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인 리 Wine Lee May 28. 2021

샴페인을 터뜨리자

완벽한 반주 #04

얼마 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날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그 순간 "샴페인을 터뜨리자!"라고 외쳤죠. 그날 저녁, 말 그대로 샴페인을 빵!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샴페인으로 건배를 했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술 중에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샴페인일 거예요. 와인에 관심이 없어도, 스포츠대회 우승자에게 샴페인을 터뜨려 샤워를 시키는 장면이나 위대한 개츠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강렬한 눈빛으로 건배하는 장면은 누구나 다 봤을 테니까요. 그래서 대중적으로 가장 익숙한 와인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으로 오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렇지만 알고 보면 병에 샴페인(Champagne)이라고 쓰여있는 와인은 굉장히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친구들입니다. 프랑스의 와인 관련 규정이 매우 엄격하다는 말을 슬쩍 흘린 적이 있는데, 샴페인도 예외가 없죠.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필두로, 수없이 많은 규정을 지킨 와인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 포도 품종, 숙성 기간 등등...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샴페인 st'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표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다 보니 샴페인은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걸까요?)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이제 본격적인 개미지옥 of 개미지옥이기 때문에 저도 되도록 걸음마 단계에서 더 성장하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고요. 사실 걸음마를 뗀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요.


고백하자면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저는 샴페인이 뭐가 그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고, 가성비로 보면 다른 스파클링 와인이 더 나은 게 아닌가,라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 마시면 시원하고 깔끔한 스파클링이라면 뭔들!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네, 지금은 샴페인은 역시 독보적이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테라스에서, 까바 한 잔의 행복도 있어요


다른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크레망(Crement), 이탈리아의 프로세코(Prosecco), 스페인의 까바(Cava) 등이 있는데요, 각자 나름의 특징이 있고 샴페인과 비교해 뒤떨어진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와인들입니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요. 그 안에서 프리미엄 급으로 가면 감동적인 맛을 선사하고요. (와인의 세계에서 비싼 가격은 거의 대부분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샴페인이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로 여겨질 만큼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특유의 맛과 향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완벽한 반주는 어디까지나 초보 기준으로 쓰이는 글이기 때문에 이제 막 샴페인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으로서 샴페인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샴페인만의 향긋한 빵 냄새와 꽉 찬 풍부한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샴페인을 처음 제대로 접했을 때에는 그 특유의 빵 냄새가 제게는 거슬리는 향이었답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보통 '토스티(Toasty)'하다고 하는데, '토스티하고 좋네~'가 아니고 '윽 역시 샴페인은 토스티해'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저렇게 여러 번 축배를 들다 보니 이 빵 냄새에 중독되어 버린 걸까요. 지금은 너무나도 향긋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슴슴한 맛의 평양냉면에 한번 빠지면 탈출할 수 없는 것처럼요.



샴페인을 따르는 순간은 언제나 아름답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혹시 여러분 중 나는 왜 샴페인이 비싼 값 대비 별로인 것 같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용기(?)를 북돋아드리고 싶어요. 사람의 입맛은 당연히 취향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종종 기회 될 때마다 샴페인을 접해보는 것은 내가 느낄 수 있는 맛의 스펙트럼과 경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니, 굳이 피하시지는 않기를 권합니다. 세리머니의 술, 샴페인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음식과의 궁합, 페어링으로 넘어가자면 솔직히 말해서 샴페인과 딱히 안 어울린다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아요. 갑자기 샴페인 무한찬양론자가 된 것 같은데, 정말이에요. 얼마 전 이게 과연 괜찮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오향족발과 같이 먹었는데 그것도 나름의 마리아주가 있더라고요. '족샴'이라고나 할까요? 샴페인 자체의 향과 맛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스파클링이다 보니 음식의 향이 살짝 강해도 너무 튀지 않게 눌러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게 제 나름대로의 분석입니다.


그래도 몇 가지 꼽아보자면, '딸샴'이라고 해서 딸기와 샴페인을 함께 먹는 것도 최근 인기였는데 이것도 의외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마리아주였습니다. 분명 샴페인에 단맛이 많지 않은데도 딸기와 함께 먹으니 기분 좋은 달달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가볍게 샴페인 한 잔 할 때 추천드리고 싶은 안주입니다.



고등어 봉초밥과 샴페인 (생맥주는 덤!)


그리고 구운 고기와 미국 까베르네 소비뇽이 불패의 마리아주라고 소개했었는데요, 샴페인과 불패의 마리아주는 뭐니 뭐니 해도 회와 초밥일 거예요. 가끔 와인 커뮤니티에 '초밥 오마카세에 곁들일 와인 추천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면 백이면 백 모두가 샴페인을 추천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겁니다. 회 하면 화이트 와인을 제일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화이트 와인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자칫 잘못 선택하면 최고의 회조차 비린맛만 증폭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묻고 샴페인으로 가시죠!


저도 샴페인 세계의 문을 이제 막 연 사람이라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입문자가 깊게 파고들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술이니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정진해서 다음에는 샴페인 Level 2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할게요. 여러분도 다음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꼭 샴페인으로 짠짠짠 하세요!



https://winely.stibee.com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맘대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