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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맑을영 Dec 30. 2020

청춘이라는 방향을 향해

허니와 클로버, Honey & Clover (2006) / Netflix


IEUM's Netflix Review
허니와 클로버, Honey & Clover (2006)
1 hour 55 minutes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허니와 클로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한다.

자신만의 예술세계와 세상이 원하는 예술과의 갈등을 가진 하구.

상품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리타 선배.

그리고 그들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타케모토.

남 모르게 스토킹 하며 자신의 짝사랑을 이어나가는 마야마아유미.

전혀 비슷하지 않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의외로 자신과 비슷한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



영화에서 하구와 모리타 선배는 자유분방한 천재로 등장한다. 하구는 항상 헤드폰을 착용하고 가만히 흰 도화지를 바라보다 망설임 없이 붓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모리타 선배는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도 금방 작품 세계에 빠져들며 마찬가지로 망설임이 없다. 같은 천재라서 그럴까. 그들은 첫 만남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붓, 물감으로 자신들만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분명 같은 곳에 그림을 그렸지만 각자 그려나가는 듯했고, 또 동시에 같은 작품 같기도 했다. 그 순간 그들은 가장 행복해 보였고, 자유로워 보였다. 누군가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두 사람이 그들의 세상에 빠져있는 순간에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타케모토.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에겐 보이지 않던 세계
이루지 못한 꿈과 동경
이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타케모토는  평범한 미대생이다. 하구를 처음 보는 순간 반했고, 그녀의 재능 넘치는 그림에 다시 한번 반한다. 하구와 모리타 그 주변을 서성이며 그들을 동경하고, 꿈꾼다. 그래서 그는 유독 눈에 밟혔던 인물 중 하나였다. 하구와 모리타가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사람이라면 타케모토는 그 두 사람을 둘러싸고 박수를 치는 흔한 엑스트라였으니까. 재능은 그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나는 절망할 뻔했다. 요즘 모든 주인공들이 그렇듯 능력이 뛰어나고, 외모마저 출중한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희망차게 그려나가는 영화일까 봐. 이런 스토리는 우리가 채우지 못한 것들을 채워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리가 채우지 못한 것들을 확실하게 깨닫게 한다. 하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천재와 평범함의 구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각 인물이 겪는 상황과 그들의 행동,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공감을 얻어낸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 자체로 청춘이었다.



모리타의 개인전에 참석했던 그들은 모리타의 즉흥적인 제안에 곧바로 바다로 향한다. 분명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 나가는 장면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바다에서 그들은 늘 그렇듯 청춘을 외친다. 남자들은 바다로 뛰어들고, 청춘의 한 컷이라는 말과 함께 다섯 명은 자신들의 청춘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 모든 흐름이 낯설지 않았다. 다소 뻔했다고 해야 할까. 모름지기 청춘이라면 즉흥적이고 패기 넘쳐야 한다는 연출이 담긴 클리셰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뻔함이 의외의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그래도 이런 게 청춘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구, 타케모토, 모리타, 아유미, 마야마 모두 청춘이라는 방향을 향해 있었다. 말 그대로 언젠가 추억하게 될 청춘의 한 장면이었다.





초원을 만들려면 꿀과 클로버가 필요하다.

_ Emily Dickinson



허니와 클로버. 영화 제목은 사실 굉장히 뜬금없이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소개의 첫 부분. 에밀리 디킨슨이 남긴 말을 읽으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초원을 만들려면 꿀과 클로버가 필요하다. 먼저 꿀을 품은 꽃이 있어야 벌들이 찾아오고, 또 꽃이 핀다. 그렇다면 클로버는 왜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허니와 클로버>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유미와 타케모토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그러다 문득 아유미는 행복해지고 싶다며 네 잎 클로버 찾기를 제안한다. 타케모토는 네 잎 클로버가 실제 하는 것이었냐며 반문하고, 네 잎 클로버를 찾기에 동참한다. 그리고 아유미는 말한다.

몸을 움직이니까 좋다. 구차하게 고민하는 건 영 적성에 안 맞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클로버를 찾으며 느끼는 이 마음들이 초원을 만들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생각과 고민은 숙명과 같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고민스럽지 않은 날들이 없다. 하지만, 자신을 해칠 만큼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보다는 그 고민에서 벗어나 지금 흘러가는 이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좋아해, 고마워.



이 영화에는 약간 흠칫할 수 있는 소재들도 등장한다. 바로 스토커. 마야마는 회사 상사를 스토킹 하고, 아유미는 마야마를 스토킹 한다. 그들에게 스토킹이란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게 되고, 그 사람만 쫓아다니게 되는 마음이 나타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코믹스럽고, 또 B 급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두 인물이 쫓기고, 또 쫓아가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결국, 아유미는 마야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게 되고, 마야마 또한 상사에게 들키게 된다. 그 결과, 두 인물 모두 짝사랑에 실패한다. 아유미는 거절당했고, 마야마는 회사를 옮긴다.



하지만, 마야마는 아유미와 함께 다시 상사를 찾아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한다. 이를 바라보던 아유미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 후 마음을 정리해나가던 아유미는 마야마와 동아리 모임에서 마주치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정리한다.


둘의 대화에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좋아해'라는 말과 '고마워'라는 대답이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답변은 '미안해'일 것이다.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이겠지만 좋아한다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대답이 미안함이라면 창피함과 더불어 비참함까지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야마의 '고마워'라는 대답이 참 고마웠다. 아유미의 진심이 그에게 닿았다는 의미니까. 아유미가 마야마를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그제야 '자신을 그만큼이나 좋아해 줘서 고마워'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성장통 (growing pain)


하구에게 슬럼프가 왔다. 더불어 모리타에게도. 하구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키지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되고, 모리타는 상품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하구만 바라보던 타케모토는 결국 모리타에게 찾아간다. 하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모리타 선배에게 있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는 망가진 하구의 붓을 가져와 정성스럽게 고쳐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의 행동들은 하구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도망치기 위한 핑계 같았다.



그럼에도 타케모토의 마음은 모리타를 넘어 하구에게도 닿았다. 모리타는 하구를 데려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운다. 지금 태우는 건 작품이 아니라 돈다발이라고 말하며. 그리고 하구에게는 친구들이 있기에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힘들었던 방황 속에서 결국 모리타는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하구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자유롭게 지켜나가기로 다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로 교감했고, 생각을 전달했다. 그들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였다.



그리고 타케모토도 곧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해
지금 네게 전해야 할 것을 전하고 싶어


그래서 타케모토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구에게 도착한 그는 마침내 하구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하구는 미소를 짓는다. 그 말간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성장통은 아름다웠다. 매 순간 솔직하고, 또 담백했다. 그들의 성장통은 사랑에서 시작하여 자신까지 퍼졌고, 그 과정을 겪었기에 그들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구가 그린 그날의 바다가 그들의 청춘을 비추는 듯했고, 그들의 청춘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Netfilx에서 '허니와 클로버'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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