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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Oct 07. 2022

목소리를 다리미로 펴는 일은 마음을 펴는 일입니다

킹스 스피치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를 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주인공 조지 6세가 '로그'라는 인물을 만나 말더듬이를 극복하고 연설하게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로그는 달랐다. 격식을 내려놓고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고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해 진심으로 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들어주었다. 치료를 위해 그동안 수많은 의사, 치료사들을 만났지만 고쳐지지 않았고. 로그는 어떤 학위나 자격증은 없었지만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평범하게 자랄 수 없었던 주인공은 친구가 없었고 유모의 차별과 학대가 있었다. 아버지의 다그침과 형의 놀림에 아무 말하지 못했다. 말을 더듬게 된 이유들이 있었다.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전쟁을 치른 군인처럼 전쟁 같은 가정이 있었고 아버지의 다그침, 오빠의 무시, 엄마의 무관심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말을 더듬지는 않았지만 말을 거의 뱉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이 연설할 때 정적처럼 난 말할 때 정적을 달고 살았다. 상대방과 이야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과연 상대방이 이런 정적을 견딜 수 있을까. 눈치가 보여 더욱 말이 안 나왔다.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중이다. 때로는 깨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파고들어야만 했다. 말더듬이를 고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나를 드러내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스피치를 배우고 있다. 내게 끊어 읽는 타이밍에 단어를 힘주어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다리미로 잘 펴보자고 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잔뜩 주고 있으니. 난 마음을 펴는 과정이라 느꼈다.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총을 들고 잔뜩 긴장과 경계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굳은 어깨와 팔을 살살 펴서 안아주는 일. 등을 토닥이는 일이다.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연설을 해내고 만다. 난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부디 그림자를 깨고 나오기를. 자신에게 한 발 다가서기를. 누구보다 용기 있고 한 나라의 왕이 되기에 자질이 있음을 스스로 믿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구겨진 마음을 다리미로 살살 펴서 비록 자국이 좀 남아있어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거나, 머리 싸매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믿어주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잘 사용하면 된다. 


당신은 내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 용감하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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