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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 리 Wine Lee May 14. 2021

야외 바비큐와 미국 카베르네 소비뇽

완벽한 반주 #03

저는 모든 술은 야외에서 마시면 배로 맛있어진다,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을 떠난 저녁에 야외에서 굽는 바비큐와 함께하는 와인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죠. 그래서 짧은 여행을 갈 때에는 호텔보다는 펜션이나, 에어비앤비를 애용하는 편입니다.

(사족이지만, 와인과 함께 코로나 붐을 타고 엄청나게 성장한 캠핑 시장에도 얼마 전 발을 들여놓고 말았습니다. 캠핑과 와인도 한번 이야기를 풀어볼 기회가 있을 것 같네요.)


지난 봄의 여행에서도 소믈리에 자격증인 WSET을 함께 배운 친구들과 평창의 한 에어비앤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요즘 강원도에 푹 빠진지라, 평창 숲 속의 작은 숙소의 테라스에서의 힐링을 꿈꾸며 여행을 계획했죠. 서울보다 훨씬 거리두기가 잘 되는 숲 속에서의 여유로운 주말은 정말 행복했어요.


힐링을 만끽한 그날의 에어비앤비


저희 같은 서울쥐들은 언제나 야외 바비큐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바비큐 메뉴도 정말 신나게 준비했습니다. 한 친구는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우대 갈비'를 구워보고 싶다며 며칠 전부터 준비했고, 저는 한남동의 작은 가게에서 산 수제 소시지와 각종 가래떡을 소중하게 챙겼습니다. 물론 함께 구워 먹을 채소도 빼놓지 않았죠! 와인으로 대동단결하는 친구들이지만, 먹는 것에도 진심이 아닌 법이 없어 항상 즐거운 모임이랍니다.


저희는 이렇게 모이면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이벤트가 하나 있어요. 바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입니다. 와인의 정체를 전혀 모른 채, 향을 맡고 맛을 본 후 그 와인의 정체를 추리해보는 것인데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번외 편에서 살짝 다뤄보려 합니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 준비된 5병의 와인 중 1개의 레드 와인이 블라인드로 준비된 와인이었고, 외관이 전혀 보이지 않게 알루미늄 포일로 꽁꽁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반전.

흥미진진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시작될 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순식간에 맥없이 끝나버렸어요. 그 이유는 바로 블라인드를 주최한 친구가 두 가지를 간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와인의 병모양은 많은 특징을 드러낸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 제가 생각보다 와인에 대해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다는 점이었죠.


이 모든 여행 스토리는 와인의 병모양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저의 큰 그림이라는 점을 혹시 눈치채셨을까요?�


와인의 병 모양도 라벨처럼 그 와인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병 모양을 살펴보면 위와 같죠. 병모양만 봐도 와인의 스타일을 어렴풋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모양만으로 와인을 판단하기에는 이 모양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모양의 와인병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실 법적으로 규제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느 유명 유튜버는 병으로 너무 멋을 많이 낸 와인은 믿지 말아라, 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의외의 눈썰미로 산통을 다 깨버린 와인도 위에 있는 전형적인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와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만 보고 정체를 눈치채버렸겠죠? 바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나파밸리 와인 중 하나인 케이머스였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전형적인 와인병 모양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실 수 있을 거에요.


미국 Napa Valley의 Caymus


10만 원대에 주로 판매되는 나름 고급 와인 중 하나인데, 얼마 전 가격 대비 퀄리티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인 적이 있어 주최자가 일부러 블라인드로 준비했던 것이었죠. 아주 흥미로운 블라인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요. 그런데 병 모양도 모양이지만 병의 색깔도 조금 특이해서 평소 저도 모르게 유심히 봤던 것 같습니다. 위 이미지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좀 투명한 초록색을 띠고 있거든요. 그리고 휴대가 편하게 알루미늄 포일로 싸는 바람에 그 특유의 모양이 오히려 돋보였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머쓱)


따뜻한 기후의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무럭무럭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로 만든 와인인 만큼 과실 향도 강하게 나고 꽤 달달한 와인이었습니다. 그래도 고급 와인이라 (알고 마셔서 그런지) 너무 세다!라는 느낌보다는 나름대로 균형이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떫은 맛을 내는 타닌도 신경쓰이지 않았고요. 아주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 위주로 마셔도 그 나름대로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품종은 스테이크, 바비큐 등의 구운 소고기와 페어링 했을 때에는 불패의 마리아주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유럽보다 좀 더 단순하고 직설적인 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먹는 사람도 단순해져도 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여러가지 맛과 향을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가끔은 '맛있다!'라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지난번 소개드린 샤도네이처럼 카베르네 소비뇽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와인 품종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다양한 산지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하기도 쉽다는 말이지요. 가격대도 천차만별이고요. 구대륙이라고 불리는 유럽, 특히 프랑스 보르도의 카베르네 소비뇽도 좋지만 두툼한 스테이크와 함께 별생각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신대륙(미국, 남미 등)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랍니다.


오늘은 신나는 금요일이니, 두툼한 스테이크 한 장 구워 신대륙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과 함께 주말을 맞이해보면 어떨까요? 모두 해피 주말입니다 :)



https://winely.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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