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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의 짜증에 그렇게 약할까

by 안세영


며칠 전 친정식구 모임에 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였고, 식당에 점심 예약까지 해두었기에 시간에 맞춰 출발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며칠 전부터 1박 2일로 다녀올 예정이라는 걸 이야기해두었고, 고양이는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미리 설명해두었다.


그런데 전날 밤까지 아무 말 없던 쌍둥이 아이 중 한 명이, 막상 아침이 되어 출발하려는 시점에 갑자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다.


"팝콘이(고양이) 안가면, 나도 안 갈거야."라며 말이다.


나는 순간 어지러워졌다.

할머니와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고, 점심 예약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차가 막히면 3~4시간 걸릴 수 있는 장거리 이동에 고양이까지 데려가는 건 무리라는 판단. 아이에게 여러 번 설명해도 고집은 꺾이지 않았고, 이불을 덮은 채 미동도 없이 드러누운 모습을 보며 나도 결국 욱하고 말았다.


참아보려 했지만, 손바닥으로 아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몇 대 날리고, 이불을 걷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아, 어떻게 너 생각만 해. 식구들 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 이러면 엄마 너무 속상해!”


그렇게 화를 낸 건,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유치원 다닐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아이를 때렸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마음 깊이 남았다.


그날 아이는 울면서도 결국 엄마의 마음을 받아주었고, 서로 감정을 추스리며 천천히 옷을 입고 함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차 안에서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고, 내 속상했던 마음도 조심스럽게 말로 건넸다. 고양이 없이 지낸 1박 2일은 생각보다 무탈했고, 아이도 안심한 듯 보였다. 우리는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돌아와 가만히 그날을 떠올려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이유는 단순히 아이가 짜증을 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두려웠던 거다.

아이가 자기 감정만 앞세우고 약속을 무시하면 어쩌나, 버릇없이 자라지는 않을까. 그리고 나는 아이를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 하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이 무력감으로, 무력감이 분노로 바뀌어 올라왔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중요한 약속을 지키고, 함께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신뢰받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나는 아이의 불편한 감정이나 돌발 행동 앞에서도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회복했다.
욱한 감정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날의 사건은,
‘엄마로서 나는 왜 아이의 짜증에 그렇게 약한가’라는 질문을 내게 남겼다.


나는 지금도 아이의 격한 감정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많다. 짜증이 올라올 때마다 ‘가르쳐야 하나, 공감해야 하나, 단호해야 하나’ 헷갈리고, 그 사이에서 무력감이나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감정은 실패가 아니다.

화를 낸 엄마가 ‘나쁜 엄마’가 아니라,
그 감정 이후에 돌아서서 아이의 마음을 다시 만지려는 그 태도야말로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다시 잇는 다리가 된다는 것을.





이 글이
아이의 짜증 앞에서 순간적으로 욱해버리고,
그러고 나서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다른 엄마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니까.


아이의 짜증에 감정이 욱하고 올라오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감정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가 나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감정 안에는 지키고 싶은 원칙,
관계 안에서의 바람, 그리고 실패하고 싶지 않은 사랑이 숨어 있다.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깔린 나의 진심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 그게 시작이다.


그리고 다음에 또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이렇게 해보고 싶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 내 안에서 어떤 두려움이 올라오는지 먼저 알아차리기


그 순간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기 “지금은 잔소리나 가르침 보다 연결이 필요해.”


말을 하기 전, 숨 한 번 크게 쉬고 3초 멈추기


그리고 다시 연결을 시도하기
“엄마도 좀 당황했어. 너도 마음이 복잡하지? 잠깐 쉬고 우리 이야기해보자.”


완벽하고 유능한 엄마가 아니라,
감정을 회복할 줄 아는 엄마.
실수한 후에도 진심으로 돌아설 줄 아는 엄마.

나는 지금도 그 길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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