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 경험들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념,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나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각기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화이기 때문이다. 나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이러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배경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그 속에서 나도 몰랐던 세계가 보이기도 하며 배울 점을 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도중 상대방의 가치관과 생각이 나의 것과 공명을 하게 되면 항상 맞장구 쳐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 대한 내 경험을 예를 들자면, 나는 대학교 때까지는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하러 올 때 최소한의 해결책을, 아니면 몇 가지의 의견이라도 제시해 주는 게 예의인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친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 그 선배의 대답은 아주 뜻 밖이었다.
"나도 너랑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내 얘기를 좀 해줄게. 대신 난 너한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지 않을 거야. 난 오롯이 내 경험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들만 너한테 들려줄 거야. 그리고 내가 말한 것들 절대 곧이곧대로 듣지 마. 내가 얘기하는 것들 중에서 네 상황에 맞는 필요한 것들만 여과해서 네 인생에 적용하면 돼, 알겠냐?"
얼핏 들으면 조금 무책임한 말 일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이 선배의 말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어쨌든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만 의견을 피력하거나 조언해 줄 수 있고, 이 역시 비슷한 상황 속에서 조언을 구하는 나였을지라도 그 선배와의 경험과는 완전히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필터링을 해서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 아주 색다르고 반가운 접근이었다.
이후에 나 역시 이런 선배의 말대로 조언을 구하러 오는 후배들을 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조언을 해주는 내 입장에서도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조금 덜을 수 있고,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본인이 필요한 것들만 걸러들으면 되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이런 대화를 하며 상대방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떻게 헤쳐나가고 싶어 하는 지를 알아가며 이 사람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실 나를 먼저 조금 오픈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선뜻 내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때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선 가볍게 내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를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조금 여유가 생기며 자신을 보여줄 의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대화를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어려움을 종종 겪긴 하지만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좀 더 나은 사회생활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해.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같은 질문들이 좋은 시작인 것 같다.
하지만 대화를 좋아하면 종종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남 얘기 하기 정말 좋아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너무 서슴지 않게 남 얘기를 하곤 한다. 자신과는 다른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뒷담화로 시작해서 루머로 발전해 결국 남을 깎아내리고 폄하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나는 내가 지금 내 눈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틀린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도 그런 생각과 신념을 갖게 된 자신만의 경험이 있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그러려니 넘기면 된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너"의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부족한데 남만 깎아내리는 대화는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물론 남 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활하며 이 교수님은 왜 이리 수업을 못 하는지, 시험은 왜 이리 쓸데없이 어렵게 내는지, 그리고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과는 내 상사 혹은 동료는 왜 이리 답답하고 편협한 지 하고 얘기한 적이 당연히 있었고 앞으로도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속에 있는 한을 풀어야 하는 한국인들인데 어찌 한탄 없이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남에 대한 비하는 짧은 비판적인 피드백으로, 그저 잠깐 흘러가는 한숨과 한탄으로 흘려버리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다. 모두들 자신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본인들의 스토리를 내게 한껏 털어놔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