정 엄마에게, 때로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눈이 빨간 채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그때, 아이가 비슷한 또래였던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날 위로했었다.
"설이씨 탓이 아니에요. 어린이집 다니면 원래 그렇게 아파요."
"엄마가 복직해서 아픈 게 아니라, 요새 구내염 유행이래요."
"우리 어린이집에 수족구 엄청 많아, 거기만 그런 게 아냐."
네 탓이 아냐.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시절의 나에게도 선배 엄마, 아빠들은 같은 위로를 건넸다.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내가 복직을 해서,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서 아픈 게 아닐까..
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게 되는, 참 힘든 시기였다.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
하지만 위로가 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이야기.
네 탓이 아냐.
네 잘못이 아냐.
온전한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 위로를 다시 일하는 엄마, 아빠들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