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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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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Aug 19. 2020

아이, 찍다

내 카메라로 내가 찍을 거야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잘 찍지는 못하지만, 어딘가에 가거나 무언가를 하면 기념사진을 남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아이는 사진 찍히는 것에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집에 있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디지털카메라를 아이에게 주려고 충전기를 찾다가 문득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이 생각났다. 내가 꽤 오래전에 사용했던 그 휴대폰은 기기변경 이후에는 해외여행을 갈 때, 현지 유심칩을 끼우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었다. 휴대폰 첫 화면에 카메라 버튼을 만들어주고, 이제 외출할 때 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지난 첫 지하철 여행길을 나서며 아이는 가방에 휴대폰을 챙겨 넣었다.


내 카메라를 가지고 처음 외출한 날, 이라며 아이는 들떴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너무나 설렌다고 했다.

아이는 쉴 새 없이 찍어댔다. 눈 앞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찍을 기세였다.

네 카메라에 모르는 사람이 찍히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더니 사진첩에 천장이 가득했다.


7세 사진작가, 최애 지하철 찍는 중


"집에 가면 다 프린트해줘, 나 책 만들 거야."


지하철에 내려서도, 지하철을 타기 전에도, 길을 걷다가도, 아이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좋을까.

진작 카메라든 휴대폰이든 하나 내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이의 걸음은 사진을 찍느라 점점 느려졌다.


내가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가졌을 때 어땠던가..

처음 떠났던 해외여행에서 나도 아이처럼 싱가포르의 이곳저곳을 찍어댔던 기억이 났다. 200만 화소의 (당시엔 좋은 편이었다!) 디지털카메라는 꽤 묵직했지만, 무더운 날씨에 지치면서도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빼지 못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을 정리해 싸이월드에 꽤 많이 업로드했었었다.


그땐 그랬지...

내 추억의 잔상이 신이 나 있는 아이 위로 겹쳐졌다.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

저 아이도 점점 크면서 나처럼 조금은 지치고, 조금은 재미없는 어른이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씁쓸해진다.

부디 나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는 어른이 되어주기를...


우중 촬영 :)


우산을 들고 걷던 아이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산을 대신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계속 들어주다가 그 모습이 귀여워 남편에게 들어주라고 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이런 사진이 탄생.

단톡 방에 이 사진을 공유했더니 예리한 친구가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그게 뭔지 이 사진을 보고 알아채셨다면, 당신은 센스 있는 사람.. :)

(아이의 머리를 채 반도 가리지 않고 있는 저 우산. 아빠들의 센스란.... 가끔 이렇게 많이 부족하다.)




이제 아이는 외출을 할 때 자신의 카메라를 챙긴다.

그리고 찍고, 찍고 또 찍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책을 만든다.



앨범을 하나 사주겠노라 제안했지만, 아이는 집에 쌓여있는 이면지에 테이프와 비닐을 덕지덕지 붙여 만들고는 무척 뿌듯해했다. 장기간의 보관을 위해서는 스케치북에라도 붙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요새 쌓여가는 아이의 작품집을 보며 이걸 어떻게 (안 걸리게) 치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직은 맞춤법이 엉망인 7세.

하지만 시키지 않아도 나들이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놀이'가 되어준 사진 찍기와 책 만들기가 기특하기도 하다.

쓰다 보면 늘겠지.

찍다 보면 늘겠지.


오늘도 아이는 찍는다.


"엄마, 우리 사진 찍으러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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