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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훈 Jan 01. 2024

새해를 앞두고 앞차를 박았다

거짓말처럼 눈이 퍼부었다. 흔적기관이 되어버린 차선 위에서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한참 동안 눈 위를 기었다. 앞바퀴와 빙판길이 끈적한 밀당 끝에 오늘부터 1일을 선언할 즈음이었다. 앞차를 박았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이미 먼 길을 떠난 후였다. ‘긴급 제동’ 너를 믿었지만, 빙판길에선 남남이었다. 볼보 기술력 다 얼어 뒤졌다 툴툴대며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경미한 충돌이었다. 범퍼에 살짝 뽀뽀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운전자의 일그러진 입술은 퉁퉁 불어 있었다. 범퍼가 밀렸다고 와서 좀 보라는데 그걸 확인할 만큼 내 시력이 좋지 못했다. 느린 눈발처럼 차갑고 긴 시간이 쌓였다. 앞차의 진한 여운을 곱씹기엔 내 앞의 갈 길이 구만리였다. 세 시간을 더 기고 어르고 달려서야 목적지에 다다랐다.


나는 평생토록 운전을 무서워했다. 여전히 운전이 싫지만 이젠 무섭지 않을 정도가 겨우 된 게 올해의 일이다. 새해 액땜 정도로 치부할 만큼 긍정적이지 못한 나이기에 오늘의 불행은 익숙한 절망이 될 확률이 높다. 이런저런 작은 절망들이 켜켜이 쌓여 사람을 어른으로 만든다고 누가 말했다. 나는 충분히 어른이 되었는데.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을 만큼. 더 이상 나의 일상을 전시하고 싶지 않은 공간에서조차 무언가 닿기를 바라는 얄팍함으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 오늘의 절망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아침이 올지도 모른다. 거짓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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