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우면서 가볍고, 삶과 죽음의 냄새가 함께 배어있는 현장
여전히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pathologists' assistant program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 예전에 shadowing 했던 pathologists' assistant분의 도움으로 부검 현장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지원하려는 학교들은 부검이 입학 필요조건이 아니었지만 어차피 입학 후 프로그램 내에서 부검은 필수로 해야 하는 부분이고 미리 접해봐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찾아온 기회를 잘 잡았다.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많이 들었던 부검 참관이어서 이곳에 기록해두려 한다.
나는 부검 시작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어차피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부검이었고 출근하고 바로 부검실로 직행했던 터라 일찍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부검실 유리문 앞에서 벨을 누르려 한 순간 안에서 스크럽을 입고 계신 분께서 나오셨다.
"Hi! How can I help you?"
"Hi, I'm here for an autopsy shadowing with Dr. XXX."
"OK, you can wait in that clean room over there."
짧은 대화 후 나는 부검실 복도를 걸어 앞에 있는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 짧은 복도 왼편에 또 다른 큰 유리문이 있었고 그곳이 곧 부검이 이루어질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기실은 여느 직원들 대기실과 비슷했다. 사물함 몇 개, 컴퓨터 몇 대, 의자 여러 개, 화장실 등. 그곳에서 일처리를 하고 있던 병리과 레지던트 한 분이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Hi, nice to meet you. I'm XYZ. I'm a second-year resident."
"Hi, nice to meet you. I'm Kelvin. I'm here for shadowing."
인사를 나누고 교수님이 오시기 전 준비해 둘 것들이 있다며 같이 부검실로 향하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병리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처음엔 의대를 준비했다가 이 직업을 찾게 된 이유까지 얘기해 드렸고 그분은 결국엔 잘 된 일이라며 앞길을 응원해 주셨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PPE)를 착용했다: 특수 가운, 신발 커버, 마스크, 안면 가리개, 장갑 두 겹. 장갑 위에 장갑을 하나 더 끼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그렇게 준비를 하는 도중 옆방에서 부검보조사 분이 커다란 스테인레스 카트 위에 놓여있는 연회색빛 시신 주머니를 밀고 들어왔다. 그제서야 내가 부검실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고 그렇게 나도 같이 부검실로 들어갔다.
수술실과 부검실은 얼음장처럼 춥다는데 겉에 PPE를 껴입고 있어서인지 애초에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 탓인지 난 딱히 춥다고 느끼지 못했다. 부검실을 찬찬히 탐색하던 중 레지던트분이 차트를 들고 오셨고 부검보조사님이 시신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계셨다. 고등학교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입관되시기 전, 숨을 거두신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시신을 처음으로 봤던 것이다. 지병으로 돌아가셨던지라 그때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정말 숨을 거두신 분의 모습을 보고 있구나 라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부검케이스의 시신은 그렇지 않았다.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셨는데 어디 아프셨던 기색 없이 그냥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다. 레지던트 분께서 차트를 보시며 예전에 간염과 암 히스토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외관은 정말 지병이 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이 오시기 전 레지던트분과 부검보조사분이 항상 외관을 먼저 상세히 관찰하고 기록한다고 한다.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중 교수님께서 들어오셨고 팀 멤버들과 짧게 인사와 사담을 나누셨다. 그리고 교수님과 레지던트분 사이에 오갔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말이 있었다.
"Ok, so we are clear that this is a full autopsy case?"
"Yes, for sure."
"Alright! We are not going to jail today!"
한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미국에선 유가족이 전신부검을 거부하고 특정 부분 혹은 특정 장기만 부검할 수 있게 선택할 수 있다. Full body autopsy와 partial autopsy라 한다. 만약 유가족이 partial autopsy를 선택했는데 의사의 부주의로 full body autopsy를 진행한다면 유가족은 의사를 고소할 수 있다. 이 내용을 토대로 교수님이 오늘은 깜방에 가지 않겠다며 농담을 하신 것이다. 사실 내 머릿속 부검 현장은 아주 신성하고 엄숙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교수님에 농담에 좀 벙쪘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미디어에서 그런 모습으로 노출시켜서인지도 모르겠다. 교수님은 이 농담과 함께 컴퓨터에서 70-80년대 미국 밴드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셨다. 본격적으로 부검을 시작하시기 전 내게 하신 당부의 말씀 하나:
"At any point during the autopsy, if you feel sick or nauseous, please get out of the room, get some fresh air, and come back in. It's ok. I've seen students fainting on the floor here multiple times before. We don't need another body here, you know haha!"
시신을 보는 것이 익숙지 않은 학생들은 어지럼증이나 메스꺼움을 느낄 때가 있고 드물게 부검 현장에서 실신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셨다. 난 내 스스로가 그러지 않을걸 알기에 걱정은 없었지만 여기 또 다른 시체는 필요 없다면서 농담을 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은 또 조금은 다른 의미로 무섭게 느껴졌었다. 끝에 다시 서술하겠지만 난 첫 부검참관을 통해 느낀 건 부검에 대한 경외심과 편안한 분위기의 배움의 현장이었다.
이제부터 묘사할 부검 현장은 특성상 불편하고 잔인하게 보일 수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제일 첫 단계는 피부절개이다. 전신부검은 신체의 모든 장기를 밖으로 꺼내야 하기에 피부절개가 목부터 음부까지 일자로 쭉 이루어진다. 의학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 많이 나오는 '메스' (영어로는 scalpel이라 한다)로 피부절개를 한다. 수술은 절개부위와 출혈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히 천천히 절개하지만, 부검 같은 경우는 치료와 상흔에 대한 걱정이 없기에 과감하고 빠르게 절개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부검보조사분께서는 이런 일을 수도 없이 해오셨을 것이기에 거침없이 피부를 절개하셨지만, 나는 실제 사람의 몸이 완전 절개 되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어떻게 저렇게 망설임 없이 신체를 가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었다.
생각보다 사람의 피부는 두꺼웠다. 피부와 지방층이 겹쳐진 단면은 어림잡아 4-5cm 정도 돼 보였다. 그리고 피부와 복막 간의 유착도 매우 심했다. 피부를 절개한다고 바로 장기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고 복막과 피부의 사이의 유착 역시 메스로 긁어내야 비로소 안에 있던 장기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체 구조상 심장과 폐는 갈비뼈 안에 보호되어 있고 그 둘을 꺼내려면 갈비뼈를 드러내야 한다. 옛날에 의학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뇌수술 장면에서 두개골을 원형 톱으로 자르는 장면이 기억나서 갈비뼈도 비슷하려나 생각하던 도중 부검보조사분이 본인 키의 절반정도 되는 Lopper를 가져오셨다. 이 도구는 미국에서 가드닝, 특히 나뭇가지를 자를 때 쓰는 큰 가위다 (고지가위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전지가위의 아주 큰 버전이랄까). 부모님을 도와 뒷마당 나뭇가지들을 칠 때 lopper를 자주 써봤었던 나기에 나는 설마... 했다. 하지만 부검보조사분께서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lopper를 시신의 갈비뼈 왼편으로 가져다 대고 힘차게 자르기 시작하셨다.
"우지직!" "콰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후에 장기를 적출하는 모습들보다 이 광경이 내게는 제일 소름이 끼쳤다. 갈비뼈 하나하나 자를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저절로 내 표정을 일그러지게 했다. 마스크와 안면 보호대를 하고 있어서 내 표정이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양 옆의 갈비뼈를 모두 절단한 뒤 부검보조사분께서 앞면의 갈비뼈를 마치 냄비뚜껑 열듯이 드러내시고 내게 들어보라며 건네주셨다. 나는 어벙벙하며 절단된 갈비뼈를 받아 들었다. 갈비뼈는 보이는 크기에 비해 생각보다 가벼웠다. 어느새 거부감은 사라지고 열심히 갈비뼈를 이리저리 탐색하고 있었다.
다음은 장기를 적출해 낼 차례이다. 나는 장기들 하나하나 떼어서 교수님께 건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목에 식도와 기도의 상단을 끊고, 밑으로 내려와 직장부근을 끊는다. 그리고 가슴과 허리 부분의 장기-복막 간 유착들을 떼어내고 나면 식도/기도 부근과 직장 쪽을 각각 손잡이 잡듯이 잡아 들어 올린다. 그러면 연결되어 있는 장기들, 폐, 간, 위, 할 것 없이 모두 한꺼번에 딸려오고 그렇게 통째로 병리학자분의 검사테이블에 올려진다. 교수님과 레지던트 분들은 아주 능숙하게 장기들을 받아 검사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교수님과 레지던트분들이 장기 검사를 하실 때 부검보조사는 마지막 장기, 뇌를 꺼내기 시작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옛날 의학 다큐멘터리에서 뇌수술 장면을 본 적이 있어서 원형 전기톱으로 두개골을 가르는 모습은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두개골을 자를 때 났던 뼈가 타들어가는 냄새는 죽음의 냄새, 부패의 냄새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불쾌하고 역겨웠다. 두개골은 뒤통수와 정수리 사이 쪽과 이마의 윗라인을 따라 가르고 귀 살짝 위쪽에서 만나 1/3 정도를 드러낸다. 그러면 안에 있는 뇌가 나오고 조심스레 뇌와 척수를 잇는 뇌간을 절단하면 뇌가 몸 밖으로 나오게 된다. 뇌는 내가 직접 교수님께 운반해 드렸는데 보이는 부피에 비해 무겁다고 느껴졌었다.
그렇게 몸에 있는 장기들이 모두 덜어내진 시신은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는다. 상체는 완전히 갈라 열린 채로 검붉게 죽어있는 혈액과 휘어있는 척추만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왠지 모를 공허함이 괜히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텅 빈 배를 닫고 절단했던 두개골을 다시 조심스레 끼워 넣은 다음, 처음 시신이 담겨왔던 연회색 시신 주머니의 지퍼를 닫고 냉장보관실로 옮기면 부검이 마무리된다.
교수님과 레지던트들은 각각 장기들을 오이나 애호박을 썰듯이 슬라이스내면서 각 조각마다 병변이 있는지 관찰한다. 병변이 있다면 그 부분만 작게 잘라 포르말린 용액에 담고 추후에 현미경 슬라이드로 만들어 최종 진단에 쓰인다.
부검이 끝나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유가족들이 부검을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표현이 조금 과격하지만 말 그대로 사람의 몸을 찢어발겨놓으니 유가족 입장에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지만 한편으론 부검을 한다는 것은 정확한 사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유를 모른 채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또한 너무나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일이고, 전신부검이 부담스러워 partial autopsy를 신청한다 해도 부검을 한 부위가 아닌 다른 곳에 사인이 있을 수 있기에 전신부검을 하지 않는 것도 고민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부검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먼저 인체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함이 배가 되었다. 의대를 준비할 때도 항상 가지고 있던 감정이지만 체내에 있는 장기들을 가까이서 접한 건 이번 부검이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신기했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 투성이었다. 다음으로는 예상보다 가벼웠던 분위기의 부검 현장이었다. 물론 장난스럽거나 할 정도로 가볍진 않았다. 어쨌든 일터이고 시신을 앞에 두고 있으니.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부검실은 어두침침하고 스산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현장이 아니었다. 부검실은 눈부실 정도로 밝았고 교수님, 레지던트분들, 그리고 다른 보조사분들끼리의 가벼운 대화가 오가고, 스피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레지던트 분들은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훈련하는 배움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부검에 대한 신성함 역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거침없이 피부와 뼈를 절개하던 부검보조사분께서는 사실 아주 조심하면서 장기들이 훼손되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 절개를 하는 것이라고 부검이 끝난 후에 말씀해 주셨다. 특히나 원형 톱으로 두개골을 가를땐 얼마나 깊게 들어가야 뇌를 손상시키지 않고 딱 두개골만 가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경험이 풍부해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두개골 절개는 매번 집중하고 긴장하신다고 한다. 또한 교수님과 레지던트분들이 장기들의 병변들을 검사할 땐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셨다. 어떤 종류의 병변인 것 같은지 어디까지 샘플을 따야 할지 본인들의 생각을 주고받고 토론도 하는 모습의 눈빛은 예리함과 자신감이 곁들여져 보였다. 이런 모습들을 종합해서 느낀 부검에 대한 감정은 경외심이 제일 적합한 것 같다.
11월인 지금 Pathologists' assistant 프로그램 원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의대지원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챙길 것들이 많아서 일과 수업을 겸비하며 준비하다 보니 지금이 살면서 제일 바쁜 시기라 느껴진다. 그래도 잠깐 짬을 내 이렇게 기록할 수 있는 여유가 내게 있다는 것과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부검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호기심과 경외심은 이 분야에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