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정리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과 끝이 났다. 벌써 6,7년도 더 된 얘기지만 혹여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대청소하듯 정리가 필요하다 싶었다. 가장 긴 연애를 했던 3년이란 시간 동안 서서히 식어갔다.
그 뒤로 짝사랑에 아파하고 새로운 연애를 했다 사라질 동안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가정을 꾸린 모습, 이제야 축하한단 말을 멀리서나마 전한다. 박스정리를 하다 미쳐 놓친 편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버리기 전에 한 번씩 읽어봤는데 그때의 나는 참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한 발 뒤에서 보니 더 와닿게 되었다. 당신에겐 아무런 후회가 없으므로 편지를 찢어 버렸다. 이게 나의 첫 연애였다. 한동안 그 공백이 꽤 커서 정신을 차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남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연애는 8개월 만에 끝이 났다. 물론 그 사이에 짧은 만남이 스쳐갔지만 연애라 하기가 어렵다. 내겐. 반년을 만났어도, 한 달을 만났어도, 사귀자마자 내게 이별을 고한 그 모든 것은 연애가 아니었다.
그 상황에 놓여있을 땐 잘 몰랐던 것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당신이 너무 바쁜 것도, 우리가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고 늦은 밤에 아주 잠시 만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점점 마음이 삐끗했다. 문 연 곳이 없어 들어간 술집에서 안주 같은 것을 시켜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마셨고. 취한 채로 잠들었다 아침 일찍 헤어져야 했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았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취향이며 어떤 노래를 듣는지, 당신의 하루에 난 어떻게 존재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 정말 아니었구나. 헤어질 결심으로 날 만나러 왔던 그날까지 아직 생생하지만 당신을 정리했다.
정말 웃긴 건 두 번의 만남을 끝으로 내게 이별을 고했던, 방금까지도 함께 웃고 떠들다 전화를 끊었는데, 다 거짓이었던. 그 긴 편지 속에 진심이 하나라도 있었는지 따지고 싶은. 이제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원망이나 미워하는 마음 가지지 않으려 한다. 그것 또한 내게 감정낭비고 에너지 소모다. 어떤 것도 줄 수가 없다.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게 내 진심일까. 나를 놓쳐서 후회하고 떼굴떼굴 구르길 바라는 게 진심일까. 무엇이든. 더 볼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