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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ul 15. 2022

[북리뷰] <헬로월드-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디자인>

좋은 디자인은 존재한다.

헬로월드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디자인 ㅣ 앨리스 로스손 지음 ㅣ 윤제원 옮김

저자 앨리스 로스손 Alice Rawsthorn 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평론가다. 치즌헤일 갤러리 이사회의 의장이자 화이트채플 갤러리, 마이클클락컴퍼니의 이사이며 <인터네셔널 뉴욕타임스>와 <프리즈매거진>의 칼럼니스트로,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에 서훈되기도 했다. (참고 : 안그라픽스 http://agbook.co.kr/bookauth/1695/)





쉽지 않아 보이는 문제들이지만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잠재력을 발휘해 우리의 삶을 더 건설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면 전 인류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p.286 <헬로 월드>


미술은 관람자로부터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특정 정보를 얻을 때 똑같은 루트로 접한 사람이 없듯 작품을 접할 때의 감상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겹겹이 쌓이는 의미의 레이어들을 통해 작품은 풍부해진다. 하지만 디자인은 다르다. 디자인은 사용자가 특정 의미 혹은 행동을 도출하도록 유도해야한다. 빨간 삼각형 안에 손을 맞잡은 어른과 어린이의 실루엣을 보며 우리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걸 단번에 떠올린다. 이처럼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예술보다는 심리학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 책 또한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을 유도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헬로월드에서 강조하는 건,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선하고 강한 목적의식이다.


<헬로월드>는 총 1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해 정의한 후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에 대해 서술하고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상징, 그림, 형태, 자아, 사회적 의의)로 들어가는 구조다. 저자의 가치관을 파악한 뒤 그 가치관을 통해 학문을 살펴보는 방식인데, 타인의 가치관에 탑승함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순수하고 인도주의적이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은 진정성, 효율성, 독창성, 전통성을 필수로 하며 개방성, 이해심, 대담함, 겸손함, 숭고한 목적, 도전 정신, 외교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즐기고,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이해하고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야하며, 한계를 정하지 않아야 하고, 목적이 선해야 하며,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적절한 처세술과 협상 기술을 갖춰야 하고, 도전은 하되 엄격한 기준과 능숙한 처신을 전제로 한 무모하지 않은 도전이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의 덕목 중 특별히 와닿았던 부분 몇 개를 발췌해보았다.



◼︎ 진정성


부주의로 인해 환경에 피해를 끼친 사고가 있던 기업이 로고에 친환경 심볼을 내건다면 그 기업을 신뢰할 수 있을까? 디자인이 상징하는 의미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구글 로고가 때때로 꾸며지는 '두들'은 구글 직원들의 관심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여 제작된다. 두들은 개개인의 관심사와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는 구글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공장 생산 제품이라도 뛰어난 디자인에는 디자인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과 애정, 자부심이 녹아 있다.
p. 136 <헬로월드>


디자이너 역시 진정성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수제작을 하던 시절, 즉 예술작품과 디자인 아웃풋이 별반 다르지 않던 때는 제품에 손길과 함께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제품이 단순하고 기계적인 방법으로 단일화되며 사용자는 디자이너의 존재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은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즐겁게 작업한 디자인은 그 진정성이 사용자에게도 와닿는다. 그로부터 도출된 사용자와 디자이너의 정서적 유대감은 브랜드 매니아층의 기반이 된다.


진정성은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도 포함된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제품을 폐기하는 과정 또한 판매 방법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즐겁고 편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환경과 윤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디자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 효율성


디자인은 기능 수행과 영향력을 우선시해야한다. 심미적이지만 앉을 수 없는 의자는 의자라고 할 수 없고 조작법이 어려워 화를 부르는 UI는 최악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의도한 기능을 사용자가 수행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제품의 구조를 명확하게 밝혀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품이 직접 말한다고 할 수 있다.
p.230 <헬로월드>


특히 효율성 관련 부분에서 디터람스가 많이 인용된다. 디터람스는 '설명서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였듯 직관적으로 쓰임을 알 수 있게 제품을 설계하며, 외적요소 역시 사용자의 환경에 스며들게 가정에서 어우러지기 쉬운 컬러와 외형으로 제작하였다. 디터람스 제품처럼 디자인은 사용자를 거슬리게 하지 않아야 하며,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위험없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또한 효율적인 디자인은 편리해야 한다. 토네트의 No.14 의자는 조립식으로 이동이 간편하고 부품 교체가 쉬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애플의 아이폰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사용법으로 사랑을 받고 있고 런던 지하철 underground 또한 분포되어있던 복잡한 런던의 지리와 시스템을 정리했다. 이런 사례들은 좋은 디자인으로 길이길이 귀감이 되고 있다.



◼︎ 독창성


Y2K의 빈티지 패션, 맞춤제작 액세서리, 전통문화를 녹여낸 디자인 등 '개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행이다. 이는 소유물에 자신의 특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심리이며 산업혁명의 흔적인 규격화를 탈피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전보다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디자이너는 기능적이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프로덕트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3D프린터 등 시각화 방법이 다양해진만큼 전보다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디자이너들은 시장을 미리 분석하며 사람들의 심리를 한발짝 빠르게 간파해야 한다.



◼︎ 대담함과 도전 정신


굵직한 변화는 누군가의 대담한 시도를 통해 만들어졌다. 바우하우스는 미술과 산업을 합쳐 역사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크리티컬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지적 탐구 및 자기 표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흐름인데, 이는 디자인이 상업의 수단으로 치부되며 디자이너가 무력감을 느끼던 기류를 탈피하고자 행해졌다. 다니엘 반 데어 벨덴과 빈카크룩은 상업디자인 활동에는 지적 한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의뢰받지 않았더라도 클라이언트가 관심을 가질만한 주변 현상과 이슈들을 파악하고 추론하며 디자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디자인의 범위는 정해져있지 않고, 쉽게 정의되지도 않는 디자인이란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재단하는 건 모순이다. 대담하게 다양한 분야에 발을 디디고 해보지 않은 시도들을 한다면 독창적인 답을 낼 수 있고, 도태되는 상황에서는 변화를 시도해야 발전할 수 있다.



◼︎ 이해심과 숭고한 목적, 그리고 외교능력


디자인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그동안 봐왔던 디자인은 주로 상위 10%를 위한 디자인을 하며 소외된 90%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종합디자이너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리처드 버크민스터 플러 Richard Buckminster Fuller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사회는 '부족한 이들에게 더 많은 물자를 제공하는 것, 세상을 더 공평하고 생산적인 곳으로 만드는 곳'이다.




갈랜드의 성명서는 "우리는 교활한 상인, 뛰어난 세일즈맨, 호객꾼 노릇을 하는 데 지쳤으며 디자이너들이 가치있는 일을 하는 데 우선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게 되기 바란다"는 말로 끝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디자인 프로젝트가 '소외된 90퍼센트'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두는 일은 드물다.
p.265 <헬로월드>


스튜디오H는 에밀리 필로톤 Emily Pilloton과 매슈 밀러 Matthew Miller가 세운 인도주의적 디자인을 시행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많은 지역 사회 문제들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해오고 있다. 빈곤율을 묘사하는 그래프를 만들어 정부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개발도상국에 교육용 놀이터를 만들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당대에는 그 둘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디자이너는 많았으나 디자인이 주는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시행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스튜디오H 외에도 기능성 의족을 개발하여 다리가 절단된 사람들도 육상 선수가 될 수 있게 하거나, 노인이 갖는 고민과 무력의 원인을 해소하여 행복감을 보장하거나 등 인도주의적인 사례들이 있다. 소외된 90퍼센트가 동등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디자인이 많은 힘을 발휘한다. 디자인은 화려한 눈속임이 아니라, 문제를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외교 능력 또한 중요하다. 디터람스는 수월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기술팀에게 꼬냑 한 병을 선물했다고 한다. 환경을 100% 개선할 순 없어도 노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불장군이 아닌 센스있는 사회인이 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이 모든 요소를 갖춘 디자인을 하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앞선 능력들이 자신도 모르게 계발되어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인지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혹은 인지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근무하거나. 겸손은 좋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고 더 발휘할 필요는 있어보인다. 조금 더 직업과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디자인의 목적은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다. 그 불편함이란, 타인과의 비교에서 기인하는 심적 불편함일 수도 있고 제품과 서비스의 불친절함으로 비롯한 보편적 불편함, 환경 혹은 신체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물리적 불편함일 수도 있다. 어떠한 류의 불편함이든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또한 디자인은 '언어'다. 예술과 달리 객관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디자인을 하는 매 순간 특정 서비스, 제품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담은 언어를 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철저하고 유용한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제시한 덕목들을 모두 갖추면 당연히 좋지만, 덕목 중에서도 주무기를 만들어두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죽이고 창의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보단 창의성이 뛰어나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람과 협업하는 게 효율적이다. 부족한 능력에 대해 자탄하지말고 주무기를 탄탄하게 하며 주변인과의 관계를 잘 쌓아두는게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잘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욕심을 줄여보자. 내면의 문제를 독창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디자인이다. 자신의 심적 불편함을 해결하고 영양가있는 삶을 만들어간다면 좋은 디자인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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