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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Sep 01. 2023

37-1. 후지산 무박이일 등산했습니다

후지산 무박이일 일출산행을 생각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등산은 참 간단한 운동입니다. 적당한 장비와 적당한 체력만 있다면 적당한 산을 골라 적당히 즐길 수 있지요. 등산을 좋아하게 된 건 사오 년쯤 된 것 같습니다. 주로 서울에서 많이 올랐고, 겨울 한라를 두 번 곳곳의 좋은 산들을 몇 번 다녀온 것이기 때문에 가벼운 취미정도 수준이에요. 첫겨울 한라는 2년 전 퇴사할 때 회사 동료와 선배들이 사준 등산화와 등산가방, 등산양말을 가지고 올랐습니다. 이동할 때 짐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스패츠나 등산스틱 등 용품들은 대부분 빌려서 사용했습니다. 등산가방도 북한산을 길게 오를 때 정도만 가져가고 세 시간 이내의 산행은 그냥 핸드폰만 가볍게 들고 가는 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외국의 높은 산을 가는데 핸드폰만 홀랑홀랑 들고 갈 수 없어서 이번 산행은 이래저래 준비를 좀 했습니다. 후지산 등산 준비물, 도쿄에서 후지산 왕복 교통편을 포함한 추천 일정, 초행에서 느낀 것과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적어봅니다. 모든 내용은 요시다 등산로 기준입니다.


 후지산은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올해는 7.10~9.10) 별도의 허가 없이 등산이 가능합니다. 3,776m의 높이이고 등산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올라가는데 6-7시간, 내려오는데 4시간 정도 필요해요. 충분한 체력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등산에 도전하시고 기상이 안 좋아지거나 고산병 등으로 몸상태가 안 좋아지신다면 바로 중지 후 돌아오시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도쿄 여행 중 최소 1.5일은 온전히 후지산에 쏟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저는 꽤나 권해드리고 싶어요.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등산용품이 거의 없어서 이번 후지산 등산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등산용품을 샀어야 했어요. 이번 8월 27(일)-28(월)에 다녀온 후지산 무박이일 일출등산에 가져간 것들을 먼저 공유합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게도 비바람 없이 아주 날씨가 좋았어요. 맑은 날씨 기준으로 생각해 주세요. (아래 더 적겠지만 비가 온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등산을 빠르게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일정이 여유가 있고, 체력적으로 자신 있으신 분만 무박이일 우중산행이 가능합니다)


`중등산화 : 올라갈 때 길이 험한 곳이 있고, 내려올 때 화산송이들 덕분에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스를 신고 오신 분도 있었어요.

`스패츠 : 내려올 때 화산재와 화산석들이 신발에 엄청 들어갑니다. 숏스패츠도 괜찮으니 챙겨가세요.

`등산스틱 :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내려올 때 큰 힘이 돼요. (장갑도 챙기시는 걸 추천합니다)

`헤드랜턴 : 한 사람 당 하나씩 꼭 필요합니다.

`물 : 저는 등산할 때 정말 물을 안 마시는 편이에요. 5합목 휴게소에서 친구와 각자 2L 물병을 사서 올라갔는데 저는 14시간 여정 내내 300ml도 안 마시고 그대로 들고 내려왔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그냥 500ml 물병 2개 정도 사서 올라가고, 필요하다면 중간중간의 휴게소에서 사시는 걸 추천하더라고요.

`간식 : 저희는 각자 포도당젤리 3개, 5합목 휴게소에서 건포도와 초콜릿을 사서 올라갔습니다. 휴게소가 자주 있고 컵라면 등을 팔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챙기실 필요는 없어요.

`산소캔 : 이것도 5합목 휴게소에서 1,500엔 정도에 샀습니다. 저는 아주 천천히 올라가서 고산병에 영향을 덜 받았습니다만 혹시 몰라서 구매했고 기념품 삼아서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왔어요.

`타이레놀 : 고산병이 심할 때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저는 4알 챙겨갔지만 먹진 않았어요.

`핫팩 : 한 개씩 가지고 갔는데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래에 오는 복장을 잘 챙겨가시면 될 것 같아요.

`고글/마스크 : 하산할 때 화산재가 많이 날려 필요하다고 해서 챙겼는데 저희는 따로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날씨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바람이 많이 불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복장 : 하의는 레깅스 위에 봄가을용 트레이닝복을 추천합니다. 아래에선 더울지 몰라도 밤에 바람이 추워요. 상의는 기능성 반팔/긴팔 티에 봄가을용 트레이닝복, 얇은 패딩, 살짝 두꺼운 바람막이를 추천합니다. 추위를 좀 더 타시는 분은 외투류를 하나 더 추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고지대의 바람이 꽤나 춥습니다.

`등산가방 : 위의 것들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저는 여행짐을 쌀 때 등산관련한 것들은 등산가방에 최대한 넣어서 복잡하지 않게 했어요.


*이 아래에는 저는 챙겨가지 않았지만 생각해 볼 법한 것들을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얇은 방석, 얇은 침낭을 가져오신 외국인분도 많았어요, 비 온다면 우의와 등산가방 커버, 태극기나 정상에서 신낼 수 있는 소품)




 후지산 일출을 보려면 저녁에 산장을 예약해 하루 자고, 새벽에 출발하는 1박 일정과 제가 다녀온 것처럼 밤에 출발해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바로 내려오는 무박 일정이 있습니다. 저는 도쿄에서 무박일정으로 후지산에 다녀왔고 비슷한 일정을 짜실 분들을 위해 제가 이용한 방법과, 이용할 방법을 소개합니다.

(올해 일정은 거의 끝나가니 꼭 버스시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주쿠 <-> 후지산 직통버스 : 신주쿠 버스터미널에서 15:45분 막차를 타면 후지산에 18:20분경에 도착합니다. 다음날에는 아침 10시 첫차이고 신주쿠 버스터미널에 12:45분에 도착합니다. 예약이 간편해요.

(예약 링크 : https://highway-buses.jp/kor/course/fuji-5th.php)

 

 하지만 후지산에 18:20분에 도착해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출발하면 (식당이 19시에 닫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식당에 들러 요기하시고 물과 필요한 것들을 사두세요.) 너무 일러요. 후지산 정상까지는 천천히 가도 6-7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저희는 7시에 출발해 아주 천천히 오르다가 8합목에서 2시간 정도 쉬었는데 정상에 3시 즈음에 도착해 일출시간인 5시까지 2시간가량 시간이 애매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다음에 간다면 아래 방법을 이용해 후지산에 도착한 뒤 돌아올 때만 신주쿠행 직통버스를 이용하려고요.


`도쿄 <-> 가와구치코역 <-> 후지산 : 후지산에서 가까운 역인 가와구치코역에서 후지산 5합목까지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막차는 19시 10분에 출발해 후지산에 20시에 도착하니까 도착해서 천천히 고도에 적응을 하고 21시부터 천천히 등산을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신주쿠 직통버스보다 이르게 시작하고 늦게까지 있는 만큼 시간조절이 용이하지만 가와구치코역에서 도쿄까지 버스나 지하철 등을 한번 더 이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추천 일정을 정리하자면,


`도쿄에서 가와구치코역으로 이동(15시경 출발) > 저녁식사 후 막차(19시 10분)를 타고 후지산 도착(20시) > 1시간 이상 고도 적응 후 21시부터 등산 시작해 다음날 새벽 3~4시경 정상 도착 > 분화구 돌기(1시간 30분~2시간 정도 소요) or 일출 보기 > 하산(3~4시간 소요) > 신주쿠행 첫차 타기(10시) > 신주쿠 도착(12시 30분)입니다.


 저는 오고 가는 버스에서 열심히 잤고, 숙소 도착한 뒤에도 저녁 6시까지 잤습니다. 하루 반을 온전히 등산에 쏟아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꽤 있으니 여행 일정을 짜실 때 충분히 고민하셨으면 좋겠어요.




 후지산을 오르는 도중 9합목 즈음에서 친구가 여길 왜 오자고 했을까 살짝 후회된다는 말을 했어요. 저희가 너무 일찍 출발해서 8합목에 도착했을 때 11시 정도였고, 정상에 오르면 쉴 곳이 없고 더 추워질까 봐 8합목 구석에서 2시간 정도 쉬었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너무 춥더라고요. 2시간 정도를 버티고 다시 등산을 하는데 날은 어두워서 어딜 걷는지도 알 수 없고, 정상이 어디쯤인지 감도 안 잡히니 영 힘이 안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신이 났었어요. 이 친구 덕분에 급작스럽게 후지산에 와있고, 이번에 오지 않았으면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었을까 싶었거든요. 9합목 중반에서 정상까지는 사람들이 줄지어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끝의 한 시간 정도는 그냥 앞사람을 기다리며 올라가기만 해야 해요. 좁은 길 따라서 수십 미터가 이어진 헤드랜턴의 행렬을 보니 참 장관이었습니다. 순례객 같기도 하고, 별에 가까워지는 길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다행히 고산병이 심하지 않았고 날씨도 좋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올랐다지만 오르고 내리는 14시간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막상 내려온 뒤에는 저는 빨라야 2년 뒤에나 후지산 생각이 날 것 같았는데, 친구는 내년을 얘기하더라고요. 둘 다 똑같이 한 생각은 처음이라서 아쉬운 점이 있었고 다음에 올 때는 꼭 같이 오는 사람들을 도와줘서 훨씬 더 수월하고 좋은 경험만 나눠줘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오르는 등산길은 중간에 험한 구간도 있고, 정상이 어딘지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냥 오르기만 해서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저는 정상에 올라 분화구를 따라 도는 2시간가량의 시간 동안 사람들 몰래 엉엉 울었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는 담담하게 아침인사를 전했어요) 동이 트면서 산이 보이는데 내가 안 보인다고 겁 없이 오른 이 산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깨닫고, 황량하고 무심한 화산의 꼭대기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화성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적어도 한국의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니 이 아름답고 거대한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다음에 저와 오시는 분은 체력을 조금 더 기르고, 밤 9시쯤에 출발해 산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분화구를 돌며 일출의 시간을 맞고, 물과 간식은 산에 오기 전 편의점에서 미리 사고, 쉬는 건 자주 쉬고, 정상에서도 좀 더 쉬고(새벽 3시에 정상 식당이 문을 엽니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데 몸을 녹이고 분화구를 돌 힘을 줄 것 같아요. 오히려 정상이 쉬는 시설들이 잘 되어있습니다), 하산을 시작할 때 정상에서 꼭 화장실을 들르고, 신주쿠 첫차가 10시니까 하산도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야겠다는 저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더 찬란한 경험을 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일본에 자주 가다 보니 후지산에 가봐야지라는 생각만 있었는데, 친구 잘 둔 덕에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날씨가 안도와 준다면 굳이 억지로 오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원래 뇌우주의보가 있었는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서 정말 감사한 일정이었습니다.


 등산용품들은 수하물로 붙이시는 게 안전합니다. 등산스틱등은 기내 반입이 안되거든요. 5합목의 출발지점에서 등산용품을 빌릴 수도 있는데, 후지산을 가실 정도라면 이참에 구매해 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저는 스틱, 스패츠, 헤드랜턴 등을 사는데 10만 원 정도 든 것 같습니다. 가방과 등산화, 모자, 장갑 등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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