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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 Apr 27. 2024

말, 말, 말

언어의 힘과 온도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내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미국에서 the 5 love languages 라는 MBTI 테스트와 비슷하게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테스트해 보는, 즉 자신이 어떨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테스트해 보는 웹사이트가 유행했었다. 나 역시 궁금하기도 했어서 한 번 해봤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


왼쪽부터 words of affirmation, quality time, acts of service, gift giving, physical touch


얼핏 고르게 분포되어있긴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Words of affirmation, 직역하면 긍정의 언어이다. 요구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게 칭찬, 격려의 말을 해줄 때 나는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이 결과에 나는 꽤 동의하는 편이다. 지금 글을 쓰며 가장 먼저 떠오른 긍정의 말은 대학 졸업식날 친했던 선배가 내 졸업을 축하해 주며 내 덕에 자신의 대학생활이 행복했다는 한마디이다. 나는 애초에 말이 많지 않고 듣는 걸 더 편해하고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내게 해준 긍정의 언어들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고 때때로 다시금 나를 응원해 준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는 만큼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말의 힘을 믿게 된 계기는 사실 그리 좋은 출발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의 영향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땐 대화에서 욕설이 빠지면 어색할 정도였고 친구들 사이에 친근감을 드러내는 도구였기 때문에 말을 예쁘게 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기에 머릿속에 소위 말하는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필터가 아직 발달되지 않았기에 툭 툭 내뱉는 말투까지 더해 아주 모난 말들이 나오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은 실수를 해봐야, 본인이 피부로 느껴봐야 진정으로 깨닫는 것처럼 나도 내 말투 때문에 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나서야 내 말투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더 나아가 나의 말들로 타인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경험 때문에 말의 무게와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같다.


그래서 이때 이래로 나는 나의 언행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점점 말수를 줄여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드럽게 얘기하는 말투로 바꿔본다던지 그게 어려우면 욕설 정도만 줄여본다던지 등 다양한 옵션이 있었지만 내 내성적인 성격이 말수를 아예 줄여가는 쪽으로 택하지 않았나 싶다.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긴 했다. 더 이상 내 말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은 없어졌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성격도 더 둥글둥글해져 갔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말 자체를 많이 하지 않으니 말주변이 없어져갔다. 그래서인지 대학생 들어서부터 말주변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부럽곤 했다. 어떻게 하면 저리 냉정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할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딱 상황에 맞는 능청스러운 유머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수 있는지 마냥 부러웠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화를 잘 주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하거나 혹은 이어지고 있는 대화의 꼬리물기 질문을 하는 것들은 어렵지 않게 하는 편이지만,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에 좀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다. 머릿속에 빠르게 상황에 맞는 대화 주제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제일 큰 것 같다. 영양가 없는 얘기나 실없는 얘기들은 굳이 잘 안 하는 편이고 혹시나 또 그 속에서 날이 서있는 언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더욱 입을 닫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런 부족한 면을 글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화의 장에서 나와 잠시 독백에 빠져있다 보면 이런 얘기를 해봤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내가 쓰고 있는 브런치 글들에 조금씩 녹아들어 있다.


부정적인 언어의 힘을 뼈저리게 느껴보고 난 후 긍정적인 언어의 힘 역시 점차 알아가면서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도,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들도 격려와 칭찬, 응원이 많이 담겨있고 더 세련되고 다듬어진 예쁜 언어들이 이제 내 머릿속에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언행과 말투는 그 사람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비록 말수는 적어졌더라도 그 속을 모두 긍정적인 말들로 채워가면서 스스로도 낙관적인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다. 워낙에 네거티브가 넘쳐가는 요즘 시대에 모두들 자기 자신만큼은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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