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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 리 Wine Lee Jun 20. 2021

여름날의 뉴질랜드 소비뇽블랑

완벽한 반주 #06

알려드립니다. 드디어 화이트 와인의 계절, 여름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사실 저는 사계절 가리지 않고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주변에는 레드와인을 더 선호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와인의 비율도 레드와인이 압도적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보편적인 취향이 그런 듯합니다.


햇빛 좋은 초여름 테라스에서 화이트 와인 한 잔


하지만 요즘처럼 햇빛이 따가워지고 등줄기에 땀이 찔끔 나는 날씨가 되면, 어김없이 화이트 와인이 먼저 생각나는 건 모두 공감하실 테죠. 레드와인보다 상대적으로 바디감이 가벼운 특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화이트 와인이 가장 맛있는 온도도 레드와인보다 낮습니다. 심플하게 나눠보자면 레드와인은 약 15~20도 사이, 화이트 와인은 약 10~15도 사이가 적정온도라고들 하죠.


그런데 적정 온도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마다, '아 잠깐만, 와인 온도가 괜찮은지 온도계로 한번 재볼까?'라고 하기는 너무 귀찮죠. 또 레드와 화이트를 나눠 보관할 수 있는 전용 셀러가 있다면 만사형통이겠지만, 초보 입장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고요. 미니 셀러 하나만 있어도 아주 럭셔리한 축에 속하니까 말이에요.


(부끄러우니 작게)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화이트와인을 심폐소생 하는 법


그리고 적정온도의 범위 안에서도 와인의 특성에 따라 미세한 온도 조절이 관건이기 때문에, '적정온도'라는 명목상의 숫자보다는 직접 경험으로 쌓은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막 와인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막막하다고 느끼시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와인은 그런 것 같습니다. '먹는 만큼 보인다!'


그래도 '모르겠고 일단 먹어봐', 같은 무책임한 발언 대신 제가 경험치를 쌓는 방법을 말씀드려볼게요. 저는 일단 레드는 살짝 시원한 가을 날씨의 상온 정도, 화이트는 병을 만졌을 때 꽤 차가운 정도, 라는 대략적인 밑그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대전제를 가지고 이것저것 먹어보며 경험치를 쌓아 나름의 기준을 머릿속에 그려가고 있죠. 그동안 쌓은 팁을 생각나는 대로 몇 개 말해보자면 샴페인은 일반 화이트보다 온도가 낮아야 기포가 잘 살고, 화이트 와인도 너무 차가우면 아무 맛도 향도 안 나니 그럴 때는 수다나 떨면서 조금 기다려야 하고, 처음부터 와인을 너무 많이 따르면 돌이킬 수 없게 되니 첫 잔은 조금만 따라서 온도를 느껴봐야 하고, 등등. 와인 한 잔을 마셔도 온도 변화를 염두에 두고 마셔보면, 온도라는 조건이 와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느끼면서 누구나 자신만의 온도 기준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와인잔이 아주 살짝 뽀얗게 되는 화이트 와인의 적정온도


아무튼 다시 오늘의 와인 얘기로 돌아오자면, 날이 더워지니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오늘 얘기할 와인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와인이라 조금 설레네요.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더운 여름날 물 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질 때 마시기에 딱 좋은 와인, 여름의 완벽한 반주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소비뇽블랑이라는 품종은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리가 평소 만나기 쉬운 품종입니다.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라는 지역의 소비뇽 블랑도 유명하고, 보르도에서는 주로 세미용(Semillon)이라는 품종과 블렌딩 하죠. 프랑스 외에도 남아공, 미국, 호주 등등 소비뇽블랑의 산지는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소비뇽블랑 와인이지만, 뉴질랜드의 소비뇽블랑은 시장에서 꽤 입지가 탄탄합니다. 뉴질랜드, 그 안에서도 '말보로(Marlborough)'라는 지역의 소비뇽블랑은 거의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뉴질랜드 하면 와인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유독 말보로의 소비뇽블랑이 이렇게 유명하다니 참 신기하죠?

비슷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각자의 매력이 있는 말보로 소비뇽블랑들


말보로 소비뇽 블랑의 열혈팬 중 한 사람으로서 왜 이걸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무엇보다 향과 맛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탄산이 없는데도 청량감이 느껴질 만큼 산도도 좋고, 향을 맡아보면 리치, 패션후르츠, 키위, 망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의 향긋함이 가득합니다. 더운 날씨에 진이 빠진 상태에서 리프레쉬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이 없죠! (물론 추운 겨울에 마셔도 여전히 맛있습니다 :-P)


그리고 그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퀄리티가 보장이 됩니다. 잘 모르는 와이너리이더라도 '말보로 소비뇽 블랑? 잘 만들었겠지!' 하며 살 수 있는 정도로요. 말보로 지역 안에서는 토양과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와이너리들의 노력도 당연히 뒷받침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빛..!!) 실제로 지난번 이마트에서 구매한 'Wild Rock'은 저는 처음 보는 와이너리였지만 말보로 소비뇽블랑이 사고 싶어서 사 본 케이스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답니다. 가격도 꽤 착했고요.



Wild Rock Sauvignon Blanc


그리고 조금 덧붙여보자면, 말보로의 소비뇽블랑의 인기에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영향도 꽤 컸다는 생각입니다. 제 본업이 브랜딩이다 보니 그런 부분도 유의 깊게 보게 되는데, 젊은 층에 어필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달까요. 내추럴 와인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레이블 디자인이라든지, 일관된 마케팅을 통해 '말보로 소비뇽블랑'이라는 카테고리를 형성한 것이라든지 말이에요.


인기가 많아져서 그런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말보로에서 나온 소비뇽블랑을 사려면 최소 3~4만 원대였는데, 최근에는 가격대도 다양해지고 자연스레 접근성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1~2만 원대의 말보로 소비뇽블랑도 좋지만, 가격대가 높은 건 또 그 이유가 있겠죠. 모든 와인이 그렇겠지만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복합미가 생기고 훨씬 더 균형있게 안정적인 맛을 낸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말보로 쇼비뇽블랑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제가 추천드리는 건, 일단 1~2만 원대의 말보로 소비뇽블랑을 여러 가지 먹어보며 그 매력에 빠지고 나면 3~4만 원대 그리고 그 이상의 와인으로 입맛의 스펙트럼을 늘리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블랑 없이는 여름을 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말보로 쇼블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 듬뿍인 것이 느껴지실까요.


아, 완벽한 반주인데 페어링 할 음식이 안 나왔다고요? 이론적으로는 다양한 페어링이 가능하지만, 제게 말보로 소비뇽블랑은 와인만 가볍게 마시고 싶을 때를 위한 완벽한 처방전이기 때문에 이 와인의 완벽한 안주는 무더운 여름날의 공기라고 말씀드릴게요. 혹시 못 미더우신 분들은 지금 바로 말보로 소비뇽블랑 한 잔, 어떠실까요?



https://winely.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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