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모의 상당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본격적으로 공부와의 전쟁이 시작되곤 한다. "도대체 언제 공부할래? 너 언제까지 그렇게 놀기만 할래?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제 공부 좀 해라. 공부!"
아직도 많은 부모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뭐가 되어도 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한 아이의 머릿속에 많은 걸 집어넣으면 아이가 똑똑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최대한 어릴 때부터 다양한 학습도구 등을 들이밀며 인지적 학습을 유도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어떠한가? 아직도 획일적이고 주입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검색만 하면 모든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전문영역까지 대체하고 있는 세상이다. 머릿속에 주입식으로 집어넣은 지식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답이 요구되며, 교과서에 나온 생각이 아닌, 남과 다른, 나만의 생각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놀이는 경쟁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세상이 요구하는 인재의 기준으로 4C를 주로 이야기한다. 바로 창의력(Creativity)과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능력 (Communication)과 협업능력(Collaboration)이다.
남과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과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시대가 원하는 핵심역량인 것이다.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인 폴 킴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제 세상은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교육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가 부족합니다. 창의적이지 않거나 자기주도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역할을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암기식, 시험 준비식의 교육방식으로는 절대 21세기 인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교육전문가들은 아이들을 창의적 인재로 키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렸을 때 놀이를 충분히 한 아이들이 그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충분한 놀이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창의성과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함께 어울리며 협동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놀이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노는 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 인간 고유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충분히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엔 아이들이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과 놀이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놀이할 공간이나 함께 놀 친구, 다양한 놀이 문화가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의 놀이라고 해봤자, 집집마다 디지털 기기를 갖고 노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중독성이 높은 게임, 앱 등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몸을 부대끼며 노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다.
놀이치료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인데, 어느덧 놀이는 치료의 영역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정서적인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고 나서야 놀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놀이문화를 빼앗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놀이를 잃어버린 결과로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
놀아야 산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프로이트는 "인간이 가진 부정적인 정서를 극복하고 소망을 충족시키는 힘이 놀이에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어릴 때 놀이가 부족한 아이들은 정서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정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홍현주 교수팀은 군포시 다섯 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사교육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학습과 예체능을 포함, 하루 네 시간 이상의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경우, 30%나 되는 아이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발달을 위해서는 충분히 놀면서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를 하고, 친구와 우정을 경험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어른은 어떨까? 몰입 이론의 창시자인 칙센트미하이는 1970년대 초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평상시에 생활하면서 하게 되는 '목적이 없이 행동한' 모든 일을 기록하게 했다. 의무감이나 특정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즐기기 때문에 하는 소소한 일들'을 전부 기록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평소처럼 해야 할 일은 모두 하되, '목적이 없이 행동하는 일'('놀이' 포함)은 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다. 그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얻었던 모든 활동을 피해야 했다. 운동을 즐기던 사람들은 운동을 중단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고, 휴식을 위한 독서라든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의 친구와의 대화도 금지되었다.
첫째 날이 끝나기 전에 그들은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긴장되고 화가 나며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대답했다. 졸음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험이 이틀 동안 진행되었는데, 다들 기분이 침체되어서 더 이상 실험을 연장하기도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틀의 시간 동안 '무목적적인 활동'을 못하게 하자 그들은 불안, 긴장, 집중력 장애, 수면장애 등의 정서적, 신체적인 문제를 호소한 것이다.
OECD 국가들은 놀이에 투자한다.
OECD의 국가들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을 충분히 놀게 해 준다. 배우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겁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한다. 놀이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부터 미래의 경쟁력이 확보되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놀이
핀란드의 유치원에서는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무조건 야외로 나가서 바깥놀이를 한다. 장난감 하나 없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탐색하고 집중하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며 친구들과 어울려 사회성을 키워가는 것. 이게 바깥놀이의 목적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 배워야 할 모든 것이 이 놀이에 있다고 믿는다.
영국의 놀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놀이를 연구하고 있으며 놀이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다. 그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동의 놀이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 시민들은 한 달에 2번씩 골목에 차량을 통제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협력한다. 아이들에게 놀이공간과 시간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다. 브리스톨 시 한 주부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영국 전역으로 퍼져서 시행되고 있다. (Playing out)
독일의 놀이
"이 도시의 심장은 어린이를 위해 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슬로건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놀이중심으로 아이를 키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도시 전체를 놀이터로 만드는 놀이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100미터당 한 개꼴로 총 150개의 놀이터가 있다. 독일 전체에 모래가 없는 놀이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모든 놀이터는 제각각이며, 같은 놀이터는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의 놀이
유태인의 유아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흥미, 호기심, 탐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 온종일 아이들을 놀게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글자와 숫자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제한하며, 발달단계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영국, 독일, 핀란드,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유치원에서는 같은 이유로 글자 교육, 숫자 교육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놀아야 성공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를 중요하게 여기고, 아이들의 놀이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까? 놀이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시대의 경쟁력은 창의력에 있다. 창의성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놀이를 많이 해본 아이들은 A와 B를 가지고 놀면서 C를 만들고, D를 만든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공체험도 하고, 때론 실패하면서 다양한 것을 시도해본다. 그렇게 자유롭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창의성이 발휘된다.
아이들을 다가오는 미래시대에 인재로 키워주고 싶다면,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충분히 놀게 해주어야 한다. 심심하고 한가한 시간이 있어야 아이들은 이것저것 놀 궁리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놀 시간이 필요하며, 놀 권리가 있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놀이를 되찾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