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vs Nice to meet you! vs Enchanté!
프랑스에서 4년, 한국에서 12년, 미국에서 10년 그리고 ing
햇수로 따져본 내 인생.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출생~초등학교 2학년은 한국, 초등학고 3~6학년은 프랑스, 중학교 3년은 다시 한국, 그리고 고1~현재는 미국이다. 모두 내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주재원 자녀의 삶을 살아온 것이지만 조금 힘들었어도 3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난 꽤나 맘에 든다.
그래서인지 내 이런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내게 항상 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제목처럼 "한국이랑 미국이랑 프랑스 중에 어디가 제일 살기 좋았어?"이다. 아주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고 읽으러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먼저 사과드린다. 왜냐하면 내가 이 질문에 항상 하는 대답은 '비교하기가 어려워서 답을 줄 수가 없다' 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 문단에서 내 타임라인을 써놓은 것처럼, 내 인생의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았기에 그 나이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 경험에 한정돼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로 이주하기 전 내 한국생활은 사실 기억조차 거의 나질 않는다. 그저 어느 아파트에 살았었고, 어떤 초등학교에 다녔고, 등굣길에 항상 서울여대 후문을 지나쳤고,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를 다녔고, 그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다는 것 정도 (나열해 놓으니 뭔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저게 전부이다).
프랑스에서의 4년은 그저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초딩의 삶으로 나는 기억한다. 프랑스의 공립학교의 점심시간은 2시간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만 다녀본지라). 그래서 보통 30분-1시간 안에 점심을 해치우고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거나, 카드게임을 하거나, 롤플레잉 게임을 (나루토!!! 사스케!!!) 하는 등 여느 90년대 생들이 거쳐온 초등학교 생활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냐 물어보는데, 내 기억 속에 남는 프랑스에서의 인종차별 경험은 딱히 없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인종차별을 훨씬 많이 봐왔다. 어린 나이였기에 인종차별인지 인지하지 못했던 것 일수도 있지만 만약 충격적인 경험을 했었다면 지금까지 내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프랑스도 한국처럼 '시골민심'이라는 게 있어서 파리를 벗어나 지방 쪽으로 여행을 가보면 어디에나 친절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이야 왜 많이들 프랑스가 유럽의 중국이다라고 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2000년대 후반 초등학생인 내가 바라보았던 파리는 지금의 프랑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기에 내 기억 속에 프랑스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제2의 고향, 내 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에펠탑이 보이던 그런 낭만적인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중학교 생활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10+년지기 고마운 친구들을 만든 시기였다. 한국의 문화와 예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아실현의 꿈을 처음으로 그려본 시기. 하지만 여전히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던지라 사회와 세상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했고 그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친구들과 노는 것과 입시에만 집중했었다. 2023년도에 썼던 내 초창기 브런치 글들에도 쓰여있듯이 난 이 중학교 3년 동안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힘들었던 과거가 조금 미화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에서의 생활 역시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미국에 나와 사는 게 한국에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낫지 않냐라고, 특히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많이 물어보시는데, 난 나름대로 한국에 있었어도 거기에 맞춰 잘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겪어보지 않은 한국 고등학교/대학교 인생을 감히 추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덜컥 여기 나와 사는 게 훨씬 낫다고 인정하면 지금 한국에서 열심히 청춘을 바쳐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들 그리고 많은 내 20대 또래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쭉 지내온 미국에서는 이제 머리가 클 만큼 크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됐기에 자연스레 현실적인 부문으로 생각들이 뻗치게 되었다. 꿈을 구체화하는 일, 미래에 먹고사는 문제, 경제관념 등 미국에서 'adulting'이라고 부르는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을 모두 미국에서 겪고 있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최근이고 프랑스와 한국에서 지나온 학창 시절에 비해 냉정해진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좋은 점이 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싫다는 얘기가 아니다. 난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이곳에서의 삶 역시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에 난 미국에서의 삶도 아주 감사하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절에 내가 모두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았기에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저 아주 주관적인 내 해석으로 세 나라 모두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감사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세 나라에서 살며 공통적으로 느끼게 된 한 가지는 새로움과 다양성에 대해 거부감보다 호기심을 먼저 키울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었고 각기 다른 언어들이 주는 식견과 영감에 조금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정'이란 단어와 '눈치'라는 단어. 둘 모두 한국 고유의 문화에 기반한 단어인지라 영어와 불어에는 존재하지 않고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개념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정'을 affection으로, 눈치를 'sense'로만 번역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영어로 들어가면 'my mother, my father'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한국에선 보통 부모님을 지칭할 때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지칭할 때가 많다. 한글을 직역하면 'our mother, our father'가 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선 그렇지 않고 '내 엄마, 내 아빠'가 된다. 그렇기에 여기서 난 미국의 개인주의적 사회의 특징이 언어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또한, 살려주세요/사람 살려를 지칭하는 'help me!'에서도 보이듯이 한국에서는 '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영어에는 'me'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불어에는 거의 모든 명사에 déterminant이라고 하는 성별이 붙는다. 자세히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고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가 아는 실제 성(性)과는 다르게 철저히 문법적인 성이 붙는 것이다. 이 이유는 프랑스어를 포함한 많은 유럽권의 언어들이 고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라틴어가 성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왜 고대 라틴어가 성별을 갖고 있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이 외에도 어조, 어투, 말하는 속도 등의 차이에서 보이는 각 언어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조금 주제에서 벗어나서 언어를 주제로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최근 핫했던 '청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의 거의 막바지까지 주인공들이 수화로 대화를 한다는 점이다. 내 주변엔 농인분들이 없어 수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아주 신선했다. 아무래도 손으로 하는 대화이다 보니 말로 하는 대화보다 훨씬 바디랭귀지가 풍부하고 그로 인해 감정적인 교류까지 증폭되는 느낌이었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것인데, 수화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글, 미국에서 영어, 프랑스에서 불어를 하듯이, 수화 역시 한글수어, 영어수어, 불어수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각 나라의 수어 역시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특징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난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해외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졌고 앞으로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에 살고 있던 내가 과거에 살았던 다른 곳들과 비교 속에 빠져있기보단 현재에 집중하고 그 와중에도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은 계속 붙들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