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THEO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찬우 Nov 18. 2024

The Origin of Sin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생애 첫 기억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그 아이를 만났던 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보다 더 오래된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하게 몇 살 때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네 살 때 그 아이를 만났던 날이 확실하다. 그 아이는 지나치게 속눈썹이 길고 눈이 맑았다. 피부는 무척 하얗고 햇살에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흩날렸다.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아이를 만났던 날과 그 아이의 얼굴은 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본 적 없었기 때문에 같은 유치원을 다니진 않았던 것 같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어쩌다 한 번씩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엄마의 손을 잡고 다녔다.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볼 때마다 너무 사랑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옷과 신발은 너무 깨끗했고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혹시라도 그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아파트 놀이터를 자주 혼자 나갔었다. 어쩌면 매일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그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나타날 때면 심장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가 노는 모습을 그네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했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던 그 아이의 엄마는 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를 불렀다. 그러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곧 그 아이가 다시 돌아갈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아이에게서 더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네에 앉아 있던 나에게 그 아이가 다가왔었다.


    “그네 밀어줄까?”


 그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짓던 그 예쁜 미소로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아니 됐어. 나 이제 가야 돼.”


 나는 오랫동안 그 아이를 훔쳐보고 있던 걸 들켜버린 것 같은 죄책감에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사실 그 아이와 대화를 할 준비를 하고 있지 못했다. 뒤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뛰어가면서 심장이 지나치게 크게 뛰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뛰어가서 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한참을 현관에 서있었다. 그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이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나를 현관에 우두커니 서있게 했다. 만약에 그날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는 걸 내가 알았다면 나는 그렇게 도망을 쳤을까?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파트 놀이터를 나갔지만 그 아이를 만날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재활용 종이 쓰레기를 모아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많은 어린이 도서들과 폐지들이 쌓여있었다. 누가 이 많은 깨끗한 책들을 버려둔 것인가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버려진 노트들을 보았다. 나와 동년배들이 쓸 거 같은 그림일기장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 그림일기장에는 그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심도이’


 그 아이의 이름이 분명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심장이 크게 뛰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일기장들을 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차각 차각 차각 차각 차각


 세상은 조용했고 나의 뜀박질 소리만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내 발소리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심장은 더 심하게 뛰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누가 버려진 일기장을 훔쳐 들고 집으로 뛰어가는 나를 볼까 두려웠다. 나는 집에 돌아와 그 일기장들을 침대 밑에 숨겼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꽤나 한참 동안 진정되지 않았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고민을 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쁜 일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 일기장을 다시 돌려놓다가 누군가에게 내가 한 나쁜 일을 들키고 말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문들이 그 아이에게 닿아 나를 지독하게 나쁜 아이로 생각하게 할 것 같았다. 나는 어렸던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공포와 두려움에 잠식당했다. 그 일기장을 가지고 오지 말았어야 했었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그 일기장을 꺼내어 보았다. 그 일기장에는 그 아이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그림일기가 있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갔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엄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4권의 일기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휘리릭 넘겨보며 대충 몇 페이지를 겨우 읽어보았다. 나는 종이가방에 다시 4권의 그림일기를 담아서 집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 일기들을 원래 버려져 있던 곳에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기를 가져왔던 나의 선택과 잘못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행동을 그 아이가 알았다면 그 아이는 나를 싫어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그 아이를 그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 같았다.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다시 그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나는 충분히 더럽혀지고 나쁜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잊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었다. 왜냐면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몰랐었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그 아이의 머리칼, 속눈썹, 맑은 눈 그리고 하얀 뺨,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아이가 나타나면 작은 심장이 콩캉콩캉 뛰었었다. 너무나 아쉽게도 그 이후로 나는 어떤 누구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월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