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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을 넘어 설예찬으로】

【푸른 밤은 유시를 지나 고요히 흐른다】

 석불이 플라즈마를 품고, 원시를 넘어 미래로 드리운 사연은 검고 부은 지난 업을 깨우치는 불공의 과정이었다. 원시인이 고통 속에 거석에 성혈을 뚫고, 시절은 미리내를 건너 침술에 깃들었다. 서로 간에 날카로움은 은은한 달빛의 이치를 잊은 지 오래고, 태고의 가이아인 자연에 귀 기울여 시그널의 감수성으로 자신의 무지와 난폭성을 잠재운다.

 원시시대를 지나, 청자부처의 그윽한 너그러움에 사늘한 밤의 공기는 어머니의 손길이었다. 푸른빛은 그렇게 차고 모진 채찍의 상흔을 아물게 한다. 무등산 약사사 도무스님께서 침술의 폐단을 통감하시고 호흡의 맥에 들어스셨다. 정권단련이 오히려 주변에 감화로 무디고 해진 두부로 변한다. 마음의 심술이 각목과 송판이 호소하는 소리에 겸허하지 않았을까? 주변과 호흡하고 통감함은 돌을 쪼거나 갈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멋과 기풍을 닮아간다. 치환이 한계로 돌은 돌이더라는 성철스님의 거시적•미시적 시각이 애처롭다.

  싸움이 무술이 되고, 무법이 되어 무도로 거듭날 때, 왈츠와 호흡은 동시성을 지닌다. 동으로 깃드나 서로 찾아드나 마음만 산만할 뿐이다. 고흐의 푸른 밤이 일귀 스님의 시그널로 고요히 흐른다. 푸른빛은 여자에게 취약한 달빛이고 고요히 흐르는 은하수는 남성을 애끌케하는 시그널이더라! 상쇄의 꾕가리가 다섯 가지 악기인 오행의 맥을 들추기도 한다. 별빛, 계곡의 물소리가 산사의 바람소리를 배경음으로 하여 목탁의 그윽한 풍미를 바람에 구애치 않고 청아하게 전한다.

 유마사 동암 홍산 스님의 깊고 토속적인 그윽한 멋은 명불허전이더라! 된장 같으신 발효의 맛으로 푸른빛을 품은 모후산의 정기를 여성도 산책을 만끽하는 피톤치드를 품으셨다. 상쇄는 중화반응과 달리 열이 없는 고요하고 침잠한 마음 다스림이다. 목재 박물관의 개관이 스님들이 달빛에 개 짖는 소리를 의구심으로 띄우는 가람이었다. 부끄러운 달빛이 산을 붉게 동감의 시각으로 감동한다. 산불은 곁불과 함께 이 겨울 마음의 싸늘함을 감싸는 동심의 쥐불놀이요, 불전에 올리는 겸허함이었다.

 주장자의 지팡이가 무겁거든, 내려놓는 겸허함도 꿰해볼 만 하나, 우주의 별빛과 태양, 지구의 삼신에 감화된 변명이란 개그맨의 우스개가 동네 짖는 개들의 합창인가? 줄탁동시로 타협안이 누구의 혜안인지 알 수 없는 해맑은 아이의 미소더라! 잘난이들의 입방정이 동안거로 적적한 산사를 아나바다도 아닌 웃음바다의 도가니로 열화장이다. 북망산은 멀고, 우주로 깃들고 픈 마음은 간절하게 별들의 군무와 일주운동이 지도를 보낸다. 천룡은 인어공주를 만나 승천을 못 하고, 상쇄되어 산사에 들어섰나! 물의 근원인 지혜께서 인어공주를 낳으셨고, 사위는 사위성을 뛰쳐나와 싯다르타를 닮아간다.

 직물을 직조하는 2월에 길삼의 억척스러운 삶으로 교육과 생활의 혜안을 열어가고, 쌈짓돈의 투박한 정은 손주들의 웃음과 미소를 머그으셨다. 분소의와 이불을 손수 가다듬는 너그러움을 맞이하는 봄바람이 가람의 미덕을 전수할 채비로 정갈하다. 나한전에 깃든 세계인이 각자의 후손을 배려하며, 한국답다의 멋과 교육열에 매료되셨다. 풍전만리심으로 향수의 연어에 동화되신 분들의 사려 깊으신 성향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사향노루가 그윽한 지의류를 돌보는 네버랜드의 피터팬 세계를 붓다의 맥으로 회상케 한다.

좌선의 호흡은 산사의 질소를 품고, 고요하고 침잠하게 우주를 품었다. 우주의 확장 속도의 너머 이면의 빛이 피로를 잊게 하고, 장생의 학과 남생이를 품은 태고의 한반도 네버랜드를 이뤄간다. 숨은 존재들이 우주에게 찾아들고, 여의주로 정수를 이룬 세계가 다가온다. 용은 왕의 사주가 아닌 교육의 저변이고 밑걸음이더라! 하심이 겸허하게 한기로 얼어붙은 마음에 정감을 더하여, 원적외선의 뜨거움을 감내한다. 우주의 유성이 성급하여 지구에 돌진할 때, 등거리는 두꺼비가 되어 달과 같이 주변을 우회와 선회로 이끈다. 유성의 크레이터로 뜨거운 등짝이 시원한 생명수로 치유의 맥을 품었다. 싯다르타는 지구를 감싸않은 성인이셨다.

 유시를 지나 두시언해로 괴팍한 괴짜의 김삿갓이 소탈하고 투박한 두보를 알아간다. 물염정의 적벽이 붉지 않고 푸르게 변해감은 순수한 흰 코끼리인 교육의 맥을 일깨우신 제패토의 한국다운 불상이더라! 욕심이 과하여 제 빛과 멋을 잃고 퇴색되어가는 시류가 정화수로 새벽녘 드리운 어머니의 배틀 짜는 한이더라! 이월을 지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갈 때, 사시의 닭 우는 소리는 정교함의 배꼽시계가 지구의 호흡을 알아가 터득하는 과정이듯, 나무가 혹이 달린 뿌리로 땅의 호흡을 느끼고 촉이 트는 자연의 이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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