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춘기"라고 하는 신조어가 요즘 20대 후반사람들 사이에 많이 오르내린다고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 뜻을 보아하니 20대 후반 26-29세 청춘들이 비로소 학교에서 나와 또래들 사이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는, 그래서 더욱 자신과 비교되고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찾아오는 우울감과 허탈함을 일컫는 것이었다. 20대 후반을 곧 바라보고 있는 반오십인 나는 이런 낌새들이 조금씩 보인다.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내 주변 또래들을 보면, 갓 취업한 친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친구, 취준생인 친구, 대학교를 조금 오래 다니고 있는 친구 등 다양하다. 다들 20대 후반에 접어들 땐 이 차이점들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고 어쩌면 나도 이십춘기라는 것이 올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확인해 보는 척도가 되고 "쟤도 했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지"라는 동기부여가 되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러기 참 어려운 것 같다. 동기부여보단 좌절감, 질투심이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것 같다. 나 역시 의대 첫 도전에 실패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들끓었었다. 특히나 나와 같이 준비하고 있던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몇몇 후배들이 나를 제외하고 모두 의대에 합격했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난 그 친구들에게 시기심이나 질투심까지 생기진 않았지만 똑같이 열심히 준비한 내 노력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 나 자신에 대한 큰 허탈함에 빠져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은 벌써 본인 힘으로 돈을 벌어 저축과 투자에 대해 배워가는 와중에, 나는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그저 거쳐가는 직업을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경제관념에 눈을 뜨는 것이 또래들보다 비교적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은 그 허탈함을 좌절과 허망함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있으면 되던 일도 안 되는 법. 최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알기에 "비교"라는 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내게 긍정적으로만 작용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첫 의대도전 실패 직후 많이 했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두 가지.
나와 다른 분야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나는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감히 가늠할 수 없고 그들 역시 내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한 직접 그 분야에 몸 담아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분야를 걷고 있는 또래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의대를 준비하며 대학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코딩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입사 첫해, 혹은 회계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n번째 인턴십과 비교했을 때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어디에 서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친구들이 하나씩 본인들이 원하는 성과를 이루어 가는 걸 볼 때 나와 다른 분야에 대해 눈대중으로라도 배워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나도 정신 똑바로 붙들어 매고 매사 열심히 해야지란 동기부여로 승화시키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잘 가고 있는 건지 비교를 해야 될 것 같다 싶을 땐 난 내 과거의 자신과 비교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나아져 있는가? 하다 못해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지 못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이 과정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하루 '이 정도면 됐어'라는 식으로 현실에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매일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은 사람이긴 쉽지 않겠지만 큰 틀에서 멀리 볼 때 이전 보다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식견을 넓혀가고 있다면 목표를 향해 앞으로 순항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본인들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내 분야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 몇몇의 활약(?)만 허락하에 짧게 소개해보려 한다.
아무래도 내가 준비하는 의학은 공과와 더불어 대표적인 이과 분야이다 보니 내 주변엔 십중팔구 이과계열 친구들이다. 그래서 난 손에 꼽는 내 문과 친구들이 매우 소중하다. 이 친구가 그들 중 한 명이다. 법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로스쿨 도전과 언론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정말 멋진 친구이다.
저 감시자들이란 팟캐스트는 이 친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또래들이 모여 본인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가지고 와 생각을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듣기 편하지만 또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팟캐스트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게 한국 시사에 대해 따라갈 수 있게 해 주고, 사람의 복합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자주 다루는데 내 출퇴근길 혹은 업무시간을 따분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가끔씩 또래 여자분들 특유의 어~~ 하면서 공감하는 말투가 여러 명에게서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이 친구는 본인의 블로그도 겸비해서 운영하고 있다. 글을 많이 읽고 쓰는 친구라 책과 뉴스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내게 가끔씩 도서 추천이 되기도 하는 친구의 블로그다.
이 친구 역시 서사가 깊다. 의대를 꿈꾸며 재수생활에 도전하고 공대에 들어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고민하던 중 군대에서 그 목표를 찾아 현재는 배우의 길을 걸으며 노력하고 있는 친구이다. 이 친구의 아주 넓고 깊은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너무 축약한 것 같지만 이 친구의 블로그에 본인의 인생/가치관 얘기가 많이 담겨있고 그 속에서 매번 다짐하는 것이 느껴진다. 위에서 난 주변에 문과 친구가 몇 없다고 했는데, 배우를 준비하는 친구는 이 친구가 유일하다. 특히나 나처럼 의대를 준비하던 친구가 키를 돌려 예체능 쪽으로 발을 들인다 하니 더 관심이 가고 신기한 것 같다. 링크로 올려둔 연고티비 활동을 시작으로 몇몇 단편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경력을 조금씩 쌓고 있다.
기회의 땅 미국.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본 바, 이 단어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기회가 주어지는 땅". 즉, 미국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 기회가 물 밀듯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기회와 기적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매사 현재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행하는 것과 더불어,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을 직접 찾아보고 발로 뛰어야, 그제서야 조금씩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고, 눈에 띄기 시작하고, 비로소 잡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병원 연구소에서의 직업도 거저 얻은 게 아니라는 걸 난 알 수 있다.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보며 의학에 대한 내 비전을 보여준 후에야 비로소 한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한국도 미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난 한국에서 취준을 해보지 않은 터라 직접 비교해 보기 어렵긴 하지만 내가 소개한 이 친구들 역시 각자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며 기회를 잡기 위해 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감시자들이란 팟캐스트와 공영방송 단편 프로그램 출연이란 결과물이 하나둘씩 나오게 된 것이고 이것들이 성공의 발판이라고 믿으며 앞으로 쭉 나아가면 될 것이다. 이 친구들의 노력이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처럼, 이 친구들 그리고 모든 독자분들도 주변에 본인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