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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맑을영 Sep 27. 2020

오늘을 살았더니 감독이 되었다

TODAY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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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았더니 감독이 되었다


Photo by Eric Rothermel on unsplash

나의 다이어리에는 항상 내일, 다음 달 그리고 내년의 계획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적어온 버킷리스트마저도 이룬 것 하나 없이 언젠가 도전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덮어둔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다음 날의 일정들을 빠르게 곱씹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내일은 9시에 온강 듣고, 12시에 교양 강의 들어야 하네. 알바는 6시니까 5시쯤에 저녁 먹어야겠다..! 누구랑 먹지? 아, 시험은 언제였지. 내일 아침에 계획 다시 정리하고 씻어야겠다. •••Z z z


그렇게 나의 하루의 끝은 대부분 내일에 대한 계획과 엉성한 포부들로 기록되고 있었다. 모두가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고 믿었으니까. 어른들은 항상 나에게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고, 그래야 조금 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 자체로 그럴듯하게 다가왔고, 더불어 모두가 내일을 바라보며 사는 모습은 나에게 나도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확신을 새겨주었다.


[투데이 레코드] 1차 기획안

그랬던 나에게 갑자기 감독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다음 날만 생각했던 내가 무턱대고 '오늘'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 기획서를 동아리에 제출하게 된 순간부터.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서에 담게 된 건 우연히 밤에 들렀던 한강 때문이었다. 나는 한강을 유독 많이 애정 한다. '한강이 내 강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밥 먹듯 하고, 우울할 때면 한강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길 정도로 말이다. 특히 반포 한강공원을 갈 때면 나는 항상 나만의 지정석에 앉곤 한다. 반포 한강공원은 밤마다 분수쇼가 시작되는데 바로 그 앞, 그러니까 둥근 계단 밑의 한강과 가장 가까운 끄트머리 부분에 앉는다. 맥주 하나와 함께. 거기에 앉으면 바로 아래에서는 한강의 물이 찰랑거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고, 그 맞은편으로 보이는 한남동의 불빛들을 따라 많은 건물들과 남산타워가 펼쳐진다. 또, 그 많은 불빛들이 한강의 물에 그대로 비쳐 더 반짝반짝 빛나며 나의 두 눈에 넘치도록 가득 찬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삼삼오오 모여 지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거나 버스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과 가볍게 산책하는 이들.  한강은 이렇게 사람이 지금을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이라는 불빛으로 항상 가득 차곤 한다. 그렇게 한강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일이 떠오르기보다는 오늘을 기억하게 되고, 지금 당장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처음으로 내가 온전히 오늘만을 생각하고 느꼈던 날이었을 것이다.


19년의 반포한강공원에서


그렇게 그 날의 생각을 잊지 않고 담아낸 기획서가 바로 [투데이 레코드]의 초고다. 후에 최종 기획서를 탈고하며 나는 어바웃 타임에서 팀(도널 글리슨)이 아버지의 조언대로 이미 지나간 오늘을 다시 되돌려 똑같은 하루를 한번 더 살아보며 오늘의 순간을 즐기는 것의 가치를 곱씹는 장면이 언뜻 생각났다. 아마 나의 영상을 통해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오늘을 기억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Live life as if there were no second chance.
다시 돌아올  번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삶을 살기를.

- 어바웃 타임  -
Photo by Ales Krivec on unsplash


그렇게  씬(scene)과 컷(cut)의 차이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꺼낸 엉망진창의 기획서로 10명의 스태프를 가진 단편 다큐멘터리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감독으로 보낸 6개월은 나에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나만의 꿈에 확신을 갖게 해 준 순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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