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영 Sep 27. 2022

하면 사라집니다

지금껏 도망쳐온 당신에게

서점에 들렀다. 시간이 날 때, 시간을 내서 들르는 곳. 베스트셀러와 진열되어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갑자기 한숨이 푹 나왔다. 수많은 책 가운데 과연 내 책이 팔릴 수 있을까? 아직도 들어보지 못한 출판사와 작가님들이 많다. 넘쳐나는 레드오션에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졌다. '무명작가가 자신이 있을 수 없잖아.' 해보지도 않고 주눅이 들어버린 것이다. 참 쉽게도 눌린다.


아직 뛰어들지 않은 출판 시장 이야기가 아니다. 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님과 분리되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20년 동안 물들어버린 사고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이 좀 나아졌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깨지거나 부서진 물건들을 치우지 않아도 되었다. 더는 울지 않아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벗어나고 싶어 그렇게 발버둥 쳤던 시간을 돌아보니 더욱 옭아매져 있었다. 아파볼 만큼 괴롭고 나니 깨달은 한 가지 사실. 그건 자신을 인정하는 것.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가해자고 난 피해자라 생각했다. 인정하지 않은 내 모습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어가기란 산 넘어 산이었는데. 그때마다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차츰 사람들 속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가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바뀌고 싶다면,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자. 나를 직면하는 일이 쉽지 않아도 연습하면 안 될 것도 없다. 난 도전하기 전부터 지레 겁먹고 도망갈 궁리부터 하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 수 있어. 해보지 않고 판단할 수는 없지. 일단 해보자. 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간절한 사람에게 보이는 투명한 보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