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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Aug 14. 2020

추억을 걷다, 160 동인천역

특급열차를 드디어 타다

비 오는 날의 차이나타운


비가 좀 잦아들고 나서 월미도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역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인지, 인천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텅 비어있던 차이나타운에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사람들이 꽤 많이 줄 서있는 중국집들을 지나 <공화춘>으로 갔다. 의외로 대기가 없어서 수월하게 들어갔다.

친절한 직원분들, 맛있는 음식.

대기 없이 맛있게 먹고 나올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어서 더 좋았다.


젖어있는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며 다시 거리를 걸었다.

이국적인 노점상들도, 차이나타운에 어울리지 않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도 모두 유쾌했다.

탕후루가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비가 묻어 안된다고 달래며 돌아서는데, 아이가 불쑥 말했다.


"엄마, 우리 동인천역 가서 특급 열차 타자!"


지하철 역을 많이 서지 않는 특급 열차가 있다고, 아이는 엄청 빠른 그 열차를 타고 싶다고 졸라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서울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쓰다 보니 몇 년 전이람...) 급행열차가 전부였다.

10분의 단축을 위해 시간표를 들고 다니며 맞춰서 종종 뛰던 20대 초반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서 저 산을 넘어서 걸어가면 동인천역이 나와. 힘들다고 하지 않고 잘 걸어간다면, 가서 특급을 탈 수 있어. 할 수 있겠어?"


내 질문에 아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을 향하는 어마어마해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정말 산으로 통하는 길을 거쳐 자유공원에 도착했다.


자유공원의 메인. 응봉산 정상의 맥아더 장군 동상


어린 시절 소풍으로 종종 오던 자유공원.

가족들과도 함께 오던 이 곳에 내가 이룬 가족과 함께 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바다와 큰 배들, 컨테이너들을 한참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니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

꼭 보고 가야 하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이에게 6.25와 인천 상륙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30년 전, 나도 같은 경험을 했었으리라..

시간은 어쩜 이리도 빠를까. 나는 언제 이렇게 많이 크다 못해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이만 할 때, 자유공원에 놀러 와 비둘기를 잡겠다고 뛰어다녔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나는 이제 허리 통증에 뛰어다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가자, 를 외치는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만보기의 숫자는 만을 넘어섰지만, 몸은 가벼웠고, 기분도 좋았다.

내가 늙은 만큼, 많이 큰 아이는 힘들다는 소리 없이 참 잘 걸었다.

아기띠를 앞으로 메고, 기저귀 가방을 뒤로 메고, 앞뒤로 퉁퉁해져서 걸어 다니던 것도, 걷다가 힘들다는 아이를 번쩍 들고 걸었던 것도 모두 엊그제인 것 같은데, 아이는 어느 순간 나보다 더 잘 걷는 체력 좋은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예쁜 닭, 공작, 칠면조들이 있는 새장을 한참 구경하고, 겁 없는 고양이와도 인사를 나누고, 동인천역으로 향했다. 길치 엄마는 또 주택가로 방향을 잡아 어마어마한 내리막길을 걸어 돌아 돌아 동인천역에 도착했다.


160. 동인천역


10분 정도 기다리면 특급 열차가 도착하는 상황. 운이 좋았다.

아이의 기념사진 포즈는 항상 브이.


급행 : 동인천 - 제물포 - 주안 - 동암 - 부평 - 송내 - 부천 - 역곡 - 개봉 - 구로 - 이후 모든 역

특급 : 동인천 - 주안 - 부평 - 송내 - 부천 - 구로 - 신도림 - 노량진 - 용산


하나 건너 하나씩 서는 급행과 달리 특급은 한 번에 서너 개의 역을 건너뛰기에 속도가 훨씬 빨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고, 2017년 7월부터 운행하고 있다는 용산 특급열차.

지하철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꼭 실제로 타보고 싶은 지하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특급열차를 자주 타는 남편은 설렌다는 나와 아이를 보며 웃었지만, 우리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우리 지하철 노선도의 역들 다 가볼까?"


"엄마 사랑해요!!!"


나의 제안에 아이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며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지하철역 도장깨기의 시작.

무척이나 많은 지하철역을 모두 다 가볼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다.

아이가 지하철을 좋아하고, 꿈꾸는 동안은 부지런히 한 번 다녀보자.


150. 송내역


그런 의미에서 150. 송내역도 인증 추가! ^^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우리 함께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보자.


브런치에는 아이와의 지하철역 여정을 기록할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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